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28)

로마 제국 국경(Grenzen des Römischen Reiches)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매주 연재한다.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아픈 역사도 갖고 있는데, 2009년 현대적 교량 건설로 인해 자연 경관이 훼손됨을 이유로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명된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제명된 첫번째 사례였다.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등재일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시저는 로마제국의 영토를 라인강 서쪽, 도나우강 남쪽으로 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겼고, 후대 황제들 대부분은 이를 충실히 지켰다.

이번 호에 살펴볼 로마 제국 국경은 로마제국이 최대로 팽창했던 하드리아누스황제 시기인 2세기 경계선이다. 당시 로마 제국 국경은 영국 북부의 대서양 연안에서 시작해 유럽을 거쳐 흑해에 이르고, 거기서부터 다시 홍해를 거쳐 북아프리카를 가로질러 대서양에 이르는 5,000㎞에 달한다.

오늘날 남아 있는 로마 제국 국경의 유적은 성벽, 해자, 보루, 요새, 망루와 민간인 정착지 등이다. 국경선 일부는 발굴되어 복원되었으나 일부는 파괴되었다.

독일 지역에 속하는 로마 제국 국경의 두 부분은 독일 북서부에서 남동부의 도나우 강에 이르기까지 550㎞에 달한다. 118㎞ 길이의 하드리아누스 방벽(Hadrian’s Wall)은 122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명에 따라 로마의 속주 브리타니아(Britannia 오늘날의 영국)의 최북단 경계를 따라 건설된 것이다.

이 방벽은 뛰어난 군사 구역으로, 이를 통해 고대 로마의 방어 기술과 지정학적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안토니누스(Antonine Wall) 방벽은 스코틀랜드에 있는 60㎞ 길이의 방어 시설로,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us Pius) 황제가 142년에 북쪽의 ‘야만족(barbarians)’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이 방벽은 로마 제국 국경의 가장 북서쪽에 위치한다.

초기의 국경 방어 시설은 목조탑에서 감시할 수 있는 숲으로 이어진 형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 시기에는 말뚝을 박아 만든 울타리로 국경을 보완하였다. 2세기에 국경이 부분적으로 직선화되었고, 제방 또는 석조 벽과 다수의 소규모 요새들로 강화되었다.

로마 통치가 끝난 뒤 로마화된 켈트·게르만족이 국경선 안의 영토에서 이주하였고, 새로운 게르만족 정착민이 들어왔다. 방벽은 깊은 인상을 주는 주요한 지형지물로 여러 세기 동안 유지되었으나, 방벽을 건설한 이유와 그것이 사용된 내용은 신화와 전설로만 전해진다.

북부 게르만·라에티아 국경을 ‘재발견’한 것은 인문학 연구에 대한 19세기 관심과 연계되어 있다. 북부 게르만·라에티아 국경 연구를 수행한 핵심 기관은 제국국경위원회(Reichs Limeskomision)이다. 이 위원회는 1892년에 설립되었으며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테오도어 몸젠(Theodor Mommsen)이 위원장을 맡았다.

이 위원회는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덴 대공국, 헤센 대공국, 바이에른 왕국에서 이전에 수행한 연구를 많이 참고하였다. 그 이전의 다른 연구들은 로마 유적을 연구하는 각각의 기관과 개인이 수행하였다. 19세기 초반에 활발하게 연구했던 로마 제국국경위원회가 있고, 개별 연구자로는 하나우의 빌헬름 콘라디(Wilhelm Conrady), 헤센의 프리드리히 코플러(Friedrich Kofler), 바이에른의 프리드리히 올렌슐라저(Friedrich Ohlenschlager)와 카를 포프(Karl Popp) 등이 있다.

제국국경위원회가 수행한 로마 제국 국경 연구 결과를 담은 14권의 책자 중 마지막 책자는 1937년에 발간되었다. 90개 이상의 요새와 1,000여 개의 망루, 모든 경계선 부분을 식별하고 기록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독일연방공화국이 수립된 뒤에야 로마 제국의 국경 연구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1959년 이래 로마독일위원회가 공개 질의를 하면서 새로운 논점을 다루었고, 그 결과가 ‘국경 연구(Limesforschungen)’ 시리즈로 지속적으로 출판되고 있다. 점차적으로 군사적 논점뿐만 아니라 민간인 정착과 국경 지방의 관계를 비롯한 다른 주제도 폭넓게 논의되고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개발 붐이 일면서 유적과 국경 요소의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지식과 연구에 상당히 기여하였다. 새로운 연구 기법과 항공 촬영을 이용해 독일 내 로마 제국 국경의 범위와 특징을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의 로마제국 국경

기원전 2세기부터 로마는 알프스를 넘어 골과 게르마니아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시저는 최초로 영국 해협을 건넌 로마 장군으로, 오늘날의 영국 남동부에 일시적으로(기원전 55〜54) 머물렀다. 그의 뒤를 이은 몇몇은 영국 해협 건너에 정착하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브리타니아를 성공적으로 정복한 것은 클라우디우스 황제이다. 이 과정은 43년에 시작되었으나 로마 패권이 안정되기까지는 몇 십 년이 걸렸다. 아그리콜라가 스코틀랜드의 칼레도니아인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으나, 85년에 공세가 중지되고 한 개 군단과 일부 보조 병력은 도나우 강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받았다.

군대가 철수한 뒤 경계선은 ‘돌 도로(Stanegate)’로 불리는 도로를 따라 고정되었다. 반복된 공격에도 로마는 영국 북부를 점령하지 못하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국경을 따라 방대한 장벽을 처음으로 설치하였는데, 이는 로마의 방어선 중 가장 경이로운 것이다.

이 돌로 만든 벽은 타인 솔웨이(Tyne-Solway) 경계보다 약간 북쪽에 있으며, 서기 130년에서 140년에 지어졌다. 다음 황제인 안토니누스 피우스(138〜161)는 국경을 포스 만과 클라이드 만의 경계로 옮기기로 하였다. 새로운 방벽은 142년 이후 세워졌다. 이 방벽은 한 세대 동안 사용되다가 160년대에 방치되었다.

1278호 31면, 2022년 8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