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건축의 역사를 둘러보다: 2부:
독일과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양한 건축 양식이다. 한국에서는 궁궐이나, 사찰 등의 문화유적은 그 건축 양식이 각기 일정한 데 반해, 독일과 유럽의 교회나, 궁전, 대저택의 건축 양식들은 그 건축 시기에 따라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특별히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문화사업단에서는 다양한 유럽 건축의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그 기초가 된 고대 그리스, 로마의 건축을 살펴보고, 이후 이른바,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로코코’ 양식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건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서양 중세의 건축: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 건축(9)
유럽 중세의 고딕양식 ➅
중세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성당은 어디일까? 프랑스의 노트르담 대성당, 독일의 쾰른 대성당,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이 중세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3대 성당으로 꼽을 수 있다. 지난 호까지는 먼저 독일의 대표적 고딕양식 교회를 살펴보았고, 이제 프랑스, 이탈리아의 고딕건축물을 살펴보도록 한다.
노트르담 대성당
프랑스 파리의 시테 섬 동쪽에 있는 가톨릭 성당으로, 파리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14세기에 완공된 프랑스 고딕 양식 건축물의 대표작이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과 빅토르 위고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노틀담의 꼽추)의 무대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에도 파리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지금의 대성당이 있던 곳에는 성 스테파노에게 봉헌한 작은 성당이 있었지만, 1160년 모리스 드 쉴리(Maurice de Sully, 1110 ~ 1196) 주교는 더 크고 아름다운 성당을 짓기 위해 파리대교구에 착좌하자마자 옛 성당을 부수고 주변의 몇몇 가옥들도 함께 철거했다. 그리고 1163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가 초석을 놓으면서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곳은 후진과 성가대석으로 1182년에 완공되었으나, 전체 공정의 절반도 채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공사가 시작된 지 33년 후인 1196년 9월 11일 모리스 드 쉴리 주교가 사망했다. 대성당의 서쪽 정면은 1200년경~1225년에 완성되었고, 서쪽 정면의 탑 2개와 북쪽의 장미창은 1250년에 마무리되었으며, 나머지 부분에 대한 공사는 1250년부터 약 1세기 동안 진행되어 마침내 착공 183년 만인 1345년에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
1456년에는 이 곳에서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재판을 교황청이 열어서 1431년 영국 측과 친영국파 프랑스 성직자들이 벌였던 종교재판으로 화형당한 잔 다르크의 이단 판결과 마녀 혐의를 무효화하여 복권했다. 그래서 잔 다르크 성녀의 성상이 이 성당 안에 있다.
18세기에는 성당이 어둡다는 이유로 성직자들이 스테인드 글라스를 일반 유리로 바꾸고 그로테스크한 가고일 상을 제거하는 등 신고전주의적인 취향에 따라 손을 보았다.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자 귀족문화, 종교문화 자체를 증오하는 시민들에게 에마뉘엘 이라는 종을 제외한 모든 종이 녹여지고, ‘옛 프랑스 왕으로 오인된’ 성경 속의 왕의 조각이 목이 잘리는 등 각종 조각이 훼손되고 이신론자들의 신전으로도 쓰이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이전의 전근대 사회에선 이 성당이 프랑스의 기득권 사회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성직자는 프랑스 귀족 계층에서 배출되었으며, 프랑스 귀족과 기득권층의 법률적 옹호기관인 고등법원의 관료 역시 노트르담 대성당의 성직자들과 혈연관계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때문에 이 대성당이 프랑스 혁명 당시 가장 먼저 공격을 받고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1804년 12월 2일에는 교황 비오 7세가 참석하여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황제 대관식을 이 성당에서 치루었는데, 이를 위해 대성당의 주변 건물을 철거하는 등 많은 정비를 하였다. 성당의 입구에는 신 고딕식의 나무 문을, 실내는 신고전주의 건축처럼 보이게 장식하였으나, 임시로 덧댄 것들이라 오늘날에는 남아있지 않다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내부가 외양간으로 쓰여지는 등 성당의 사회적 가치는 심하게 손상되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빅토르 위고가 성당의 훼손, 파괴를 막으려고 쓴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이 인기를 끌면서 평가도 좋아졌으며, 건축가인 장바티스트 라쉬(Jean-Baptiste Lassus)와 외젠 비올레르뒤크(Eugène Viollet-le-Duc)에 의해 1845년부터 근 20여년 동안 복원에 들어간다. 스테인드 글라스와 성상들, 중앙 첨탑( 등이 이 시기에 복원되었다. 다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 시기에 만들어진 많은 것들은 뒤크의 취향에 따른 창작에 가깝다.
이후 1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양차대전을 겪으면서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2019년 4월 15일 화재로 인해 13세기로부터 내려오던 목조 지붕과 19세기에 만들어진 중앙 첨탑이 소실되고 석조 볼트가 일부 파손되는 등의 큰 피해를 입었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은 고딕 양식의 전성기로 가기 전, 초기 고딕의 마지막 걸작쯤 되는 건축물이다.
플라잉 버트레스라고 불리우는 고딕의 특징적인 구조물이 구조적으로 의미있게 처음 사용된 건물로 평가받는 등, 고딕 건축 역사의 중요한 지점을 만든 건물이다.
하지만 전성기 고딕의 시작인 샤르트르 대성당, 전성기 고딕의 완성작이라고 불리우는 랭스 대성당, 아미엥 대성당 등에 비해 네이브의 높이나 폭, 스테인드 글라스의 비율이 작으며 기둥의 장식이나 플라잉 버트레스의 구조 등이 통일되지 않아 깔끔하지 않은 등 과도기적인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건축적으로 고딕 양식의 최고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지방이 아닌 파리 중심에 있는데다가 대중문화 작품들의 배경이었고 역사적인 사건들의 장소라는 점 등으로 인해 인지도와 대중적 명성만큼은 프랑스 제일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문객 수로만 보면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을 능가하는 성당이다.
1369호 23면, 2024년 7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