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67)

님펜부르크 궁전(Schloss Nymphenburg)

독일은 서독 시절이던 1976년 8월 23일 유네스코 조약에 비준한 이래, 48건의 문화유산과, 3건의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2022년 특집 기획으로 “독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유산을 매 주 연재한 바 있다.
2023년에는 2022년 기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신청된 8곳과 신청 후 자진 탈퇴, 또는 유네스코에 의해 등재 거부된 문화유산을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실

님펜부르크 궁전은 바이에른 왕국의 통치자였던 비텔스바흐(Wittelsbach) 가문의 여름 별궁으로 처음 지어졌다 바이에른의 선제후 페르디난트 부부가 아들 막시밀리안 2세가 태어난 것을 기념하여 이탈리아식 저택 한 채를 지은 것이 시초인데, 당시에는 교회와 여러 별채, 그리고 작은 벽으로 둘러싸인 기하학적 정원이 있는 거대한 입방체 모양이었다.

18세기 초에 막시밀리안 2세 는 중앙 5층 저택 주변에 4개의 파빌리온을 더 짓고 여러 채의 아케이드로 중앙 저택과 연결하면서 점차 궁전으로 개조했다. 본궁인 레지덴츠 궁전은 비텔스바흐 왕가의 대표적인 궁전이다.

이번 호에서는 님펜부르크 궁전의 각 건축물들을 살펴본다.

중앙 홀(Mittelpavillon)

님펜부르크 궁전 내부는 바로크양식이 가미된 로코코(Rococo) 스타일로 바로크보다 더 장엄하고 섬세하며 우아하다. 화려하고 가벼운 색상, 비대칭 디자인, 인 커브 및 금을 사용했다 실내장식은 우아하고 화려한 가구 작은 조각, 장식 거울, 등 장식예술에 중점을 두었다.

그중 중앙 홀은 1755~1757년 사이에 막시밀리안 3세가 서쪽에 있는 두 개의 홀과 함게 재설계한 것으로 1758년 이후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사용자의 손이 닿는 곳을 제외한 모든 곳은 손도 대지 않았으므로 제작 당시의 로코코 양식 그대로다. 프랑수아 드 쿠빌리스(François de Cuvilliés)가 만든 호화로운 치장 벽토 작업으로 장식된 로코코 스타일은 가장 뛰어난 대규모 실내 장식 중 하나다. 당대 가장 잘나가는 왕실 건축가였던 쿠빌리스는 님펜부르크뿐만 아니라 뮌헨 레지던츠, 테아티너 교회의 정면을 설계한 사람이기도 하다.

중앙홀의 천장화

천장화는 요한 밥티스트 짐머만(Johann Baptist Zimmermann)이 그린 것인데, 짐머만은 바로크양식이 발전한 화려한 예술 문양인 로코코 스타일의 대가였다. 거대한 천장화는 평화를 수호하고 지키는 통치자의 의무를 상징하는 올림픽 천국을 묘사한 것이다. 또, 공원에서 여신이 된 요정 플로라에게 경의를 표하는 님프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님펜부르크 궁전의 이름은 이 그림에서 유래되었다.

미인 갤러리(Schönheitgalerie)

본래 식당으로 쓰이던 방인데, 루트비히 1세가 재위기간(1825~1848) 중 온 나라 여성 중 미모가 뛰어나다고 소문난 여성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해서 이 그림들을 걸어놓은 방이다. 루트비히 1세는 청년 시절부터 여인의 아름다움이 모든 예술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며 자랐고, 젊은 화가들을 후원하는 예술 애호가였다. 그는 가지고 소장품들로 건물들을 미술관으로 바꾸면서 뮌헨을 당대 독일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었다.(루트비히 1세는 발할라 신전을 세우게 한 군주이기도 했다.)

그림의 모델들은 루트비히 1세가 국가 재정을 파탄 내면서까지 열렬히 사랑했던 롤라 몬테스(Lola Montez)를 비롯하여 공주, 귀부인, 상인의 딸, 심지어 무희까지 다양하다. 신고전주의 인물 초상화가이자 왕실화가였던 요셉 칼 슈틸러(Joseph Stieler, 1781~1858)가 그린 36점이 있었는데 한 점은 분실됐고 훗날 다른 화가가 그린 2점이 추가됐다. 슈틸러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베토벤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루트비히 1세의 왕위까지 내린 로라 몬테즈

초상화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뮌헨의 아름다움’이라고 알려진 구두쟁이의 딸 헬레네 세들마이어(Helene Sedlmayr)의 초상과 스페인의 배우 겸 댄서였던 로라 몬테즈(Lola Montez)이다.

여성의 아름다움에서 도덕적 완벽을 이끌어내고 싶어 했던 루트비히 1세는 댄서 겸 배우였던 로라 몬테즈를 아꼈는데, 그 관계를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드러내 귀족들과 교회의 비난을 샀다. 로라 몬테즈는 스무 살 남짓에 이혼하고 무희로 나섰는데, 자신이 몰락한 스페인 귀족이라고 선전하면서 유럽 각국을 돌며 활동하다가 루트비히 1세의 마음을 얻어 그의 정부가 됐다고 한다.

그런데 로라 몬테즈가 개신교 총리롸 함께 종교적 개혁까지 시도하려 하자 카톨릭 보수주의자들이 격분해 1848년 2월 9일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일이 벌어진다. 사태가 악화되어 학생 시위로 번지자 3월 16일, 루트비히 1세는 결국 왕위를 장남 막시밀리안 2세에게 양위한다. 루트비히 1세는 죽을 때까지 독일 역사상 양위를 강요당한 유일한 왕이라는 오명을 죽을 달고 살아야 했다.

로라 몬테즈는 이후 바이에른에서 강제 추방당해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미국에서는 그녀가 유럽에서 온 백작부인이라면서 융숭하게 대접했다고 하니 그 수완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다음 호에서도 님펜부르크 궁전의 각 건축물들을 살펴본다.

1325호 31면, 2023년 8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