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괴테가도(Goethe Strasse) ➅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 독일을 대표하는 6대 가도에 그의 이름이 빠질 리 없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까지 이어지는 약 600㎞ 구간에 풀다, 아이제나흐, 바이마르, 예나, 라이프치히 등과 같은 크고 작은 도시들이 있는데 몇몇 도시가 괴테와 깊은 관련이 있어 괴테 가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괴테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 산실인 괴테 하우스는 프랑크푸르트에 자리잡고 있다. 괴테하우스는 영국을 찾는 여행자들이 셰익스피어 생가를 가보고 싶어하듯 독일을 찾아온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르는 명소이다. 괴테와 관련된 여러 유물 말고도 1700년대 독일 상류층 주택구조와 생활용품을 함께 볼 수 있는 꽤 흥미로운 곳이다.

과테와 바이마르(Weimar) :‘독일 지성의 허브바이마르

괴테와 실러와의 만남

‘군도(群盜)’를 발표하여 제법 이름을 날린 실러가 세 명의 바이마르 거장을 만나기 위해 바이마르를 찾은 것은 1787년이다. 그가 말한 세 명의 거장은 빌란트와 헤르더, 그리고 괴테였는데, 10살 연상의 괴테는 마침 이탈리아 여행중이라 만나지 못했다.

둘이 만난 것은 그 이듬해였지만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달라 가까워지는 데는 실패했다. 괴테는 기존 질서와 권위, 인습과 같은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구가하겠다는 질풍노도를 청산했으나 실러는 아직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던 탓이다.

이런 그들이 서로 의기투합해 우정 어린 교제를 나누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794년부터다. 실러는 그후 바이마르의 이 집에서 ‘윌리엄 텔’을 완성했고 괴테는 실러의 격려에 힘입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헤르만과 도로테아’ 등을 집필하는 등 고전주의 운동에 진력했다.

괴테는 자연과 경험을 중시하는 자칭 ‘완고한 리얼리스트’였기에 이념에 매달리는 철학적 사변이 창작에 해가 된다고 믿었다. 실러의 미학 이론을 빌려 말하면 괴테는 ‘소박한 문학’을, 자신은 ‘감상적 문학’을 추구했다. 괴테가 ‘현실 그대로’를 바라본다면, 실러는 ‘이상세계’를 바라본다. 바라보는 세계가 다른 두 사람, 괴테의 표현대로 ‘대척적인 정신들’은 서로를 인정했기에 벗이 되었고,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지만 똑같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끊임없이 자극을 주면서 세계문학에 불멸의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다.

괴테는 실러와의 만남을 …


전문은 2025년 4월 18일 발간, 1407호 31면 지면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