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짐승은 정말 무령왕릉을 지켜 왔을까 ②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가루베 유물
가루베가 반출한 유물을 환수하기 위해 그동안 많은 노력이 있었다. 1946년 공주박물관은 유물 환수를 위해 미 군정청에 반환 청구를 했지만 가루베 수집품은 하나도 반환받지 못했다. 1947년에도 한국 정부는 일본연합국사령부에 일본으로 반출된 문화재 목록을 제출하고 반환을 요청했는데 이 목록에는 가루베의 수집품도 있었다. 하지만 연합국의 명령에 일본 정부는 아무런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1965년 한일문화재반환협상에서도 한국 정부는 반환 대상에 가루베가 반출한 유물 목록을 적시하고 반환을 요청했지만 일본 정부의 거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루베가 수집한 유물 중에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2006년 국립공주박물관에 기증한 기와 4점이 전부이다. 이 유물은 국립나라박물관에 위탁보관 중인 것으로 가루베 지온의 아들이 기증하는 형식으로 돌려준 것이다.
당시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은 수천여 점의 문화재를 도굴, 반출하고도 가치가 낮은 기와 4점만 달랑 기부하면서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를 면피하려는 행태에 분노했다. 국립공주박물관 역시 유물 취득 과정에서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돌려받는 반환이 아니라 소장자가 선의로 전달하는 기증 형식으로 받아들여 아쉬움을 남겼다. 가루베 지온 컬렉션은 기와 4점을 기증한 것 이외에 지금까지 단 한 점의 유물도 반환하지 않고 있다.
가루베가 저지른 한국 문화재의 도굴과 반출, 은닉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다. 그가 저지른 반역사적 행위들은 두고두고 역사의 평가와 단죄를 받을 것이다. 일본의 문화재 약탈자들과 일본 정부는 지금이라도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유물 등 현재 확인된 유물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돌짐승이 국보가 된 사연
1971년 무령왕릉의 발견은 백제 역사에나 우리나라 문화예술사에나 커다란 이정표를 남긴 사건이다.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왕릉 중 그 주인이 밝혀진 최초의 왕릉이다. 다른 왕릉들은 천마총, 송산리 6호분 등으로 불릴 뿐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이유는 대부분 왕릉들이 도굴당해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기록이나 유물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주 앞바다에 묻혀 도굴당할 수 없는 신라 문무왕릉만이 주인을 알 수 있었다.
송산리 6호분 빗물 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찬란했던 당시의 백제 문명을 밝혀주는 증거로 백제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발굴할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1500여 년 만에 왕릉의 모습이 드러나자 서둘러 고사를 지낸 발굴단은 조심스레 왕릉을 감싸고 있던 입구의 벽돌을 열었는데 바로 그 앞에 돌짐승이 떡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한다.
높이 30센티미터, 길이 47센티미터로 크기는 작아도 머리에 뿔을 단채 뭉툭한 입을 한껏 벌리고 입술은 붉게 칠해져 있었다. 이 돌짐승은 저승세계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보는 이들을 섬뜩하게 했으리라.
무덤을 지키는 돌짐승은 중국의 고대 고분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생김새는 각각 다른데 무령왕릉을 지키는 돌짐승이 그래도 동글동글하니 귀염성이 있다.
몇 해 전 공주시에서 제작한 돌짐승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다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돌짐승은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아마 도망가지 말고 무덤을 잘 지키라는 뜻으로 그리 한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중국의 진묘수들도 뒷다리 한쪽이 부러진 모습으로 보아 같은 사연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오직 무덤을 지키기 위해 다리도 못 쓰게 만든 돌짐승을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묘사한 것은 무덤의 수호신 이미지와 어울리진 않는다.
국보 제162호 돌짐승을 문화유산회복재단의 상징으로
진묘수가 국보가 된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도굴꾼들의 손길에서 무령왕릉을 수호하고 백제의 찬란한 문명을 지켜내어 후대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 아닐까
과연 다른 왕릉에는 돌짐승이 없었을까 상상해 보며,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상징으로 문화유산회복재단은 돌짐승을 재단을 상징하는 심벌로 사용하고 있다.
연재를 마치며
문화유산회복운동은 문화 의병들의 역사 주인공 찾기
2019년, 만세운동 100주년이 되었습니다. 2020년,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건만 진정한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점의 35년이 남긴 역사적 상흔이 곳곳에 있습니다.
문화유산은 우리가 미래로 나아가는 데 힘이 되는 든든한 디딤돌과 같습니다. 역사는 유산에 저장되고, 유산은 역사를 미래로 전달하는 창(窓)입니다. 우리는 지난날, 침략과 강점을 겪으면서 수많은 문화유산이 반출되었습니다.
1945년 이후 수많은 선각자들의 노력으로 1만여 점이 돌아왔지만 단 4건만이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역사와 문명의 기원을 밝혀 줄 문화유산의 회복은 여전히 머나먼 과제입니다.
이번 연재는 십 수 년간 해외 각처에 있는 한국 문화재를 찾고, 환수 활동하면서 겪은 일들을 중심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잊고 있거나 또는 숨겨진 문화유산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남기고자 하였습니다만 많이 부족합니다. 다만 이 기록이 또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쓸모가 있다면 큰 보람일 것입니다.
간혹 문화유산의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 모든 유산은 당시 누군가의 정성으로 탄생한 생명체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문화재를 단순히 값비싼 보물이 아니라 진정한 가치를 지닌 인격체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큰 희망입니다.
“문화유산회복운동은 기억의 힘을 바탕으로 문화 강국을 실현하고자 하는
문화 의병들의 역사 주인공 찾기입니다.”
1278호 30면, 2022년 8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