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13)

밤베르크 중세 도시 유적 (Altstadt von Bamberg)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매주 연재한다.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아픈 역사도 갖고 있는데, 2009년 현대적 교량 건설로 인해 자연 경관이 훼손됨을 이유로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명된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제명된 첫번째 사례였다.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등재일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1993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밤베르크(Bamberg)는 10세기이후 슬라브족, 특히 폴란드와 포메라니아(Pomerania)를 연결하는 곳이었다. 12세기 이후 도시 전성기의 건축은 북부 독일과 헝가리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18세기 후반에는 헤겔(Hegel), 호프만(Hoffman) 등 저명한 철학자와 작가들이 이곳에 거주하면서 남부 독일 계몽주의의 중심지 구실을 하였다.

이곳은 일찍이 카롤링거 왕조 후기부터 바벤베르크(Babenberg) 백작의 성이 있었다. 이 성이 세워진 언덕을 둘러싸고 발달한 밤베르크는 906년에 왕실 소유가 되었고, 이후 바이에른 공작에게 양도되었다. 바이에른의 공작 하인리히 2세는 1007년에 독일의 왕이 되었는데, 그는 밤베르크를 ‘제2의 로마’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이곳을 주교구(主敎區)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밤베르크는 중세 도시의 일반적인 배치 규칙에 따라 십자가 형태로 설계되었다. 중요한 네 지점에 성 미카엘 성당, 성 슈테판 성당, 성 강골프 성당, 성 야곱 성당이 있다.

주교 오토 1세의 출현과 함께 밤베르크는 12세기 초에 강력한 주교구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때부터 밤베르크의 번영기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13세기 초에 대성당을 화려하게 복원하였다는 사실에서 이것이 입증된다.

밤베르크는 중세 후기에도 계속 번영하였는데, 이곳이 유명한 문화적 중심지일 뿐 아니라 마인(Main) 강을 이용한 운송의 시작점이라는 사실이 번영에 일조하였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에는 디엔첸호퍼(Dientzenhofer)와 발타자르 노이만(Balthasar Neumann) 같은 예술가들의 활약으로 문화가 크게 번성하였다. 밤베르크는 18세기 후반 주교 프란츠 루드비히 폰 에르탈(Franz-Ludwig von Erthal)의 통치 아래 남부 독일의 계몽주의 중심지가 되었다.

1803년에 밤베르크가 바이에른의 선거후(選擧侯, 신성로마제국에서 독일 황제의 선거권이 있던 7명의 제후)에게 이양된 뒤에도, 이 도시는 헤겔과 호프만 등 저명한 작가를 통해 지적으로 우월한 지역이라는 위치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유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 미카엘 수도원

대성당 광장(Domplatz)이 위치한 언덕을 대성당 산(Domberg)이라고 부르고, 거기서 한 단계 더 위의 높은 언덕이 미하엘 산(Michaelsberg), 그리고 이 곳에 위치한 거대한 교회 건물이 성 미하엘 수도원(Kloster St.Michael)이다. 베네딕토 수도회에 속해있고, 건축 이래 학교를 겸하여 운영하다가 현재는 양로원으로 일부를 사용 중이다.

내부는 대성당(Dom St.Peter und St.Georg)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크고 엄숙하며 화려하다. 교회의 설립자인 오토 폰 밤베르크(Otto von Bamberg)의 무덤도 내부에 있는데, 좁은 통로를 통과해 그의 무덤에 참배하는 사람은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다.

단지 교회 건물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연결된 큰 건물과 교회를 둘러싼 큰 건물, 그리고 그 사이의 정원과 전망대 등이 복합적으로 갖추어진 일종의 문화단지. 내부에는 레스토랑도 있고, 이 곳 수도원에서 직접 양조하는 맥주도 판매하며, 양조 박물관도 있다.

대성당

4개의 첨탑이 웅장하게 서 있는 대성당(Dom St.Peter und St.Georg)은 1007년 황제 하인리히 2세(Heinrich II)에 의해 만들어졌다. 밤베르크 시가지보다 높은 지대에 있는 야산의 중턱에 시가지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237년 다시 건축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특이한 건축양식으로 꼽힌다.

인위적인 조명을 최소화한 내부도 엄숙하고 웅장하다. 하인리히 2세의 무덤이 이 곳에 있다. 그리고 대성당에서 소장하고 있는 각종 보물들은 주교 박물관(Diözesanmuseum)에 별도로 전시 중이다.

신궁전

1703년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으로 만든 신 궁전(Neue Residenz)은, 당시 파손 후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구 궁전(Altes Hofhaltung)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구 궁전 바로 건너편, 대성당 광장(Domplatz)에 위치하고 있다.

광장에서 보이는 궁전은 ㄱ자 모양으로 꺾여있는데,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4개의 건물이 마치 국자 모양처럼 각을 지어 연결되어 있는 구조이다. 4개의 건물 중 2동은 르네상스 양식, 2동은 바로크 양식으로 되어 있다.

국자 모양의 안쪽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작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여름마다 장미가 만발하여 장미 정원(Rosengarten)이라고 불리며, 이 곳에서 성 미하엘 수도원(Kloster St.Michael)을 바라보는 전망이 아름답다.

궁전 내부는 국립 도서관(Staatsbibliothek Bamberg)과 국립 미술관(Staatsgalerie)으로 사용 중이다. 이 중 국립 미술관은 유료 입장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1261호 31면, 2022년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