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23)

라이헤나우 수도원 섬(Klosterinsel Reichenau)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매주 연재한다.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아픈 역사도 갖고 있는데, 2009년 현대적 교량 건설로 인해 자연 경관이 훼손됨을 이유로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명된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제명된 첫번째 사례였다.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등재일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라이헤나우의 유적은 중세 초기 위대한 베네딕트회 수도원의 종교적·문화적 영향력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러 단계의 괄목할 만한 건축 요소를 보유한 이곳의 교회들은 9세기~11세기의 중부 유럽 수도원 건축의 뛰어난 사례를 보여준다.

수도원은 독일과 이탈리아 사이에서 이상적인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함으로써 카롤링거 왕조와 오토 왕가 통치자들의 보호를 받았다. 상당한 토지와 섬이 수도원에 기부되었다. 이는 수도원 토지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농업에 이용되었다. 수도원은 문학(시인 왈라프리드 스트라보(Walafrid Strabo)가 838~849에 수도원장으로 재직), 과학(헤르마누스 콘트라쿠스(Hermannus Contractus), 1013~1054), 예술(특히 10세기와 11세기의 사본 채식과 벽화에 관한 학파)의 교육과 창조의 중심지로 널리 알려졌다.

보덴 호(Bodensee)의 북쪽에 위치한 라이헤나우 섬의 역사는 1,000년 동안 수도원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초대 수도원장인 피르민(Pirmin)은 라이헤나우에 성모 마리아, 성 베드로, 성 바울을 기리는 수도원을 지을 책무를 맡았다. 그는 섬 북쪽 연안의 미텔첼(Mittelzell)에 목조로 건축한 첫 번째 수도원과 교회의 북쪽 면에 접하는 3개의 부속 건물이 있는 회랑의 건축을 감독하였다. 전체 건물은 746년까지 점차적으로 석재로 재건되었다.

상당한 토지가 수도원에 기부되었고, 수도원 토지의 중요한 부분은 농업용으로 쓰였다. 수도원은 문학·과학·예술을 교육하고 창조하는 유명한 중심지가 되었다. 이 교회는 황제 하인리히 3세(Henry III)가 참석한 가운데 1048년에 축성되었다.

베로나의 전 주교였던 에기노(Egino)는 라이헤나우 섬의 서쪽 끝인 니더첼(Niederzell)에 성 베드로 성당을 짓고 799년에 축성하였다. 교회 건물은 두 차례에 걸쳐 재건되었으며, 9세기와 10세기에 일부가 개조되었다. 수도원 건물은 호수 근처 북쪽에 있다.

11세기 후반과 12세기 초반에 교회가 재건되었고, 동쪽의 두 탑은 15세기에 완공되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울에 봉헌된 이 교회는, 교구 교회가 되었고 18세기 로코코 양식으로 장식되었다. 수도원장 하이토 3세(Heito III)는 섬의 동쪽 부분인 오버첼(Oberzell)에 게오르게 성인의 두상 유해를 기리기 위해 성 게오르게 교회를 세우고 896년에 성화되었다. 그리고 교회에 하이토 3세가 로마 여행에서 가져온 성 게오르게 두상 유물을 보관하였다.

미텔첼에 있는 성모 마리아 수도원의 특징은 측랑 3개와 이를 마주보는 트랜셉트(transept, 십자형 교회의 좌우 날개 부분)이다. 이 수도원에는 직사각형의 서쪽 탑이 있고, 그 옆에는 11세기 중반에 지어진 좁은 현관과 넓은 서쪽 트랜셉트가 있다. 이 높은 탑 밑에는 애프스(apse, 교회 동쪽 끝에 있는 반원형 부분)가 있고, 그 앞에는 제단이 세워져 있다.

12세기에 지어진 네이브(nave, 십자형 구조 교회의 몸통 부분)는 목조 지붕으로 덮여 있고, 동쪽 트랜셉트 부분으로 개방되어 있다. 트랜셉트의 교차점은 동일한 넓이의 아치 4개와 성가대석으로 경계가 지어진다. 816년에 봉헌된 성가대석은 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이다. 화려한 고딕 양식의 성가대석 옆에는 성물 보관소와 보물실이 있다. 수도원은 17세기에 교회 남쪽에 세워졌으며, 현재는 시청과 사제관이 있다.

니더첼에 있는 성 베드로와 성 바울 교회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구조물로 3개의 복도가 동쪽 끝에서 3개의 반원형 측랑과 만나는데, 측랑은 2개의 큰 종탑 옆, 중앙 구역에 숨겨져 있다. 중앙부의 측랑에는 1104년~1134년에 그려진 벽화가 세 줄로 배치되어 있다. 전신에 후광이 있는 옥좌에 앉은 그리스도의 모습이 4대 복음서의 저자, 교회의 수호성인, 어린 천사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 위에는 사도들을 그린 열이 있고, 다른 열에는 예언자들을 그렸다. 12세기 벽화의 다른 조각들도 아직 남아 있는데, 예수의 수난주기를 나타내는 벽화 조각들은 특히 북쪽 예배당에 있다.

오버첼의 성 게오르게 교회 안에는 초기 로마네스크 시대의 2층 현관과 서쪽 애프스가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교회로 연결된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교회는 3개의 통로와 탑을 올린 복잡한 구조의 서쪽 성가대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랑의 벽에는 오토만 르네상스기의 벽화, ‘그리스도의 기적’을 장식했다. 벽화의 각 장면은 장식 띠로 테두리를 둘렀다. 회랑의 아치 사이에는 채색한 흉상이 있으며, 창문 사이에는 사도들의 조상이 있다. 현관 1층에 있는 성 미카엘 예배당 역시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벽화로 장식되었다.

라이헤나우 섬에는 교회와 예배당이 모두 25개 건설되었다. 14, 15세기에는 수녀들의 공동체가 섬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들 건물은 대부분 1803년에 보덴 주교의 재산이 세속화되면서 19세기에 파괴되었고, 현재는 고고학적 유적의 형태로만 남아 있다.

대수도원의 필사본과 문서는 칼스루에와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으로 옮겨졌고, 수도원의 포도원과 농지는 분할되어 매각되었다. 포도, 복숭아 재배와 같은 전통적인 농업이 지속되었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새로운 주택이 100여 채 지어졌다.

1838년과 1839년에 라이헤나우 섬은 방죽 길을 통해 육지와 연결되었고, 19세기 말부터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이 이곳에 몰려왔다. 현재 이 섬은 채소와 와인 생산으로 유명하다. 섬에 있는 약 120개의 농장은 포도, 원예, 과수농업에 주로 종사한다. 섬 인근에는 큰 습지대가 있어서 철새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1271호 31면, 2022년 6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