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커피이야기(4)

인종도 문화도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커피를 사랑한다. 세계인의 사랑을 천 년 넘게 받아온 커피.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커피 한 잔은 고단한 인생을 위로한다.
문화사업단에서는 커피를 주제로 다양한 시각에서 커피를 살펴보고자 한다.
커피의 종류는 물론 커피의 유럽 및 서구사회로의 전파과정을 살펴보고 공정무역과 관련 커피 생산과정을 살펴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과정과 당시 우리나라에서의 커피 문화를 되돌아본다.

커피의 한국 전래와 커피 문화

한국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게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1830년대 많이 들어왔던 프랑스인 신부들이 마셨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기록은 없다. 커피 전래 시기는 19세기 후반, 특히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 이후부터 1890년 사이로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커피 전래시기를 19세기 후반으로 보는 것은 이때 청나라를 통해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외국인들의 왕래가 늘었고, 특히 임오군란 이후 미국이나 영국 등 서양 외교 사절이 들어오면서 커피를 마시는 풍습이 보급됐기 때문이다. 커피는 그 그윽한 향과 머리를 맑게 하는 카페인으로 왕족과 대신들을 매혹시키며 기호품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조선 엘리트의 마음을 잡기 위해 서양 외교관들은 커피를 선물했다.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월(Percival Lowell)은 그의 저서 『Choső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에서 조선에서의 커피 음용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동양문화에 관심을 두고 일본에 머물고 있던 그는 1883년 조미수호통상사절단(민영익, 홍영식, 유길준 등 11명)을 미국으로 수행하고 안내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해 12월에는 노고를 치하하는 왕실의 초청을 받아 겨울 동안 조선에 머물게 됐다. 조선의 정치와 풍속,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자세히 기록했던 그는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ő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라는 책을 펴내 조선을 서구에 알렸다.

그는 1884년 1월의 추운 어느 날 조선 고위관리의 초대를 받아 한강변 별장으로 유람을 가게 되었는데 꽁꽁 얼어붙은 겨울 한강의 정취를 즐기던 중 “우리는 다시 누대 위로 올라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커피를 마셨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는 커피가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따르면 1884년은 물론, 그 이전에도 조선에 커피가 유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커피에 대해 처음으로 기록한 이는 개화를 꿈꾸던 구한말 선각자 유길준(1856~1914)이다.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기도 했던 유길준은 미국 유학 중 유럽을 순방하며 본 선진문물을 1895년 발간된 ‘서유견문’에 소개했다. 이 책에서 유길준은 “1890년경 커피와 홍차가 중국을 통해 조선에 소개됐다” “서양 사람들은 주스와 커피를 조선 사람들이 숭늉과 냉수 마시듯 한다”고 했다.

최초의 한국인 커피 애호가 고종

‘최초의 한국인 커피 애호가’라 불리는 고종은 커피를 궁중 다례의식에까지 사용하도록 했다. 덕수궁에 정관헌(靜觀軒)이라는, 사방이 트인 서양식 정자를 짓고 여기서 커피를 마시며 외국 공사들과 연회를 갖기도 했다. 고종이 처음 커피 맛을 본 건 1895년 을미사변 당시 피신해 있던 러시아 공관에서였다. 고종에게 커피 맛을 보인 이는 러시아 초대 공사 웨베르의 처형인 손탁(孫澤) 여사이다. 손탁의 정확한 이름은 안토니에트 존타크(Sontag). 독일 여성이었다. 웨베르는 아내가 독일 출신이었는데, 그가 조선에 부임할 때 처형인 손탁도 함께 왔다.

고종은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뒤 러시아 공관에 파천해 있으면서 식사는 물론 모든 수발을 맡길 정도로 손탁을 신뢰했다. 고종은 덕수궁 건너편 정동 400여 평 대지에 회색 벽돌로 2층 양옥집을 지어 손탁에게 선물했다. 손탁은 1897년부터 이 집을 호텔로 운영했다. 구한말 외국인들의 사교장이었던 손탁호텔이다. 이 호텔 1층에는 레스토랑 겸 커피숍도 있었다. 독일 여성이 운영하던 커피숍이었으니, 어쩌면 크림과 설탕을 타 마시는 독일식 커피가 지금까지 한국에서 사랑받는 까닭이 여기 있을지 모른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커피는 일반 민가에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커피는 한자로 음역돼 ‘가배다’ 또는 ‘가비다’라고 표기했지만, 일반 서민들은 흔히 ‘양탕(洋湯)국’이라고 불렀다. 1919년 이후로는 명동과 충무로, 종 로 등지에도 커피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명동 ‘멕시코’처럼 다방 주인은 대개 일본인이었다. 커피 값이 너무 비싸 서민들은 마실 엄두도 내지 못했고, 돈 많고 서양(또는 일본) 물 먹은 신식 멋쟁이들이나 커피를 홀짝일 수 있었다. 한국 최초의 오페라 가수 윤심덕은 종로 다방에서 커피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커피 한국인의 국민음료가 되다

커피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건 6·25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주둔하면서부터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커피가 대량 보급됐다. 1967년 보건사회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 3600여 다방이 성업 중이었으며, 이 들 다방에서 가장 많이 팔리던 음료가 커피였다. 이때까지도 커피는 손님에게 대접하는 귀한 음료였다.

커피가 그야말로 숭늉 대신 마시는 음료가 된 건 1970년대다. 동서식품은 1970년 국내 최초로 인스턴트 커피 생산에 성공했다. 커피 가격이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이어 1976년 동서식품은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개발한다. 커피믹스는 커피와 크림, 설탕을 소비자 입맛에 맞춰 표준화한 비율로 섞어 낱개 포장했다. 어디서나 간편하게 마실 수 있는 커피믹스는 크게 성공했고, 1980년대가 지나면서 국민 음료로 전성기를 맞는다.

원두커피 그리고 스타벅스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1990년대에 접어들자 인스턴트 커피의 인기가 주춤해진다. 동시에 원두커피 소비가 가파르게 증가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5000달러를 돌파하면서 경제적 여유가 생긴 시기와 일치한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고급스런 커피를 찾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원두를 분쇄한 커피가루를 여과지에 넣고 뜨거운 물로 거른 드립식 커피, 즉 원두 커피가 인기였다.

1990년대 말 커피를 종이컵에 담아주는 미국식 테이크아웃 커피점이 소개된다. 1999년 스타벅스가 서울 이대점을 시작으로 돌풍을 일으킨다. 이어 커피빈, 시애틀 베스트 커피, 카페 네스카페, 세가프레도, 글로리아진스, 자바 등 외국계 테이크아웃 커피 브랜드들이 한국시장에 뛰어들었다.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파는 맛과 향이 진한 에스프레소와 에스프레소에 우유, 시럽, 향신료 등을 첨가한 커피음료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1329호 23면, 2023년 9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