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전쟁 –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 (44)

약탈 문화재 환수는 유물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단순한 물리적 위치 변경이나 한 나라의 컬렉션 부족 부분을 채운다는 문화적 자존심 높이기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다.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가는 제자리 찾기라는 도덕적 당위성뿐만 아니라 약탈에 스며든 역사적 핏빛 폭력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힐링의 길이다.

“우리도 돌려다오”
회복 목소리 커지는 아프리카 ➂

■ 프랑스 최고 법원, 제2차 세계대전 약탈 그림 “원래 소유자에게 돌려줘라”

마크롱 행정부의 아프리카 유물 반환 움직임에 사법부도 보조를 맞추고 있다. 프랑스 최고 법원인 파기원(破棄院, Cour de cassation)은 2020년 7월1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사업가가 약탈당한 인상파 점묘 대가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의 1887년 작품 ‘콩 수확(La Cueillette des pois)’의 합법적 소유자는 유대계 프랑스인 시몽 바우어(Simon Bauer, 1862~1947)의 후손이라고 확정 판결을 내렸다.

부유한 미국인 예술품 수집가인 브루스 톨(Bruce Toll) 부부는 1995년 미국 뉴욕에서 경매로 88만 달러에 ‘콩 수확’을 사들일 때 약탈품인 줄 전혀 몰랐다면서 작품 반환 소송을 제기했으나 프랑스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이로써 그림 소유권을 두고 3년간 계속된 법적 분쟁은 종결되었다. 작품 가격은 170만 달러에 해당한다고 톨 부부 측이 주장한다. 톨 부부 역시 유대인계로 미국 수도 워싱턴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홀로코스트 박물관 후원자다.

그림은 프랑스에서 자수성가한 유대인 사업가이자 인상파 작품 수집가였던 바우어가 소장하고 있었지만, 그가1 944년 프랑스 드랑시 강제수용소에 갇히면서 그의 컬렉션은 나치에 부역하던 프랑스의 비시 정권에 강탈되었다. 바우어는 가난한 어린 시절에 받지 못했던 교육을 채우고자 40세에 세계여행을 했고, 그 후 그림 수집을 시작했다.

그는 1943년 10월 10일 소장품을 조사한 결과 모두 93점을 보유하고 있었다. 바우어는 드랑시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지만, 철도 기관사들의 파업으로 1944년 9월에 풀려나면서 가까스로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났다. 이후 작품을 찾고자 백방으로 뛰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1947년 사망할 때까지 회복한 작품은 몇 점 되지 않는다. 피사로의 ‘콩 수확’도 그렇게 증발했다.

사라진 ‘콩 수확’은 2017년 5월 파리에 있는 마르모탕(Marmottan) 미술관에서 열린 ‘피사로 회고전’에 등장했다. 행사 주최 측이 미국의 톨 부부에게서 그림을 대여해 전시한 것이다. 바우어 후손들이 이를 보고 소장자에게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소송을 낸 것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작품은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판결 직후 바우어 후손들의 변호사인 세드릭 피셔(Cedric Fischer)는 “작품을 합법적인 소유권자에게 회복시킨 역사적인 판결”이라고 반겼다. 그는 또 프랑스 법률이 미국인 소장가에게 적용되면서 “프랑스 법이 글로벌 영역으로 들어갔다”라고 평가했다.

■ 유럽 인권법원으로 가는 프랑스의 과거 잘못

그러나 미국인 소장자 처지에서는 전쟁이 끝나고 50여 년 뒤에 경매에 서 산 작품이 약탈품이라고 빼앗기다시피 했으니 억울할 만하다. 미국인 소장가를 대리하는 론 소퍼(Ron Soffer) 변호사는 프랑스가 그의 고객의 소유권과 방어권을 침해했다고 유럽 인권법원에 제소하겠다고 예고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부동산 개발업을 하는 톨은 프랑스 법원의 회복 결정에 따를 생각이지만, 프랑스 국가를 상대로 작품 상실에 따른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소장가인 톨은 1995년 뉴욕에 있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선의로 샀다고 주장했지만, 프랑스 최고법원은 나치 독일 점령 치하에서 발생한 모든 약탈 행위는 ‘당연 무효(null and void)’라는 1945년 법령을 지지했다. 이에 따라 약탈 물품의 후속 판매 역시 무효이며 이후 “어떤 구매자도 적법한 소유주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헌법이 보장하는 소유권은 판매자를 상대로 언제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 경우 톨 부부가 뉴욕 크리스티와 맺은 계약이19 95년이라 시효가 만료된 상태다.

소퍼 변호사는 “1945년 법률 조항은 소장가의 방어권을 박탈하고, ‘악의로’ 소장한 사람으로 만든다”라고 주장한다. 또 프랑스는 이 작품이 1966년 런던 소더비에서 처음 경매될 때 수출 면장을 발급하는 등 일련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강조한다. 당시에도 바우어 가족이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소더비에서 경매가 진행되도록 결정해 작품이 프랑스 바깥으로 반출이 되게 방치했다는 것이다.

특히 소퍼는 궁극적으로 “첫 범죄가 프랑스 정부에 의해 저질러졌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강조한다. 나치와 손잡았던 비시정권의 ‘프랑스 유대 문제 위원회(French Commission of Jewish Affairs)’가 바우어 컬렉션의 약탈을 명령하고 실행했다. 그는 “프랑스의 비시 정권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톨 부부가 돈을 낸 매우 불행한 사건”이라고 평했다(<아트넷>, 2020년 7월 2일자 기사).

프랑스 정부가 식민주의 시대와 나치 약탈품 반환의 첫 단추를 잘못끼운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 이런 연유로 사부아-사르 보고서 저자들은 마크롱 대통령이 앞으로 5년 이내에 많은 아프리카 유물을 반환하고 싶다는 발언을 실행하려면 먼저 프랑스가 문화재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또 아프리카 국가들이 약탈임을 입증하고 반환을 요청하면 돌려주도록 법을 바꿔야 한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2018년 1월 21일자 기사에서 권고하고 있다. 현재의 문화재 보호법이 개정되면, 연구자들이 이미 약탈 목록을 만들어 두었으니 서브 사하라 국가들은 돌려받기가 한결 수월할 것으로 기대한다.

프랑스의 이런 움직임은 파리 국립도서관에 있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의 환수와도 맞물려 있어 우리도그 행보를 주목할 만하다.

1325호 30면, 2023년 8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