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10)

포츠담·베를린의 궁전과 공원

Schlösser und Parks von Potsdam und Berlin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매주 연재한다.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아픈 역사도 갖고 있는데, 2009년 현대적 교량 건설로 인해 자연 경관이 훼손됨을 이유로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명된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제명된 첫번째 사례였다.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등재일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1730년~1916년 사이 포츠담과 베를린에는 공원 500㏊와 건물 150동이 모인 복합지구가 건립되었으며, 이곳의 건축물과 정원은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예술 단지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복합 예술적 통일체를 이루었으며, 이런 절충적인 성격은 이들만의 독특한 특성을 더욱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건축물과 공원은 베를린·첼렌도르프(Berlin-Zehlendorf) 지역까지 이어져 하벨(Havel) 강의 제방과 글렌니케(Glienicke) 호숫가에 늘어서 있다. 상수시 궁전(Sans-Souci Palace)은 프리드리히 2세가 1745년〜1747년에 건축했으며, 볼테르(Voltaire)가 머물기도 했다.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유네스토 위원회가 밝힌 세계문화유산 선정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포츠담의 궁전과 베를린 공원의 조화는 뛰어난 예술적 업적으로, 상호 절충적이며 진화적인 특성을 지녔다. 크노벨스도르프에서 싱켈, 아이저베크에서 레네에 이르기까지 건축과 조경 전문가들이 만든 걸작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

2) 포츠담 상수시 궁전은 이탈리아·영국·플랑드르·파리·드레스덴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은 건축물이다. 18세기 유럽의 도시와 왕궁의 예술 동향을 통합한 궁전과 공원은 오데르 강 동부의 기념물 건축과 공간 조직 발달에 크게 영향을 미친 새로운 모델을 제공했다.

3) 베르사유 궁전(1979년에 세계 유산 목록에 포함)과 마찬가지로, 포츠담 상수시 궁전은 유럽 내에 권력을 쥔 군주적 이상과 관련된 건축 작품과 조경 개발의 뛰어난 사례이다. 이들 왕실 건물은 광대한 넓이 때문에 뷔르츠부르크와 브렌하임(각각 1981년과 1987년에 세계 유산 목록에 포함)과 같이 매우 독특한 범주의 왕궁에 속한다.

10세기에 처음 언급된 포츠담은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Friedrich Wilhelm, 1620〜1688)이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 포츠담에는 1640년 이후 소규모의 수비대가 주둔하였다. 이곳의 군사적 기능은 프로이센 군주제로 강화되었다.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II, 1712〜1786) 치하에서 포츠담은 크게 변하였다. 새로 왕이 된 그는 ‘군 지휘관 왕’의 요새 도시와 정착 식민지 옆에 ‘프로이센의 베르사유(Prussian Versailles)’를 세우려고 하였다. 1744년에 프리드리히 2세는 발트(Bald) 산의 언덕 남쪽 부분에 계단식 밭 6개로 포도원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상수시 궁전의 이름은 친밀감과 소박함에 대한 프리드리히 2세의 욕구가 반영되었는데, 소박한 별장을 대리석, 거울과 황금 등으로 바꾸어 로코로 양식의 궁전으로 만들었다. 단층으로 된 궁전은 돌출된 축이 있는 원형 홀이 있고, 각 면에 방이 5개씩 있다. 동쪽에는 왕실의 개인용 방들이 있고, 서쪽에는 객실이 있다.

‘상수시’(sans-souci)란 ‘걱정 없는’이란 뜻의 프랑스 어로서, 이름이 그렇듯 이 궁전은 다른 독일 궁전과는 달리 화려하고 장식이 많은데, 프랑스에서 발달했던 로코코양식으로 지어졌다. 당시 유럽에는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건축한 베르사유 궁을 본뜬 궁전을 짓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이 궁전도 그런 유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 궁전에는 프리드리히 2세의 초청을 받은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볼테르가 머물렀던 방도 남아 있으며, 베르사유 궁이 그렇듯 건물에 못지않게 정원이 매우 훌륭하다.

이 거대한 로코코 양식의 건물에는 유명한 ‘조개의 방(Shell Room)’을 포함해 200개 이상의 방을 만들었다. 고대 사원, 우정의 사원, 벨베데레(Belvedere), 용 전시관을 포함한 여러 건물은 공원에 건설하였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1795〜1861)는 상수시 공원 확대에 전념하였는데, 황태자 자격으로 남쪽 영역을 구입하였다.

그는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Karl-Friedrich Schinkel)에게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성인 샤를로텐호프 성을 소규모로 건설할 것을 지시하고, 페터 요제프 레네(Peter Josef Lenné)에게는 낭만적인 공원을 설계할 것을 지시하였다. 레네는 또한 시칠리아 정원, 북유럽 식 정원, 하우프탈레(Hauptallee) 북쪽을 설계하였다. 1860년까지 새로운 건물이 계속하여 건설되었다. 오렌지 온실은 로마의 메디치(Medici)가와 산 클레멘테 바실리카의 프리덴스키르헤(Friedenskirche, 평화의 교회)의 입면도를 적용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더 큰 의미가 있는 건물은 크고 화려한 상수시 궁에 비해 작고 소박한 영국풍의 체칠리엔호프 궁이다. 프리드리히 2세가 영국에서 데려온 맏며느리의 이름을 딴 이 궁전에서 포츠담회담이 열렸으며, 당시 참석한 3국 정상들이 쓰던 임시 집무실과 유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1990년까지 포츠담은 동독 지역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도시 전체가 매우 소박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1258호 31면, 2022년 3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