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야기 / 118

한국의 삼보사찰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를 살펴보다(1)

한국인들의 삶은 한반도에서 2000년의 역사를 지켜온 불교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기에 깊은 산중의 산사(山寺)는 마음속에 잠재된 고향과도 같이 편안하고, 한번쯤은 꼭 찾아보고 싶은 존재이자 우리의 한국 여행에서 빼어놓을 수 없는 방문지이기도 하다.
문화사업단에서는 한국의 사찰 가운데 이른바 삼보(三寶)사찰을 살펴보며 한국 사찰의 진수를 살펴보도록 한다.

삼보사찰과 사찰의 건축물

우리 나라 불교의 삼보사찰은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通度寺), 합천 가야산의 해인사(海印寺), 전남 승주의 송광사(松廣寺) 셋을 가리킨다.

삼보는 불교의 신행 귀의대상인 불(佛)·법(法)·승(僧)을 가리키는 말로서 통도사가 불, 해인사가 법, 송광사가 승에 해당한다. 통도사는 자장율사가 중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창건한 절이다.

그는 불경과 불사리(佛舍利)를 가지고 귀국하였는데,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할 목적으로 이곳 통도사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조성하였다. 그는 승통(僧統)이 되어 이곳 통도사의 금강계단에서 승니(僧尼)의 기강을 바로잡았다고 하는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하여 통도사를 불보사찰(佛寶寺刹)이라고 한다. 영원한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상징하는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통도사의 주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불단(佛壇)만을 마련하였다. *

해인사는 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대장경을 봉안한 곳이라고 해서 법보사찰(法寶寺刹)이라고 한다. 강화도에서 완성한 대장경은 보관의 어려움 때문에 조선 초기에 가야산 해인사로 옮겨졌다. 이곳은 풍수지리에 의하여 예로부터 승지(勝地)로 손꼽히는 곳이었고, 장경각(藏經閣)을 따로 지어 고려 대장경을 안치하게 된 것이다.

송광사는 큰스님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해서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고 한다.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智訥)은 이곳에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도모하였다. 원래 팔공산의 거조사(居祖社)에서 이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뒤에 송광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 그의 제자였던 혜심(慧諶)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까지 16명의 국사가 연이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고 하여 승보사찰 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삼보사찰과 더불어 부산 금정산의 범어사(梵魚寺)는 한국을 대표하는 4대 사찰로 사찰로 손꼽히는데, 범어사는 『삼국유사』와 1700년에 동계(東溪)가 편찬한 『범어사 창건 사적』에 의하면 신라 678년인 문무왕 18년에 의상(義湘) 대사가 화엄(華嚴) 10찰(刹) 가운데 하나로 창건했다고 한다. 835년인 흥덕왕 10년에 이르러 가람의 대체적인 면모가 갖추어졌는데, 왜구를 진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통일 신라 시대에는 많은 건물이 조성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뒤 10여 년을 폐허로 있었다. 1602년에 중건하였으나 또 다시 화재로 소실되고, 1613년에 또 한번의 중창이 있었다.

그 후 범어사는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고, 사원의 규모도 넓혀 선찰(禪刹) 대본산(大本山)이란 이름 아래 경상남도 3대 사찰로 발전하였다. 이 절과 인연이 깊은 고승으로는 창건주인 의상과 신라 10성(聖) 중의 한 사람인 표훈 스님, 일생을 남에게 보시하는 것으로 일관한 낙안(樂安) 스님, 구렁이가 된 스승을 제도한 영원(靈源) 스님, 근대의 고승 경허(鏡虛) 스님, ‘님의 침묵’으로 유명한 한용운(韓龍雲) 스님, 동산(東山) 스님 등이 있다.

절 내에는 보물 제250호인 삼층석탑과 근래에 만들어진 칠층석탑, 석등과 보물 제434호인 대웅전 등이 있다.

사찰의 건축물

해탈문(일주문)

절의 현관정도의 위치를 지닌다. 본래 해탈문이라고 부르며, 이 해탈문이 절과 세속을 가르는 경계가 된다. 이 해탈문의 형식 중 기둥을 일렬로 한 줄 세워 지붕을 얹은것을 일주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을 모은다는 의미를 지닌다. 해탈문에는 절의 이름이 쓰여진 현판이 걸린다.

천왕문

사천왕을 모신 문.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므로 잡귀를 막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해탈문에 이은 두번째 문. 때문에 중문이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다. 고대의 절들을 보면 회랑으로 금당 주변을 막아놓기 때문에 반드시 이 중문을 지나야 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사천왕이 일반적이지만, 고대나 일본의 경우에는 이천왕이나 금강역사 두 명이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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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상이나 보살 상들을 모셔놓은 건물들을 전이라 하고 그 외의 건물들은 각이라 한다. 불상을 모셔놓은 전이 그 절에서 가장 크고 중앙에 위치해있다. 금당이라고도 한다.

절에서 모시는 부처에 따라 중앙이 되는 전의 이름이 다르며, 대웅전(석가여래), 극락전, 극락보전, 무량수전(무량수불), 약사전(약사불), 팔상전(석가여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 등이 있다. 단 전이 없고 불상을 모시지 않는 건축물도 있는데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바로 그것이다. 진신사리는 석가여래가 직접 남긴 것이므로 불상을 굳이 두지 않는다.

사리, 경전 등을 보관해놓는 장소로 사용된다. 특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곳들을 특히 적멸보궁이라고 부른다. 국내에는 5곳이 있다. 목탑, 석탑, 전탑들이 있으며, 한국의 절에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목탑이 많았으나 고려 후기부터는 목탑이 거의 사라지고 석탑만 남게 된다.

선방

승려들이 참선하는 곳으로 선불교(선종)가 발달한 지역(특히 한국과 일본 등)에서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곳은 일반적으로 절의 관계자 외는 출입금지이므로, 절에 갔을 때 함부로 들어가 실례를 끼치지 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