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돌아와야 할 우리 문화유산
-잃고, 잊고 또는 숨겨진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11)

110년 만에 귀향하는 고려 돌조각 예술을 대표하는 지광국사탑

국보 제101호 ‘고려지광국사탑’이 본래 자리인 강원도 원주 법천사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110년 만의 귀향이다. 문화재청은 전면 해체하여 보수 중인 탑을 원상회복해 본래 자리였던 원주 법천사지에 봉안하기로 했다. 당연한 결정이다.

지광국사탑은 기구한 운명을 온몸으로 견뎌냈다.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이 이 석탑에 온전히 아로새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법천사지에는 당간지주와, 석탑과 함께 조성했던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호)가 남아 있어 석탑과 비석이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 참으로 무참한 세월이었다.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고려의 돌조각 예술을 대표하는 지광국사탑은 고려시대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 ~ 1067)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다. 본래 법천사지에 남아 있는 지광국사의 탑비와 한 쌍을 이루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법천사가 불에 타 사라졌고 비석과 석탑만이 그나마 온전히 남았다.

법천사는 이후 복원되지 못해 폐사지가 되었고 너른 들에는 수풀만 황량하게 우거지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인들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이 중에는 고고학자와, 그들과 연을 댄 골동품 상인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한반도 전역을 고적 조사를 명분으로 들쑤시고 다녔다. 당연히 왕릉 같은 고분과 옛 절터는 그들의 주된 표적이 되었다.

법천사지에서, 지극히 화려하고 섬세한 수법으로 이루어져 고려 미술의 전성기를 보여 주는 이 아름다운 석탑을 발견한 일본인들은 군침을 삼켰을 것이다. 1911년, 석탑은 해체되어 서울 명동의 무라카미 병원으로 옮겨졌고, 이듬해 서울 중구 남창동의 와다 저택 정원으로 또 이전되었다가 1912년 일본 오사카의 후지와라 남작 가문의 묘지 조경물이 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일본인들은 한국의 석탑이나 불상 등을 조경용으로 무단 반출하기 일쑤였다. 개성의 ‘경천사 십층석탑’도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아키가 산산히 조각내 불법 반출해 큰 문제가 되었다. 하긴 경주 석굴암도 해체해 반출하려다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었으니, 약탈자들은 일국의 문화와 문화재에 대한 예의도 격식도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었다.

이런 안하무인의 약탈 행위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크게 분노했다. 영국 언론인 E. 베델과 미국 언론인 H. 헐버트는 이 같은 만행을 맹렬히 비판했고 국제적인 이슈가 되자 조선총독부는 약탈자들에게 밀반출한 문화재의 반환을 명령했다.

조선물산공진회에 모습을 드러낸 지광국사탑

1915년, 조선총독부는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라는 대규모 산업박람회를 개최했다. ‘조선병합을 통해 조선의 산업이 진보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한국민에게 과시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당시 전 산업분야에 걸친 생산품과 건축물 등을 전시하고 전국의 농민들까지 강제동원해 관람케 했다. 이 전시회에 지광국사탑을 비롯해 전국의 폐사지 등에서 반출한 석조물들이 도열, 전시되었다. 이때의 사진에 지광국사탑이 보인다.

광복 이후에도 지광국사탑은 고향인 법천사지로 가지 못하고 경복궁에 남았다. 한국전쟁의 와중에는 폭격을 당해 1만 2천여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지기도 했다. 다행히 파편을 모아 복원했지만 졸속으로 진행된 탓에 제 모습을 온전히 찾진 못했다. 이후 1990년부터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뒤뜰에서 어색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다 문화재청이 원상회복 조치를 취한 것은 2015년이다.

일제의 흔적, 산지사방으로 흩어진 문화재들

지광국사탑의 귀환 소식에 원주 시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임진왜란이후 폐사지로 남아 있던 법천사지를 복원하자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 불법으로 반출되거나 부당하게 징발된 문화재는 셀 수 없이 많다. 국립중앙박물관 석조물 야외 전시장에는 ‘조선물산공진회’ 때 징발된 석탑, 부조탑 등이 즐비하게 서 있다. 전국의 국립박물관이나 사립박물관에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생뚱맞은 곳에 서 있는 탑들이 많이 있다.

국외 불법 반출 문화재의 환수 못지않게 국내에도 본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문화재를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활동에 지역민과 지방정부가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북도민들은 국보 제81호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국보 제82호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보물 제1977호인 ‘청와대석불’, 국보 제99호 김천 길항사 ‘동·서 삼층석탑’은 물론, 국보 제191호 ‘경주 황남대총 북분 출토 금관’과 국보 제83호 ‘금동반가사유상’의 이전도 요구하고 있다.

충청남도는 반출문화재 실태조사단을 구성하고 환수할 문화재를 정리하고 있다. 이 중에 대표적인 사례가 서산 보원사지 ‘철불여래좌상’이다. 191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반출당한 후 100년이 넘게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철불여래좌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이외에도 논산과 예산에서 출토된 후 국내 사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청동유물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지역의 브랜드로 하겠다는 발표 이후 2020년까지 일제강점기에 징발된 문화재를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그 수가 4만여 점으로 해방 이후 최대 규모다. 그러나 이 또한 알맹이가 빠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유물은 빠졌고 그나마 원래 자리로의 완전한 이관도 아닌 국립박물관 간의 이동이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은 본래 자리에 있을 때 그 의미와 가치가 빛난다. 문화재의 제자리 찾기를 위한 지역민들의 노력이 더욱 필요할 때다.

1260호 30면, 2022년 3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