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12)

람멜스베르크 광산과 고슬라 옛 시가지 및 오베르하르츠의 물 관리 시스템
(Bergwerk Rammelsberg, Altstadt von Goslar und Oberharzer Wasserwirtschaft)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매주 연재한다.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아픈 역사도 갖고 있는데, 2009년 현대적 교량 건설로 인해 자연 경관이 훼손됨을 이유로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명된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제명된 첫번째 사례였다.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등재일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람멜스베르크(Rammelsberg) 광산과 고슬라 시(Goslar)의 남쪽에 위치한 ‘오베르하르츠(Oberharz) 물 관리 시스템’은 비철금속 제작용 광석의 채굴에 활용할 목적으로 80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개발된 것이다. 이 시스템은 중세에 시토회 수도사들에 의해 최초 건설된 후, 16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 크게 발달하였다. 여기에는 매우 복잡하고도 완벽하게 조직된 인공연못, 작은 수로, 터널, 지하 하수시설 등이 포함된다. 채광 및 야금 작업을 위해 수력을 활용하는 이 시스템은 서구 세계의 혁신적 채광 기술을 대표하는 유적이다.

또한 람멜스베르크의 광산 인근에 있는 고슬라 시는 람멜스베르크의 풍부한 광맥 덕분에 한자동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0세기~12세기까지 고슬라 시는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하르츠 산지와 람멜스베르크는 노천 금속 광맥으로 유명하며 이 광맥은 청동시대부터 개발되었다. 금속 광맥은 중세 초기에 다시 알려지면서 개발되었다. 하르츠의 금속 생산에 관한 역사는 1127년에 프랑스에서 온 시토 회 수도사들이 발켄리트 수도원을 건축하면서 시작되었다. 시토 회 수도사들은 광산 개발에 일찍이 관심을 갖고 중세 유럽의 금속 생산과 발전에 기여하여 그 명성이 높았다. 광석을 뽑아내는 용광로의 생산을 개량화하기 위해 13세기 초에 하르츠에 있는 수도사들은 수차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부에 위치한 판델바크(Pandelbach) 계곡에 있는 4곳의 작은 연못 단지를 보면 수도사들이 이곳에서 물 관리 시스템을 사용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중세시대에는 지하 수력에 대한 기본 시스템이 있었는데 아헤투크트(Aghetucht)의 지하 배수로의 경우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클라우스탈(Clausthal)에 있는 바네디크(Banedik) 연못 또한 13세기 말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들은 배수펌프를 설치하기 위해 갱도에 설치된 배수장치를 만들고 수차를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3세기 말 수도원은 절정기를 맞이하여 이곳에는 수도사 80명과 보조수사가 180명이나 거주하였다.

문헌에 최초로 람멜스베르크가 언급된 것은 11세기 초였다. 이곳의 풍부한 은 광석 매장량 때문에 하인리히 2세 황제는 람멜스베르크 산기슭에 황제 관저를 두었다. 그는 1009년에 이곳에서 첫 번째 제국의회를 개최하였으며, 고슬라 시는 황제 관저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고슬라는 한자동맹 지역 중 중요한 역할을 하며 크게 번영을 이루었는데, 이는 1450년에 그 정점에 달했다. 채광, 금속생산, 무역으로 얻은 수입은 특유의 중세 후기의 도시경관 조성에 사용되었는데 이로써 요새, 성당, 공공건물, 광산 사업주의 화려한 저택 등을 건축했으며, 이 건축물들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람멜스베르크 광산 지역의 관리는 1552년에 고슬라에서 브란덴부르크 공작령으로 옮겨졌다가 1866년에 프로이센 왕국에 귀속되었다. 1988년 광산이 문을 닫게 될 때까지 채광과 야금 작업은 계속되었다.

이 지역의 광산채굴과 물 관리 시스템의 예들은 광산학자 G.아그리콜라(Agricola, 1494~1555)의 광산학 저서 『데 레 메탈리카(De re metallica, 금속에 관하여)』에 영향을 주었다.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의 광산과 야금술에 대한 지식 참고서이다. 이후에도 광산 단지와 물관리 시스템은 체계적으로 개선되었다. 예를 들어 17세기부터는 기술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그래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더 이상 말(馬)을 이용하지 않았다. 기술적 혁신과 풍부한 경험으로 광석 생산 기술은 향상되었으며, 새로운 광산들을 발굴함으로써 생산량은 상당히 증가하였다.

광산의 유적에는 10세기부터 쌓여온 유적들과 그 생산 설비들이 남아 있다. 성 요하니스 교회(St Johanniskirche, 970년경), 12세기의 광석 운송로, 라트스티프스터(Rathstiefster) 터널-횡갱(橫坑)도(1150년경), 13세기의 채광 구조물들, 티퍼-율리우스-포르투나투스(Tiefer-Julius-Fortunatus) 터널(1585년), 감독관의 거처(1700년경), 공동 채석장(1768년), 잘 보존되어 있는 지하의 물레바퀴 2개를 포함한 뢰더(Roeder) 터널 시스템(1805년), 오래된 사무용 건물(1902년), 견인로와 수직 갱도 및 기술 장비(1905년), 기른비커 터널 (Gelenbeeker, 1927년), 빈클러(Winkler) 환기용 갱도(1936년), 1935년~1942년까지의 지상 공장 시설, 1878년~1950년까지의 광부들의 거처 등이 있다.

또한 황궁 및 성 울리히(St Ulrich) 왕궁 예배당(1100년경), 프랑켄부르크(Frankenburger) 성당(1130년), 11세기의 황제의 옥좌가 있는 옛 슈티프츠카펠(Stiftskapelle)의 교회 전실(antechurch, 1160년), 시장의 분수대(1200년경), 프랑켄부르크의 광부 마을(1500년경),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광업 사업주용 주택들, 광부 진료소(1537년) 등이 있다.

이 같은 고슬라 시의 다양한 유적을 통해, 고슬라 시의 성장과 20세기까지 유지된 이 지역 광업의 발달을 확인할 수 있다. 고슬라 시는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큰 손상을 입지 않은 덕에 역사적 중심부가 온전히 남아 있어, 중세 도시계획으로 건축된 지역 및 산업 건물뿐 아니라 수준 높은 고딕·르네상스·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을 다수 간직하고 있다.

1260호 31면, 2022년 3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