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50)

중세의 전통이 가득한 뷔르츠부르크(Würzburg) ➀

한 나라의 화폐에 도안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그 나라를 대표한다는 뜻일 것이다. 뷔르츠부르크가 그렇다. 지금은 유로를 사용하지만 마르크를 쓰던 시절 뷔르츠부르크 궁전(Resident)를 건축한 Neumann의 초상화가 50마르크 지폐에 배경으로 쓰였다.

그만큼 뷔르츠부르크 궁전이 독일 도시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곳 중의 하나라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헤르만 헤세는 이곳을 여행한 후 “내가 만일 고향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당연히 뷔르츠부르크를 택할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뷔르츠부르크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뷔르츠부르크에 들어서면 산 위에 우뚝 솟은 마리엔부르크 성(Festung)가 사람들을 압도한다. 706년 성모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교회(Marienkirche)를 중심으로 1201년 성을 짓고 1719년까지 당시 도시를 지배했던 대주교가 거주했다. 지금은 문서보관소, 박물관과 레스토랑 등으로 사용된다.

마리엔부르크 성 둘레길에서는 그림처럼 펼쳐지는 마인 강 건너편 구 시가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오래된 다리와 첨탑, 구 시청사, 성당, 그리고 레지덴츠 궁전이 그려내는 풍경은 동화속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마리엔부르크성에서 내려와 구시가지로 들어가려면 마인강을 가로지르는 구 마인 다리(Alte Mainbruecke)를 건너야한다. 1473년에서 1543년 사이에 세워진 이 다리는 프라하의 카를교와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 기독교를 전파했다는 성 킬리안 등 성자들의 석상 12개가 180m 길이를 자랑하는 다리 양편에 위엄있게 서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마인 강 동쪽의 구시가지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대로 곧장 돔 거리를 걸어가면 로마네스크 양식의 돔이 보인다. 이 곳이 독일에서 가장 큰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 중 하나인 성 킬리안 성당이다. 브루노 주교에 의해 1040년에 지어진 이 대성당은 105m 길이로서 독일에서 네 번째로 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레지덴츠(Residenz) 궁전은 뷔르츠부르크에 가면 절대 빠뜨리지 않고 보아야 할 건축물이다.

마리엔부르크 성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레지덴츠는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궁전으로 독일 바로크 양식 건축물의 대표적 존재이며 유럽 전체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장식으로 꾸민 궁전 중 하나이다.

뷔르츠부르크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뷔르츠부르크 궁전은 노이만(Neumann) 의 지도로, 당시 유럽의 쟁쟁한 건축가들과 화가들이 모여 1720~1744년에 건설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웅장하고 호화로운 계단방을 갖춘 영주 주교의 저택이었다.

이 크고 웅장한 건물 안에는 홀 5개와 300개가 넘는 방이 있다. 현관 홀 북쪽에는 노이만이 직접 만든 유명한 계단방이 있다. 또한 18세기 베네치아 최고의 화가 티에폴로가 제작한 600㎡ 크기의 프레스코화는 세계 최대의 천장화이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웅대한 조각 장식과 탁월한 프레스코화로 뒤덮인 계단방은 길이 33m, 폭 18m의 거대한 직사각형으로 된 공간에 둥근 천장이 얹혀 있다. 하지만 이것을 떠받치는 기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노이만의 정역학이 탄생시킨 이 작품은 지금까지 갖가지 시련을 이겨냈다.

지을 당시 계단방은 수많은 건축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빈의 건축가 힐데브란트는 이 방이 결코 하중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며, 건물의 강도에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 결국 노이만이 옳았다는 것은 200년이 지나고서야 비극적인 형태로 증명되었다. 1945년 3월 16일에 영국군이 뷔르츠부르크를 무참히 폭격했을 때, 주교관을 포함한 시내의 중요한 건물들은 모두 파괴되어 버렸지만, 이 둥근 천장은 거뜬히 견뎌냈던 것이다.

뷔르츠부르크는 또한 축제의 도시로 가을 내내 와인 축제가 열리는 것은 물론 도시의 수호 성인 킬리안을 기리는 7월의 킬리안 축제 외에도 매년 6월에 모차르트 음악제, 12월에 크리스마스장 등이 열린다.

◈ 왜 뷔르츠부르크인까?

뷔르츠부르크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중세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라는 점이다.

독일이나 유럽에서 도시이름에 ‘-burg, berg, burgh’ 등이 들어가면 몇 도시의 예외를 제외하면 중세시대 성장한 도시로 보면 틀림이 없다. 우리가 잘 아는 ‘Nürnberg, Bamberg, Heidelberg’ 등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가 있다.

이러한 도시이름의 특징뿐만이 아니라, 도시 구도가, 산위에 건축된 전쟁 방비용 대규모 성, 그리고 직선으로 다리를 가로지르면, 대성당, 그리고 시장 광장, 도시 새내의 거주 궁전 등 도시의 구조도 전형적인 중세도시이다.

뷔르츠부르크는 이외에도, 1719년까지 대주교가 통치를 했던, 제정일치의 도시이기도 했다. 중세 시대 교권이 강한 지역의 특징이다. 이에 해당하는 도시들은 마인츠, 트리어, 쾰른 등 우리가 잘 아는 대도시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독일로만 국한해도 20여 군데가 넘는 지역을 대주교가 세속적 통치자로서 군림하였다.

이와 더불어 유럽 중세를 개창했던 칼 대제시절, 당시 5대 가문, 즉 작센, 로트링엔, 슈바벤, 프랑켄, 바바리아 가문이 다스렸던 지역이라는 점이다.

프랑켄은 아샤펜부르크로부터 뷔르츠부르크, 바이로이트, 뉴른베르크 지역을 아우르고 있는데, 이들 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바이에른 의식보다는 프랑켄 인(人)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하다. 그러기에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포도주 이름도 ‘Frankenwein’인 것이다.

뷔르츠부르크의 특징을 또 하나 든다면 화려한 바로크 건축의 가득한 도시이며, 독일에서 가장 많은 성모상이 건축물을 장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뷔르츠부르크는 ‘마돈나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다음 호부터는 마리엔베르크의 성을 시작으로 뷔르츠부르크 시를 둘러보며, 이러한 특징을 함게 살펴볼 예정이다.

1325호 20면, 2023년 8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