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310호(2023년 4월 14일자)에 실린
독한문화원장 김성수 박사의 철학 저술 출판
『서양철학의 역설』에 관해 독자들의 문의가 많아,
저서 가운데
“유럽의 역설적 문학작품”
부분을 발췌해 연재한다.
-편집자주

새로운 안목
괴테는 파우스트 작품의 내용적 흐름을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페레스의 대립된 성격에서 기인한 갈등과 모순의 충돌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파우스트 작품은 대립된 성격의 본질보다는 성격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그 비극적 결과만을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이 비극의 해결은 신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으로 되고 있다.
그렇다면 니체가 선언한 대로 신이 죽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비극은 영원히 계속하는 것인가?
이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페레스 간의 이질적 존재자의 갈등이 아니라 유럽 철학 내지 문화의 기반인 이성과 비이성 또는 합리와 비합리의 이분법적 갈등이라는 차원의 새로운 고찰은 파우스트는 현대적 의미를 부여할 것 같다. 그러면 파우스트의 비극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비이성의 갈등에서 초래된 역설의 적나라한 현상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그 역설의 해결 방도를 추구하는 격려로 재음미 될 수 있다.
2.1 파우스트의 비극
작품 파우스트는 “천상의 서곡”, ”제1부분” 그리고 “제2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분”에서는 제1 비극을, „제2부분”에서는 제2의 비극을 묘사하고 있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메피스토)
“천상의 서곡”에서 신과 마귀 메피스토의 대화를 통해 인간을 정의한다.
인간은 “세계의 작은 신”이며, “신이 준 이성(하늘의 빛)”을 사용한다. 이어서 신은 메피스토에게 묻는다, 파우스트란 사람을 아는가? 라고.
메피스토는 “저 박사를?” , 그러자 신은 그 (파우스트)는 “나의 종이야”라고 대답한다. 파우스트는 한 인간이면서 철학, 법학, 의학, 심지어 신학까지도 공부한 최고의 학자이다. 그러나 그는 어떤 박사, 어떤 마기스터, 어떤 작가, 어떤 성직자, 더욱더 학문적 좌절 상태에 빠져 있다. 비록 학문의 성공을 위해 마귀의 힘까지 빌려 봤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보라”고 외치고 있다.
파우스트를 비롯해서 모든 학자들은 이성을 수단으로 학문을 해 온 것이다. 좌절 끝에 자살의 문턱에 온 파우스트에게 마귀 메피스토는 도움을 줘 재생의 길을 가게 하려 한다.
메피스토는 미래를 보는 능력 등에서 신의 능력에 미치지 못하지만 출중한 마술을 발휘해 경우에 따라서는 신과 맞장을 칠 수 있는 마귀이다.
메피스토는 신과 상의하여 이성일변도인 파우스트에게 비이성적 감성을 부여하여 이성과 비이성이 갈등하는 새 인생을 부여한다. 메피스토는 파우스트가 이 새 인생을 잘 헤쳐 가도록 협조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는 길에 들어선다.
제1비극
파우스트는 지금까지의 이성일변도의 학자생활을 전환하여 메피스토가 유혹한 자연적 인간의 감정을 배합한 새로운 인생을 성공할 수 있다고 메피스토와 계약을 맺는다. 계약의 골자는 이성과 감정이 배합된 인생에 실패하면 파우스트는 자기의 영혼을 메피스토에게 바치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순수한 책 지식 위에 쌓은 낙관적이며 발전을 믿는 학자 타입”의 이성위주의 바그너와 다르다, 그리고 요한복음의 로고스 해석에서도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가 아니라,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라고 자기의 견해를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이렇게 하여 파우스트는 이성과 감정을 성공적으로 배합할 수 있을 것으로 암시한다.
“ 2개의 정신이 살고 있고말고. 내 가슴 속에서 하나는 다른 정신에서 떨어지고자 해: 정신 하나는 사랑의 쾌락으로 클린취된 기관의 세계에 자기를 잡아두고, 다른 정신은 먼지에서 힘차게 일어서 더 높은 조상의 광야에로 향한다.” (1110)
„Zwei Seelen wohnen ach! In meiner Brust, die eine will sich von der andren trennen: die eine hält in der Liebeslust sich an die Welt mit klammernden Organen, die andre hebt gewaltsam sich vom Dust zu dem Gefilden hoher Ahnen.“
이러한 파우스트에 대해 메피스토는 감정 일변도로 인생을 꾸려가도록 더욱 강요한다.
“다만 이성과 학문을 경멸하라”(1851)
”신과 같은 모습으로 되려는 너의 노력은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614) 고 경고한다.
