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26)

브레멘 시청과 롤란트 상(Rathaus und Roland in Bremen)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매주 연재한다.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아픈 역사도 갖고 있는데, 2009년 현대적 교량 건설로 인해 자연 경관이 훼손됨을 이유로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명된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제명된 첫번째 사례였다.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등재일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2004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브레멘 시청과 롤란트 석상은 브레멘 시의 자치와 주권을 상징한다. 1404년에 만들어진 롤란트 석상은 좌대 위에 5.5m 높이로 서 있다. 옛 시청은 15세기 초에 브레멘이 한자 동맹에 합류한 후 지어진 고딕 양식 건물로, 17세기 초에 이른바 베저 르네상스(Weser Renaissance)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20세기 초에 옛 시청사 뒤쪽에 지은 새 시청사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복합 구조물이다.

브레멘의 기원은 이 도시가 주교령이 된 8,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빌레하트 주교와 칼 대제가 브레멘에 부여한 특전이 설립 기반이었다. 965년에 브레멘은 관세권과 조세권을 획득하였다. 브레멘 시민들은 1186년 특허장에 승인된 바와 같이 시민공동체(universitas civium)의 연합을 이루었으며, 1225년에는 집정관으로 구성된 시의회가 존재하였음이 문헌에 적혀 있다. 이 시의회에서는 시민에게 적용되는 시민법을 마련하였는데, 이 가운데 주로 참조되는 것은 1303년~1304년 개정판이다. 브레멘 시는 1358년에 한자 동맹에 합류하였다.

일찍이 자치권을 획득한 바 있는 브레멘 시는 1646년에 공식적으로 자유 제국 도시로 승인받았으며, 1947년부터 독일연방공화국의 주(州)가 되었다.

롤란트(Roland) 석상

수호성자 롤란트는 프랑스에서 전설이 시작되었다. 롤란트는 칼 대제의 군인으로 수많은 전쟁에서 매우 큰 공적을 올린 “무적의 군인”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칼 대제의 후손인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서 롤란트가 수호의 상징이 되었다.

브레멘 시청사(Rathaus) 앞에 서 있는 롤란트석상은 브레멘 시를 수호하는 성자의 이미지를 나타낸 것으로, 긴 칼과 방패를 들고 있다.

원래 독일의 북부 지역에서 이러한 롤란트 동상은 여럿 존재했었다고 한다. 브레멘에서도 이미 1300년대부터 나무로 만든 롤란트 동상이 있었다고. 이후 사암으로 다시 만들어 지금의 모습이 유지되고 있다. 다만, 머리 부분만 새로 만들어 교체하였고, 원래의 머리 부분은 브레멘 북쪽 외곽에 있는 포케 박물관(Focke Museum)에 따로 보관 중이다.

그리고 롤란트 동상과 관련된 두 가지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롤란트 동상이 들고 있는 방패에 새겨진 쌍두(雙頭) 독수리 문양은 독일 황제의 문양이다. 당연히 황제의 허가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것. 그런데 황제의 통치에서 독립하여 자유를 보장받은 자유국가 브레멘에서 황제의 문양을 새긴 롤란트 동상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어이없게도, 정답은 “문서 위조”라고 한다. 황제의 문서를 위조하여 마치 황제로부터 허가를 받은 것처럼 속여 문양을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나폴레옹에 관한 것이다. 나폴레옹이 독일을 침략한 뒤 브레멘에 도달했을 때 그는 롤란트 동상을 본국으로 가져가려 하였다. 만약 그의 뜻대로 이루어졌다면 아마 지금 롤란트 동상은 브레멘이 아닌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브레멘 시민들은 롤란트 동상을 지키기 위해, 이것이 문화적으로 별 볼일 없는, 가치없는 허접한 것이라고 강조하여 나폴레옹의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 덕분에 롤란트 동상은 원래 자리에 그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브레멘시청

브레멘 최초의 시청은 14세기에 만들어졌다. 현재의 구청사는 1405년~1409년에 건설되었다. 1595년~1612년에 건축가 뤼더 폰 벤트하임(Lüder von Bentheim, 1555~1612)이 개조하였는데, 그는 이미 1585년 착수된 라이덴(네덜란드)의 고딕양식 시청 외관 재건축과 브레멘의 다른 건축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벤트하임은 개조 과정에서 광장을 조망하는 새로운 파사드를 만들었다. 베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파사드는 이때 새로운 건축 요소들이 한스 프레데만 드 프리스(Hans Vredeman de Vries), 헨드리크 골트지우스(Hendrik Goltzius), 야코프 플로리스(Jacob Floris) 등 네덜란드 르네상스의 거장들이 기초를 마련한 건축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1909년~1913년에는 뮌헨의 건축가인 가브리엘 폰 자이들이 건물 뒷부분에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신청사를 증축하였다. 브레멘 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심하게 폭격을 당하여 건물의 62% 정도가 파괴되었으나, 시청 지역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1276호 31면, 2022년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