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 93
영화로 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II

양심적 병역거부: 양심의 자유와 안보의 특수성 사이에서

다양함과 개별성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면서도, 대개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대부분은 우리에게 의식되지도 못한 채 외면당하고 있는데, 이런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있다.

문화사업단에서는 장애인과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영화와 함께 살펴본 이전 연재에 이어, 이번 호부터는 성소수자 문제와 종교와 양심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소수자들의 삶을 표현한 영화를 소개하고, 이들의 삶을 돌아보도록 한다.


최근 유엔인권이사회(UNHRC)가 감옥에 있는 전 세계 양심적 병역 거부자 중 90% 이상이 한국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지적하면서 국내에도 양심적 병역 거부와 관련된 논의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국회 입법조사처가 양심적 병역 거부와 관련된 제도 개선 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양심적 병역거부문제는 징병제국가에서만 문제된다. 1998년부터 징병제를 일시 중단한 프랑스는 카톨릭과 군사주의 전통이 강한 탓에 1963년에야 양심적 병역거부가 법제화되었지만 유럽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부정하는 나라는 터키뿐이라고 한다.

러시아마저도 복무기간이 24개월이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1673년 로드아일랜드 주법에서 일반 시민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무기사용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을 가진 양심적 병역거부가제도가 최초로 인정되었다. 다른 주에서도 1740년대 이후 일정한 범위 내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1940년에 제정된 선발징병법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특정한 종파에 관계없이 ‘종교적 교육 및 신앙을 이유’로 하여 참전을 거부한 자에게 신청할 수 있게 하여 그 범위가 넓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5년 5월 12일, 광주지방법원의 최창석 부장판사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여호와의 증인 신도 3명에게 1심 무죄 판결을 선고하면서 법원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대법원 판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인 2015년 5월 13일, 국제앰네스티는 대한민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보고서를 여러 외국어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본격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2018년 4월 기준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수감자는 약 235명이며 연평균 약 570여 명의 병역거부자가 나온다고 한다. 과거 누적 총계는 약 19,300명 가량이다.

방문자, 신동일 감독, 2006

2006년 개봉한 신동일 감독의 영화 〈방문자〉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한 여호와의 증인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계상(강지환 역)은 편한 길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평화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병역거부와 감옥살이를 택한다. 물론 계상에게 주어진 것은 따스한 온정이나 격려보다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여호와의 증인’이 한국사회에서 갖는 ‘반사회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들이다.

세상에 대한 불만을 마음에 담은 채 스스로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인생 안 풀리는 시간 강사, 호준(김재록). 그는 고장 난 문 때문에 욕실에 갇혀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전도를 위해 근처를 지나던 계상(강지환).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끌리듯 집에 들어가, 탈진한 상태의 호준을 구해낸다. 그 일을 계기로 계상은 호준의 집을 방문하기 시작하며 영화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호준은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는 강사다. 홍상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처럼 호준은 한국 사회의 무기력한 인텔리를 표상한다. 그는 언제나 말만 앞서며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사람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계상을 만난 호준은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갈등을 겪는다. 오솔길을 같이 걸으며 기독교에 대한 토론을 하는 장면은 의견 대립의 절정을 나타낸다.

호준은 계상의 사회적 부조리를 외면한 관념적인 종교 믿음을 비판하고, 계상은 말만 잘하는 호준을 비판한다. 계상이 호준에게 사과하나 호준이 계상의 손을 뿌리치고 가는 혼자 걸어가는 장면에서는 두 사람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양심적 병역거부)을 이야기하는 계상과 그에 따른 처벌을 안타까워하는 호준을 비춰주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갈등은 완전히 해소된다.

한편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기계적으로 처벌하는 사회적 부조리가 은유적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판사의 얼굴이 나오지 않고 호준의 얼굴에 법조문 읽는 소리만 들리는 장면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기계적 법적용의 비인간성을 상징하고 있다.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는 2006년 6월 내린 시애틀 국제영화제 뉴 디렉터스 경쟁 부문에서 ‘최고 신인감독에게 수여하는 심사위원대상(Best New Director-Grand Jury Prize)’을 받았다. 이 영화제의 심사위원단은 “극도로 양분되어가는 세계 속에서 공감대를 찾아가는 두 이방인에 대한 현대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매우 세심하고도 솔직한 감성으로 풀어간 영화!”라고 수상의 배경을 설명했다.

<방문자>는 2006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소개된 뒤 홍콩 국제영화제, 시드니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된 바 있으며,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 블라디보스토크 자오선 영화제, 뉴질랜드 영화제, 멜버른 국제 영화제 등에도 초청되었다.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는 2006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Top 50 영화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심사위언들로부터 한국의 우디 앨런이라며 그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통찰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신동일 감독의 또 다른 문제작인 이주민 노동자를 다룬 <반두비>는 2009년 프랑스, 낭뜨에서 개최된 제31회 낭뜨 3대륙영화제 (31st Festival of 3 Continents of Nantes)의 경쟁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268호 23면, 2022년 5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