메피스토는 더 나아가 파우스트를 마녀부엌으로 데리고 가 마법의 물약을 마시게 하여 젊은 청년으로 변화시키고 어떤 여자도 좋아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런 다음 “순진하고 젊은 처녀” 그레첸(Gretchen)과 사귀게 한다. 파우스트는 그레첸과 애정이 깊어 갈수록 이성을 잃게 된다.
그레첸에게 목거리 선물을 마련하려고 교회에 들어가 도둑질을 한다. 파우스트와 그레첸 간의 비도덕적 애정관계를 반대하는 그레첸의 오빠 바렌틴을 살해까지 한다. 회의에 빠진 그레첸은 파우스트와의 사이에 난 사생아를 죽인 죄로 사형언도를 받는다. 파우스트는 그레첸에게 행복은 커녕 사랑과 불안의 갈등으로 영혼을 깊숙이 파멸/몰락시키고 말았다.
그녀를 감옥으로부터 탈출시키려 해도 자기의 이성적 능력은 여의치 않다. 그레첸은 사랑과 두려움 사이에 흔들리고, 더욱 깊이 심적인 몰락으로 빠져 들어간다. 결국 파우스트는 이성과 감정의 배합을 성공하지 못한 채 비극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제2비극
괴테는 “제1부분”에서 인간적 차원에서 이성의 한계, 제1 비극을 묘사한 다음, “제2부분”에서는 개별적 인간의 차원을 넘어 근대와 그리스 고전문화와의 계승결합관계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도 이성의 좌절, 제2비극을 묘사하고 있다.
괴테는 1805년 “제1부분”을 발표한 뒤 20년 후 그동안 수집한 자료와 체험을 정리하여
“제2부분”을 1825년에서 1831년 사이에 집필하였다. 5막으로 구성된 원고는 그가 1832년 서거한 몇 개월 후에 출간되었다.
괴테는 유럽의 근대와 그 근원인 그리스의 학문과 예술의 결합관계를 파우스트와 그리스의 예술문화의 상징인 헤레나와의 애인관계로 압축하고 있다. 파우스트는 소개받은 두 여인, 헤레네와 파리스 중에서 조야한 파리스, 즉 “설익은 근대”를 택하지 않고 있다.
파우스트는 근대 이성중심의 학문적 성과의 상징인 동료 바그너의 인공적 인간, “호문쿨루스”의 안내를 받아 애인 헤레네와 같이 고대 그리스문화로 시간여행을 한다. 호문쿨루스는 세계의 시원을 탐구하는 학자 아낙사고라스와 타레스에게 안내하지만 파우스트는 별 관심이 없다. 그는 “마음의 아름다움의 이상”(60064)인 젊은 시절의 애인 그레첸과 지금의 애인 헤레네로 압축된 고대 그리스의 미의 예술에 더 심취한다.
파우스트는 애정, 감정의 예술세계에 경도하면서 이성위주의 학문세계의 일변도를 극복해 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파우스트와 헤레네 간에 테어난 아들, 오이포리온은 너무 무리하게 날려고 시도하다가 조사하고 만다.
그의 죽기 전 깊은 곳에서의 한마디: “어머니, 나를 음산한 곳에 혼자 있게 하지 말아요.“(9905-9906)
근대와 고전, 이성과 감정의 이상적 결합은 또 실패한 것이다.
파우스트는 이제부터 개인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인 영역에서 이성의 힘을 발휘해 보고자 한다. 그는 대가의 꿈, 애정행각을 버리고 국가적인 통치영역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 항상 힘써서 노력한 자, 그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다.“(11936 f.)
파우스트는 황제들 간의 영토싸움에 가담한다.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준 황제로부터 대가로 일부 영토를 부여받도록 메피스토의 도움으로 계약을 맺는다. 이 영토를 훌륭히 개간하고 집을 지어 여러 사람들이 잘살도록 하자는 이상이었다.
파우스트는 자기의 재능과 메피스토의 방조로 금을 화폐로 전환하여 국고를 건전하게 하였으며, 침공하는 적대 황제의 침략을 물리친 공로로 일부 영토를 부여받았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부지를 확장하기 위해 언제를 쌓고 개간을 시작했다. 이런 큰 공사를 위해 그곳에서 오랫동안 뿌리내리고 살고 있던 노부부의 집을 불 질러 없애고 그로 인해 그들이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그 사이 파우스트는 100살이 되고 눈은 멀었다. 그는 자기를 죽음으로 인도하려는 도깨비의 소리(Lemuren)를 땅을 개간하면서 나던 소리로 착각하는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파우스트는 큰 이상을 기획하고 실현하고자 노력하였으나, 그 성과로 혜택을 입어야 할 대상을 오히려 희생시켰을 뿐 자기의 큰 꿈도 현실화시키지 못하고 말았다.
