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쟁 –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 (10)

나치 약탈 부대 ERR ②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약탈한 문화재와 예술품이 속속 원래의 합법적 소유자나 그 상속인들을 찾아간다. 특히 반환 문제가 제기된 예술품과 문화재 소장자가 그 취득 경위와 역대 소장자의 획득 정당성을 입증하라는 ‘워싱턴 원칙’ 합의 이후 나치 시대 약탈품의 회복이 가속화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군국주의 일본에 의해 약탈당한 나라가 어디 한국뿐이랴. 중국과 대만을 비롯해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그렇다. 아프리카와 아시아권의 약탈 문화재 반환에 대해 이젠 식민제국주의를 거쳤던 국가들이 답할 차례이지만 가만히 있는 우리에게 그냥 돌려주지 않는다.
약탈 문화재 환수는 유물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단순한 물리적 위치 변경이나 한 나라의 컬렉션 부족 부분을 채운다는 문화적 자존심 높이기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창조자들이 만든,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가는 제자리 찾기라는 도덕적 당위성뿐만 아니라 약탈에 스며든 역사적 핏빛 폭력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힐링의 길이다.


“총통미술관을 채워라”, 나치 약탈 부대 ERR

ERR부대로부터 약탈된 대작을 되찾는 데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5 년을 기다려야 했다 . 예술품 상자들은 처음엔 나치 독일이 압수한 예술품을 보관하는 중앙 창고인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보내졌다. 그런데 연합군이 공습하면서 그 지역이 위험에 처하자 그 가운데 로스차일드 소장품들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근처의 지하 소금 광산으로 옮겼다.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발견했을 때 상자에는 원래의 표시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히틀러나 괴링이 뜯어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역설적으로 히틀러는 프랑스에서 많은 예술품을 강탈해 갔지만, 공습으로 훼손되는 것을 막으려고 대피시키는 바람에 대작들에 눈길 한번 주지도 못했다. 컬렉션은 전쟁이 끝난 뒤 큰 손실 없이 로스차일드 가문에 그대로 반환되었다. ‘천문학자’를 무사히 되찾은 로스차일드 가문이 1983년 상속세를 이 작품으로 대납하면서 프랑스 정부 소유가 되었다.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천문학자’의 액자 뒤쪽에는 검은색 잉크로 나치 문양인 하켄크로이츠(Hakenkreuz)가 낙인처럼 찍혀 있다고 한다.

한편, 프랑스 정부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매물로 내놓은 렘브란트의 ‘표준적 소위’를 국보로 분류했다면서 매입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관보 <오피시엘 Journal officiel>은 2019년 4월 19일자 기사에서 작품의 국외반출 허가를 미루면서 국립박물관에 매입 우선권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로스차일드의 가문이 1840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당시8 40파운드에 구입한 작품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180년 이상 보유했던 이 작품이 해외로 나가지 못하게 사들이려면 루브르박물관은 30개월 동안 필요한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작품 가격이 얼마나 될까. 루브르박물관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레이크스(Rijks) 미술관과 함께 2016년 렘브란트의 초상화 두 점을 구입하면서 1억 6000만 유로를 지불했다. ‘표준적 소위’는 훨씬 더 보존 상태가 좋지만, 가격은 알려지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가 ‘표준적 소위’의 국외 반출을 금지한 것은 작품 가격이 치솟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

나치에 압수된 현대 미술 또는 퇴폐 예술품의 운명은 나치가 특히 선호했던 전통적 대가들의 작품과는 사뭇 달랐다. 이런 작품들은 팔려나가거나 교환되고, 심지어 파괴되어 전쟁 후에도 회복이 매우 어렵게 되었다. 파리의 미술품 거래상 폴 로젠버그 개인 컬렉션과 그의 화랑에서 압수한 현대 미술 약 400점은 히틀러와 나치 지도자들이 경멸했던 화가들의 작품이었다. 피카소, 마티스, 브라크뿐만 아니라 고흐, 모네, 르누아르, 마네, 드가, 들라크루아의 작품도 있었다.

그 작품들은 압수되어 주드폼 미술관 뒷방에 보관되었다. 이 방에 접근할 수 있는 프랑스 비밀 큐레이터들은 이 대작들이 우여곡절, 즉 파괴될 것으로 보고 뒷방을 ‘순교자의 방’이라고 불렀다.

퇴폐 예술은 독일로 반입이 금지되었기에 ERR에 가까운 화상들이 미술관에 와서 프랑스나 스위스 미술품 시장에서 쉽게 팔릴 작품들을 골라 갔다. 이런 형태로 많은 현대 미술 작품을 팔거나 교환한 괴링은 개인 컬렉션뿐만 아니라 재산도 불렸다. 현대 미술을 집중적으로 수집한 로젠버그 컬렉션은 이런 방식으로 전 유럽에 흩어져 지금까지도 행방불명 상태의 작품이 수두룩하다.

파리에서 활동한 유대계 미술상 로젠버그의 실종작품 가운데 피카소가 1923년 프로방스에서 그렸던 수채화 ‘해변가의 나체 여성(Naked Woman on the Beach)’과 마티스의 작품 일곱 점, 드가의 ‘가브리엘 디오트 양의 초상화(Portrait of Mlle. Gabrielle Diot)’가 대표적이다.

1289호 30면, 2022년 11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