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15)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매주 연재한다.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아픈 역사도 갖고 있는데, 2009년 현대적 교량 건설로 인해 자연 경관이 훼손됨을 이유로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명된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제명된 첫번째 사례였다.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등재일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쾰른 대성당(Kölner Dom)

1996년 유네스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쾰른 대성당(정식명칭 Hohe Domkirche St. Peter) 은 고딕 양식의 걸작으로, 124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880년에 완공하였다. 건축에 600년이 넘게 걸리면서 스스로 역사가 되었고, 유럽 기독교의 영속적인 힘을 증명하는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역사적 배경

로마 시대 쾰른 북동부 지역에 있던 기독교 신자들은 도시 외곽 근처의 한 개인 주택에 모여 예배를 드리곤 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313년 밀라노 칙령에 따라 이 건물은 성당으로 확장되었는데, 성당 건물 옆에는 안마당, 세례당과 주교 주택이 있었다. 이 소박한 건물들은 이후 여러 세기를 지나며 확장되고 확대되었다. 이곳에 최초로 거대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을 건축하려고 구상한 사람은 샤를마뉴 대제의 친구이자 고문인 힐데볼트(Hildebold) 대주교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굴과 현대 문서를 통해 이전의 쾰른 성당의 형태와 장식에 대한 내용이 알려졌다. 이 건물은 95m 길이(10세기 중반에 2개의 측면 통로가 추가되면서 로마 외부 지역 최초로 통로가 5개 있는 교회가 되었음)의 통로 2개로 구분되는 중앙의 네이브(nave)과 서쪽 파사드 앞의 넓은 안마당이 있는 바실리카로 건축되었다. 11세기 초에는 아헨의 샤를마뉴 예배당 양식으로 지어진 2층으로 된 궁정 예배당이 남쪽 수랑에 추가되었고, 11세기 후반에 이 예배당은 2개의 높은 회랑(回廊)을 통해 ‘계단의 성모 마리아교회’에 연결되었다.

한편 오늘날의 쾰른대성당의 시작은 ‘동방박사 3인의 유해’와 관련되어 건축이 시작되었다.

1164년 쾰른의 대주교 ‘다셀의 라이날드(Rainald von Dassel)’는 이른바 ‘동방박사 3인의 유해’를 얻게 됐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프르드리히 바르바로사가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유스토르지오 대성당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유해는 종교적으로 매우 귀중한 것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순례자가 참배하러 몰려들었다. 라이날드 대주교는 기존의 교회자리에 유해를 모실 대성당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쾰른 대성당이었다.

600여년이 걸린 건축

1248년 쾰른성당의 대규모 증축이 시작되었다. 워래 당시 건축 의도는 기존 건물의 서쪽 수랑만 철거하고, 나머지 부분은 대주교 교회로 계속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주의한 철거로 화재가 발생해 건물 전체가 파괴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책임 건축자인 게르하르트(Gerhard)의 감독 아래 완전히 새로운 건물을 짓게 된 것이다.

게르하르트는 1260년경에 사망했고, 1299년까지 그의 조수 아르놀트의 책임 아래 건축 작업이 진행됐다. 건축 작업은 동쪽 끝부분에서 지속되었는데, 1310년경에는 채색된 창문이 설치되었다. 건축이 시작된 지 74년이 지난 1322년에는 이곳에 성당 사제단이 들어와 대제단을 성화할 수 있었다.

1560년 경 남쪽 탑의 주요 구조와 함께, 네이브 대부분과 4개의 측면 통로가 로마네스크 양식의 설계를 바탕으로 완공되었다. 이후 수많은 노력에도 쾰른 대성당은 여러 세기 동안 완공되지 못했고, 약간의 설비와 장식만 조금씩 추가되었다. 1794년에 프랑스가 쾰른을 장악하면서 대주교와 교구는 아헨으로 이전하였다. 성당 건물은 처음에 곡식과 사료의 저장고로 쓰이다가 나중에는 교구 교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쾰른 대성당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면서 이곳을 완공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완공을 위한 건축 작업은 1815년 쾰른이 프로이센에 양도되면서 시작되었다. 1816년에는 쾰른 대성당을 방문한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Karl Friedrich Schinkel)이 제자 에르네스트 프리드리히 츠비르너(Ernst Friedrich Zwirner)를 쾰른으로 보내 대성당을 건축하게 하였다. 그러나 재정 문제로 건축이 또다시 지연되었고, 1840년에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재정을 지원하면서 건축이 재개되었다. 결국 쾰른 대성당은 1248년에 건축을 시작해 632년 2개월이 지난 1880년에야 완공하였다.

쾰른 대성당은 높이 157.38미터로 울름 대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 세계에서는 세 번째로 높은 로마네스크·고딕 양식 성당이다. 완공 이후 188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세계 문화 유산으로 남다

쾰른 대성당은 1996년 유네스코에 유럽의 고딕 건축 걸작으로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그러나 2004년 7월 5일에는 “성당의 라인 강 건너편 지역(Deutz)에 대한 쾰른 시의 도시 계획으로 경관을 훼손할 가능성”이 제기되어 ‘위험에 처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05년 7월 1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유네스코 정례 회담에 따라 결국 ‘위험에 처한 세계 문화유산’에서 해제되었으며 유네스코의 독일 사무국은 2005년 말까지 Deutz지역의 녹지를 더 늘릴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그다음 해에도 그 지역에는 여전히 새로운 건축물 공사들이 계획되고 있었다.

2006년 7월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열린 유네스코 국제위원회는 쾰른 대성당을 문화유산 목록에서 제외하겠음을 시사하였다. 결국, 시 당국에 의해 건설 계획은 대대적으로 변경되어 쾰른 대성당을 중심으로 엄격한 고도 제한을 시행함으로써 논란을 잠재웠다.

1263호 31면, 2022년 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