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고, 잊고 또는 숨겨진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22)
하늘 아래 최고(First Under Heaven), 헨더슨 컬렉션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 1922~1988)은 1948~1950년과 1958~1963년 두 차례 한국에 머물던 7년 동안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문정관과 정무참사관을 지냈다.
외교관이었던 헨더슨은 한국의 정치와 사회, 역사 및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한국: 소용돌이의 정치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긴 한국통이었다.
조각가였던 아내 마리아 헨더슨(Maria-Christine Elisabeth Henderson, 1923~2008)과 함께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헨더슨은 한국 미술평론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한국에 근무하는 동안 불화, 불상, 서예, 전적류 등 다양한 분야의 미술품과 골동품을 수집했다.
특히 헨더슨 부부는 한국 도자기에 심취했는데, 우수한 도자기들을 직접 수집했으며 미국에 잘 보이고 싶거나 미국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다수의 도자들을 선물 받기도 했다. 헨더슨은 1963년에 미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에서 수집한 도자기 150여 점과 불화와 불상, 서예작품 등도 함께 가져갔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어 문화재 반출이 불가능해졌지만, 헨더슨 부부는 외교관이었던 신분 덕분에 이삿짐 검사도 받지 않았다.
헨더슨은 과연 정당한 방법으로 골동품들을 구입했을까
미국으로 돌아간 헨더슨은 1969년 ‘한국 도자기, 다양한 예술Korean Ceramics, An Art’s Variety’이라는 전시회를 열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도자기들을 소개한 도록도 출판했다. 이에 한국에서는 헨더슨이 한국에서 수집한 미술품들을 밀반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헨더슨은 오히려 한국인들이 관심 두지 않았던 미술품들을 자신이 모아서 연구하고 사랑하고 존중했던 것이라며 반박했다.
후에 그의 아내인 마리아 헨더슨 역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은 절대 골동품상을 찾아간 적이 없고, 반대로 전국의 골동품 상인들이 물건을 싸 들고 와서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시회를 마친 헨더슨 부부는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소장품을 100만 달러에 살것을 요구했으나 박물관 측에서 이를 거절하며 매매는 무산되었다.
1988년 그레고리 헨더슨은 집 지붕에 올라가 가지치기를 하다가 떨어져 66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그가 죽자 마리아 헨더슨은 1991년 도자기 수집품들을 남편의 모교인 하버드대학에 기증 및 판매했다. ‘헨더슨 컬렉션’이라고 불리는 이 도자기 수집품들은 삼국시대 토기부터,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전 시대를 아우르는 명품 도자기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버드대학교 아서새클러뮤지엄(Arthur M. Sackler Museum)이 그의 컬렉션을 소장하게 된 이후 단 한 번 대중에 공개되었다.
1992년 12월부터 1993년 3월까지 열린 이 전시회의 제목은 ‘하늘 아래 최고: 한국 도자기 헨더슨 컬렉션 (First Under Heaven: The Henderson Collection of Korean Ceramic)’ 이었는데, 과연 하늘 아래 최고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명품 도자기들이 전시되었다.
낙랑・가야・백제・신라시대 토기 및 도자기들과 우수한 품질의 고려시대 음각・양각・상감청자 및 조선시대 분청・백자・청화백자 등이 포함된 그의 컬렉션은 시대별로 광범위하고 체계적이며 훌륭한 양식을 갖추고 있어 해외에 있는 한국 도자기 중 최상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헨더슨 컬렉션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한국의 도자기 역사를 연구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아서새클러뮤지엄의 동양미술 큐레이터인 로버트 마우리(Robert Mowry) 교수는 헨더슨 컬렉션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전시할 수 있는 수준 높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헨더슨 컬렉션의 고려청자들은 천 년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영롱하고 신비스러운 비취색을 잘 간직하고 있고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헨더슨 컬렉션 중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끄는 작품의 하나로 신라시대의 뿔잔과 받침대가 있는데, 마우리 교수는 이 잔에 대해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독특한 작품이라고 평가하며 기마 유목문화와의 연관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작품인 뱀 모양의 장식이 달린 가야 토기에 대해서는 인상적인 균형미와 강건함, 구조상의 미, 그리고 균형 잡힌 삼각 세공에서 작품의 미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평가하며 헨더슨 컬렉션의 고대 도자기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헨더슨이 이 의전용 스탠드에 대해 대구 달성군 양지리에 있는 장군의 무덤에서 1960년 도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헨더슨 부부가 생전에 밝혔던 것처럼 자신들은 직접 찾아온 골동품 상인들에게 작품들을 구입한 것일 뿐이라며 합법성을 주장했지만, 도굴이나 도난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획득한 문화재임을 미리 알고서도 거래한 것에 대해서는 과연 뭐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이제는 도덕적・윤리적 기준으로 문화유산을 바라보아야 할 때
헨더슨 부부의 말대로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문화재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지 않았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막 벗어나 사회, 정치적으로 계속되는 혼란과 함께 모두가 피폐해지고 가난으로 허덕이던 시기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한대선’이라는 한국 이름을 쓸 정도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와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헨더슨이 희소성 높은 최상품질의 작품들과 심지어 불법적으로 획득한 유물임을 알면서도 구입한 후 외교관 면책특권을 이용하면서까지 반출해 나간 것이 과연 그가 말한 한국 예술에 대한 존중과 애정인지는 좀 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
혼돈의 시기에 우리나라 문화재를 수집해서 지켜준 문화재 애호가인가 아니면 이를 틈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운 반출범인가. 헨더슨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엇갈린다. 단순히 불법・합법적인 문제를 떠나 도덕적・윤리적 기준으로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시대적 흐름이 더욱 반가울 따름이다.
1271호 30면, 2022년 6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