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 전문가 협회 KIPEU 의 지식재산 상식 (5)
특허란 무엇인가

특허란 무엇인가

특허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까. 스마트폰, 통신기술, 자율주행 자동차 등의 복잡한 첨단 제품을 먼저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간단한 제품들, 예컨대 연필, 칫솔, 컵 등도 모두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태양 아래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특허의 대상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1980년 미국 판결에서는, 생명체인 유전자 변형 박테리아도 특허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2018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유럽과 한국의 특허청에는 각각 하루 500건 정도의 특허가 출원된다. 중국, 미국, 일본의 하루 당 출원 규모는 각각 4000건, 1500건, 800건이다. 이 다섯 국가의 총 출원 건수만 합쳐도 연간 총 300만건의 특허가 출원된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매일매일 얼마나 다양한 발명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특허가 무엇인지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특허를 “출원”한다는 것은 특허청에 기술적 창작물인 발명이 적힌 문서를 제출하면서, 이에 대해 특허를 “등록”해달라고 신청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특허청은 이 문서의 내용을 심사하고, 해당 발명이 특허를 받을 만한 것이라 판단되면 특허를 등록해준다. 이 절차가 보통 1년 이상 걸린다. 등록이 되면 그때부터 „특허권“을 갖게 되는데, 이는 국가에서 보장해주는 권리로서, 약 20년 동안 발명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누군가가 내 특허권을 무단으로 사용하면, 법원 절차를 통해 이를 금지시키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특허의 또다른 특징은, 특허로 출원된 기술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원칙적으로 일반에게 공개된다는 점이다. 특허가 독일어로는 “Patent”인데, 이는 라틴어의 “patere”에서 유래된 것으로 공개된 것이라는 뜻이 있다. 어원에서 볼 수 있듯이 기술 공개는 특허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특허 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보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독점권을 줌으로써 발명을 할 유인을 제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출원된 발명을 모두 공개시킴으로써 지식 공유를 통한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것을 통해 달성된다.

앞서 특허 출원을 할 때 발명이 적힌 문서를 제출한다고 했다. 이 때 특허청에서 요구하는 양식이 있는데, 이를 특허 명세서라고 한다. 이 중 핵심적인 부분은 청구범위이다. 청구범위는 해당 출원이 특허권으로 등록될 만한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등록 이후에는 이 청구범위를 기준으로 특허권의 권리 범위가 결정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청구범위에 발명을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발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청구범위에 언어로 담아내는 것이 변리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허를 출원하면, 등록 받기 위한 요건을 갖추었는지 특허청 심사관에게 심사를 받는다. 여러 요건들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발명(정확히는 내가 청구범위에 기재한 발명)이 종래에 존재하던 기술에 비해 새로운 것이고, 더 나아가 종래 기술로부터 쉽게 도출해낼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허 용어로는 각각 신규성(Neuheit)과 진보성(erfinderische Tätigkeit)이라고 한다.

신규성 판단은 비교적 쉽다. 종래 기술과 비교해서 구성에 차이가 있기만 하면 보통 신규한 것으로 본다. 이를테면 내가 청구범위에 “육각형 단면을 갖는 연필”을 기재했는데, 종래에는 원형 단면을 갖는 연필만 존재했다면, 내 발명은 단면 모양에 차이가 있으므로 신규한 것이다.

그에 비해, 진보성 판단은 발명을 “쉽게” 도출해낼 수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추상적인 면이 있다. 최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국마다 구체적인 진보성 판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있는데, 약간씩 차이가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청구범위 발명이 종래 기술에 비해 우수한 효과를 제공하는지 여부를 중시한다. 위 예에서 육각형 단면을 갖는 연필은 원형 단면을 갖는 연필에 비해 “책상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는” 우수한 효과를 제공하기 때문에, 진보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독일에서는 종래 기술과 구별되는 구성을 도출해낼 만한 암시, 동기가 종래 기술에 제시되어 있었는지를 중시하는 편이다.

실무에서는 종래 기술로 여러 가지 기술이 종합적으로 고려되고, 개별적으로 공개되어 있는 기술들을 결합하는 것이 쉬운지, 결합에 의해 청구범위 발명에 이르는 것이 쉬운지 등의 복잡한 판단이 요구된다. 결국, 각국 가이드라인이 정해준 룰의 범위 내에서, 각 사안의 사실관계를 꼼꼼히 분석하여 논리적인 주장으로 심사관을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다.

과거 사례들을 보면, 정말 강한 특허들은 아주 사소해보이는 발명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다. “에이, 이게 특허가 되겠어”라고 미리 걱정하지 말고, 명세서를 잘 준비하고 심사 과정에서 잘 대응한다면, 내 발명을 20년간 보호할 수 있는 좋은 특허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에서도 많은 한인분들이 연구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 다음 호에서는 기업 소속으로 발명을 할 경우에 어떤 권리와 의무가 발생하고,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권혁진 유럽/한국 변리사, 지적재산권법 석사.
Zeiss Group 소속, Ulm 거주
연락처: hjkwon.ip@gmail.com

교포신문사는 유럽 및 독일에 거주/생활하시는 한인분들과 현지에 진출하여 경제활동을 하시는 한인 사업가들을 위해 지식재산 전문단체인 “유럽 한인 지식재산 전문가 협회” [KIPEU, Korean IP (Intellectual Property) Professionals in Europe, 회장 김병학 박사, kim.bhak@gmail.com] 의 지식재산 상식을 격주로 연재한다. 연재의 각 기사는 협회 회원들이 집필한다. KIPEU는 지식재산 분야에서 한국과 유럽의 교류 및 협력 증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단체로서, 유럽내 IP로펌 또는 기업 IP 부서에서 활동하는 한인 변호사/변리사 등의 지식재산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회이다.

2020년 3월 20일, 1163호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