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돌아와야 할 우리 문화유산
-잃고, 잊고 또는 숨겨진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14)

화조도접선의 귀환과 명성황후의 꿈

화조도접선이 2018년 8월, 떠나간 지 133년 만에 돌아왔다. 때마침 2018년은 부채의 주인공인 명성황후의 123주기이다. 자, 이제 ‘화조도접선’이 어떻게 이역만리 미국 오하이오 톨레도까지 갔을까를 알아보자.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국 축하만찬회에 김옥균 등이 일으킨 갑신정변으로 황후의 조카 민영익이 칼에 찔려 크게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목에 깊은 상처를 입어 목숨이 위태로웠다.

선교사였지만 의사이기도 한 알렌은 9월에 조선에 왔지만 마땅한 결실을 얻지 못하다가 12월, 조선왕실의 급한 부름에 달려가게 된다. 그곳에는 깊은 상처를 입고 신음하는 민영익이 있었고 그 옆엔 여러 명의 한의사들이 그를 치료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과적 수술 없이는 출혈을 멈추게 할 방법이 없었다.

알렌도 출혈이 너무 심하고 시간이 많이 경과한 탓에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렌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선의 실세를 살려내는 것이 자신의 앞날에 중대한 갈림길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당시 민영익을 향한 왕실의 신임은 절대적이었다. 약관 22세의 나이에 청나라 외교사절을 거쳐 23세에는 전권대사가 되어 미국, 영국, 프랑스, 인도, 홍콩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와 새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정변의 소동 속에서 깊은 상처를 입고 목숨이 위태한 상황이니 황후는 얼마나 애간장이 탔을까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에 알렌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치료를 했고 청년 민영익은 기적처럼 살아났다.

알렌은 사례로 십만 냥의 현금과 상아로 만든 칼을 받았다. 무엇보다 알렌이 받은 것은 조선왕실의 절대적인 신임이었다. 알렌은 이 사건을 계기로 왕실의 주치의가 되었고 조선의 임금으로부터 서양식 병원 설립을 허가받기에 이른다.

이런 사연으로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이 1885년 2월 29일 개원을 하게 된다. 광혜원 터는 갑신정변의 주범인 홍영식의 집을 몰수한 곳으로 현재는 헌법재판소가 들어서 있다. 광혜원은 그해 3월에 제중원으로, 1904년 세브란스병원으로 개칭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조카 민영익의 쾌차로 알렌의 부인과 급격히 가까워진 황후는 자주 마주 앉아 격변하는 세상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밀려오는 서양 문물과 변화, 그리고 일본의 야심을 경계하기 시작한 조선 왕실은 사대의 나라 청나라보다 미국에 마음을 주게 된다.

호러스 뉴턴 알렌은 누구인가

호러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은 1858년에 미국 오하이오주(州)에서 태어났다. 1881년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 신학부와 1883년 마이애미 의과대학을 졸업해 신학과 의학을 전공했다. 북장로회 의료선교사로 중국에 파견되었으나 선교활동이 여의치 않자 친구의 권유로 1884년 9월, 조선에 입국해 선교사로 활동을 시작한다.

조선에 온 지 석 달여 만에 알렌은 민영익을 살려냄으로써 왕실의 의사와 정치고문역을 맡게 되었다. 1885년 제중원(濟衆院)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1887년 참찬관(參贊官)에 임명되어 주미 전권공사 박정양의 고문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대한제국의 사절단을 도왔다. 1889년 조선으로 돌아온 그는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미국 정부와 민간단체에 우리의 주장을 알리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1890년 주한 미국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되었으며, 1892년 <한국휘보The Korean Repository>를 창간하기도 했다.

왕실의 신임이 두터운 그는 운산광산의 채굴권과 경인철도 부설권을 J. 모스에게 주선하는 등 미국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기도 했다. 1901년 주한 미국전권공사로 승진했고, 1904년 고종황제에게 훈공일등(勳功一等) 및 태극대수장(太極大綏章)을 받았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미국 정부에서 소환하여 귀국했고, 고향인 오하이오주에서 1932년 12월 11일 사망했다. 그는 한국과 관련한 책을 여러 편 저술했는데 『한국 설화(Korean Tales)』, 『한국의 풍물(Things Korean)』 등을 남겼다.

화조도접선과 명성황후의 꿈

조카의 목숨을 살렸고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지지·성원하는 알렌이 황후의 입장에선 고마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크게 번성하고 발전한 나라가 아닌가. 그곳에서 온 미국인 알렌은 그래서 더 특별한 존재였을 것이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킨다. 옛 사람들에게 ‘바람’을 일으킨다는 것은 ‘절대 힘의 상징’이다. 자연의 조화를 뛰어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신선들의 부채놀이, 황제 곁의 하늘하늘한 부채들이 그렇다. 이렇듯 부채는 실용을 넘어 상징을 담고 있다.

명성황후 화조도접선

그럼 명성황후는 왜 ‘부채’를 알렌 부인에게 선물했을까

그 어느 날, 황후는 조선에 갇혀 있는 자신을 꽃으로 새기고 먼 서양에서 온 친절한 이방인을 종달새로 새겨 조선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아로 날을 세운 부채를 선물하면서 조선에도 부국강병의 새바람이 불어오길 바라지 않았을까 싶다.

그 부채가 133여 년 만에 귀환했다. 문화유산회복재단은 알렌 컬렉션 조사하던 중에 유족들이 화조도접선을 비롯한 몇몇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유물 소장 확인과 기증 의사는 김정광 문화유산회복재단 미국지부장이 오하이오주 톨레도를 방문해 증손녀 리디아 알렌을 만나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오랜 기간 알렌의 유가족들과 인연을 맺은 재미교포 의사인 허정 박사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다.

대한황실문화원 이원 총재는 오하이오주 톨레도를 방문해 증손녀 리디아 알렌과 가족들을 만났다. 대한제국 선포 120년 만의 만남이다. 대한제국 황사손의 방문에 조그마한 마을에 사람들이 모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화조도접선’을 비롯해 편지, 사진 등 30여 점을 전달받았다.

이 유물들은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되어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