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34)

카롤링거 시대의 유적, 서쪽 건축물과 코르베이 키비타스 (Karolingisches Westwerk und Civitas Corvey)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매주 연재한다.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아픈 역사도 갖고 있는데, 2009년 현대적 교량 건설로 인해 자연 경관이 훼손됨을 이유로 드레스덴 엘베 계곡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명된 것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제명된 첫번째 사례였다.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등재일 기준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코르바이 키비타스(Civitas Corvey, 주교구가 있는 코르바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도시)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획스터(Höxter) 교외의 베저강(Weser River)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

전원 속에 잘 보존된 ‘카롤링거 시대의 서쪽 건축물과 코르바이 키비타스’는 서기 822년부터 885년 사이에 설립되었다. ‘서쪽 건축물(Westwerk)’은 카롤링거 왕조와 신성로마제국 시대에 대규모 로마네스크 장랑식 성당을 건축할 때 채택한 양식으로, 서쪽 입면이 돌출된 서향구조를 말한다. 이 서쪽 건축물은 카롤링거 시대에 완성된 구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현존하는 것이다. ‘서쪽 건축물’은 카롤링거 왕조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건축학적 표현 중 하나로서 카롤링거 시대에 완공된 진정성을 갖춘 사례이다.

코르바이 수도원의 건축학적 표현과 장식에는 영토 지배와 행정을 장악하는 동시에 유럽 전역에 기독교와 카롤링거 왕조의 문화 및 정치 질서를 전파하고자 했던 의도가 담겨 있다. 이것은 당시 프랑크 왕국 내에서 황립 수도원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선정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그 선정 이유를 밝히고 있다.

첫째, 코르바이 수도원에는 현존하는 유일한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카롤링거 시대의 ‘서쪽 건축물’ 있다. 3면이 갤러리로 되어 있는 2층 중앙의 메인 룸은 고대 양식의 형태와 예술장식을 기초로 구성되었으며, 현관홀의 아치 역시 고대의 건축 공법을 적용하였다. 전체적으로 로마네스크와 고딕 시대 교회 건축 발달의 기술적·형태적 토대가 되었고, 추후 바로크 시대에 재해석 되었다.

둘째, 2층의 메인 룸은 예배 또는 지위가 높은 손님을 위한 공간이다. 수도원 건물을 둘러싼 보다 넓은 수도원 구역과 학교 및 도서관은 종교·문화·경제적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늦어도 940년에 요새화 되었으며, 카롤링거 시대에 이미 완성되었고 순례자를 위한 숙소, 손님과 하인들을 위한 숙소, 작업 구역, 공방 등이 있었다.

이 복합단지는 프랑크 제국의 변방에 불과했던 이곳에서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 맞이한 정치·문화적 부흥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

오늘날까지 잘 보존된 전원 풍경을 배경으로 멀리서 뾰족 지붕과 꾸밈없는 석조 첨탑이 눈에 띄는 ‘카롤링거 시대의 ’서쪽 건축물‘과 코르바이 키비타스’는 주요 부분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카롤링거 양식의 건축물 중 하나이자 지금 이 순간까지도 본래의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유일한 사례이다. 특히 ‘서족 건축물’은 혁신적 요소를 도입하면서도 고대의 본보기를 참고하여 건축하였고 서구의 로마네스크 및 고딕 교회 건축 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코르바이 수도원은 프랑크 왕국의 여러 수도원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수도원 중 하나였다. 당시 유럽의 각처에 일어난 정치적 종교 과정을 고려했을 때 코르바이 키비타스의 선교 임무는 상당히 중요했다.

왕실 수도원이었던 코르바이 키비타스는 작센 및 인근 지방의 개종과 관련하여 지적 · 종교적 역할을 수행하였을 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기독교 세계의 변방이었던 프랑크 왕국의 전초기지로서 그 정치적·경제적 위상이 매우 높았다.

줄지어 늘어선 기둥이 둥근 지붕의 홀을 받치고 있는 본래 모습 그대로 보존된 1층과 삼면이 갤러리로 에워싸인 2층의 메인 룸이 가장 큰 특징인 코르바이 수도원은 ‘카롤링거 르네상스’의 가장 뛰어난 사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코르바이 수도원은 역사적 전통을 통해서, 그리고 옛 카롤링거 시대 이전부터 보존되어 온 건축양식을 통해 유럽의 문화 중심지들과 연결되어 있다. 수도원이 처음 건립된 당시에 새긴 석판에 ‘Civitas Corvey’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 명칭은 고고학적 증거로 볼 때 수도원이 세워진 지역과 같다.

완전성

건축학적으로 잘 보존된 ‘서쪽 건축물’과 보호가 필요한 고고학 기념물로서 이전에 요새화되었던 수도원 구역은 그 위치와 주변 환경이라는 맥락 속에서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수도원 단지는 본래의 규모 그대로 자연 환경과 하나가 되어 조화로운 모습으로 훼손 없이 잘 보존되었다.

바로크 양식의 수도원 단지 덕분에 이 유적은 수 세기 동안 수도원으로서 종교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교회를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했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오늘날까지 종교적인 시설로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수도원 외곽의 요새화된 마을의 흔적은 또한 이 지역의 취락 유형에 코르바이 수도원이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오늘날까지 잘 보존된 전원 환경 또한 등재된 유산의 중요성을 평가하고 인정하는 데 적절한 맥락을 제공하고 있다.

1284호 31면, 2022년 9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