신비로운 합창
제행무상은 한갓 우화일 뿐;
부족함, 여기서 결과로 될 것이다;
형언할 수 없는 것, 여기서 그렇게 된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은 우리를 끌어당길 것이다. (12105-12110)
1.3 신으로 도피
괴테는 작품 파우스트에서 인간의 이성과 비이성/감성의 갈등을 제기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미완의 상태에 두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파괴자와 거짓말쟁이의 상징인 메피스토는 경사스러움의 또는 행운의 상징인 파우스트를 그가 과연 행운아인지를 인간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 이분법적 도전이라는 시험대에 올려세웠다. 인간적 차원의 제1차 시험은 이성과 감정의 갈등 문제였다.
메피스토는 자기와 파우스트의 소개를 통해 인간의 이분법적 갈등 문제를 제시한다.
자기는 “항상 악을 행하고자 한 데 항상 선을 만들어 내는 힘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런 자기와는 달리 파우스트는 “악의 힘을 빌려 놓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 질 수 없는 그런 인간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메피스토는 이성을 무기로 한 학자로서 실패하여 자살을 시도한 파우스트에게 감정 중심으로 감정과 이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는가를 시험한 것이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그레첸에게 애정에 사로잡혀 이성의 활동이 마비된 결과 애정의 산물인 어린 자식의 살해를 막지 못하는 역설적 비극을 초래한다.
이것은 이성 중심의 계몽사상과 감정을 위주로 하는 “폭풍과 충동”과의 조화를 찾을 수 없다는 괴테 의도의 표현일 것이다.
인간적 차원의 제2차 시험은 인간의 이성과 감정문제에 대한 근대와 고대 그리스 간의 시대적 연관문제 였다. 이성 중심의 파우스트와 감정중심의 헤레나간의 산물인 오이포리온의 조사는 근대와 고전의 결합이 실패했음을 암시하고자 한 것이다.
파우스트는 자기와 같은 이성중심의 학자 바그너, 그의 인공적 산물로서의 제자인 호문쿠루스, 이성주의자인 아낙사고라스와 타레스는 별 관심이 없고, 이에 대립적인 감정 중심의 인간미의 원형인 헤레나와 동체가 된 것이다.
그러나 파우스트가 이들과 함께 변증법론자인 헤라크레이트도 만났다면, “정렬이 넘치고 무한한 자유만을 추구”하는 주관적 위험을 변증법적으로 조절할 줄 아는 또 하나의 “오이포리온”을 탄생시켰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파우스트는 개인 인간적 차원에서 이성과 감정간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려는 노력에서 실패한 다음, 공동체적 영역에서의 대립과 갈등을 해결해 보고자 뛰어들었다.
파우스트의 이성은 공동체를 잘 살게 하려는 이성적 큰 그림에 치우쳐, 공동체의 개별적 구성원의 심정에 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완력 – 폭력, 전쟁, 탐욕, 약탈 등에는 아랑곳하지 못했다. 결과 자기의 무덤을 파는 소리를 간척공사의 소리로 착각하는 역설에 빠지게 된 것이다.
괴테는 파우스트가 직면한 이러한 역설의 출구를 결국 신을 통해 구제 해 보려고 한다.
“신의 심판이여! 당신에게 나를 맡기노라. (4605) 천상에서 소리: 구제되었노라. 메피스토와 파우스트는 도망친다.”
이렇게 파우스트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말았는데도 괴테의 파우스트 작품은 지난 200년 가까이 세계적 판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끊이지 않고 있다. 문학작품으로, 연극으로, 영화로, 음악으로 각색되어 계속 되살아나는 판이다. 2009년에는 할트만의 연출로 비엔나 불그테아터에서, 2011년에는 스테만의 연출로 살즈불크 축제에서 공연되었다.
파우스트의 끄니지 않은 인기는 한편 공감이 많다는 증좌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유럽 철학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이분법적 역설“ 문제의 해결 요구가 잠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파우스트 작품에 대한 수많은 해석이 심리분석학적, 포스트 구조학적, 문학예술학적으로 시도되고 있으나, “이성과 비이성(감정)” 간의 역설 문제로 파악하고자 한 시도는 아직까지 왜 나타나지 않고 있는지 궁금한 일이다.
1391호 14면, 2024년 12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