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라 함부르크 무역관 윤태현 과장
‘Übung macht den Meister’. 필자가 20년 전 독일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하며 접했던 독일 속담이다.
‘연습이 장인을 만든다’는 의미로 한 분야에서 부지런히 노력하여 전문가 수준의 장인(Meister·마이스터)이 된 사람을 존중한다는 속담이며, 독일 일상에서 자주 쓰인다.
이를 보여주듯 독일어에는 마이스터가 들어간 단어가 많다. 시장(Bürgermeister), 건물 관리자(Hausmeister) 등이 대표적이다. 특정 사물, 직업 뒤에 붙는 식으로 일종의 전문가를 나타낸다.
또 스포츠 분야에서도 마이스터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대표적으로 월드컵이 있다. 정식 명칭은 ‘FIFA Fußball-Weltmeisterschaft’로, FIFA에서 주관하는 ‘축구 세계선수권’을 뜻한다. 특히, 세계선수권을 의미하는 Weltmeisterschaft라는 단어는 ‘세계’를 뜻하는 ‘Welt’와 ‘장인 정신’을 의미하는 ‘Meisterschaft’가 합쳐졌다. 직역하면 ‘세계 장인 정신 대회’이고 월드컵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단위로 열리는 스포츠 대회에는 대부분 사용한다. 그만큼 스포츠 대회도 일종의 장인들이 펼치는 경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독일의 스포츠 장인 정신을 익힌 사람이 함부르크 유소년팀 출신인 손흥민 선수다. 손흥민은 만 16살 때 국비 장학생으로 독일 함부르크(Hamburger Sport Verein·이하 HSV) 유소년팀에 축구 유학을 왔다.
특히, 손흥민이 21/22시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을 차지하면서 일각에서는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씨의 교육 방식에 대해 여러 관심이 쏟아졌다. 여기에는 양발 슛팅, 트래핑, 패스 등 기본기에 집중하는 훈련에 힘입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물론, 아버지의 스파르타식 교육, 선수 본인의 치열한 노력, 그리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유전자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손흥민 선수를 월드클래스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HSV 유소년팀의 교육 시스템도 일정 부분 공이 있다고 판단된다. HSV는 1887년 창단된 독일 대표 명문 구단으로 무려 136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2023년에 한-독 수교 140주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가졌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HSV 유소년팀 훈련 시스템의 특징은 공통적으로 기본기에 충실하되, 본인의 나이와 역량에 따라 차별화된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HSV 성인 프로팀에 입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HSV 유소년팀에는 U9-U11, U12-U15, U16-U19까지 연령별로 각각 3개의 팀으로 나누어져 있다. U9-U11에는 축구 기본기 자체에 집중한다. 감독의 판단하에 잠재력이 충분한 유망주는 일정 기간 특별 관리를 받는 팀에서 훈련할 수 있다. 기본기에 더해 기술이나 드리블 같은 것을 더 배우는 것이다. 이후 성장 단계인 U12-U15에서는 기술적인 부분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U16-U19에서는 기술력을 정교하게 키우고 팀 조직력 훈련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이러한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갖춘 함부르크에서 손흥민은 2008년 팀에 합류하여 2013년까지 총 6년의 시간을 보냈다. 특히, 당시 같은 팀 소속이던 네덜란드 출신 레전드 공격수 반 니스텔루이는 “어린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손흥민은 만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136년의 구단 역사상 최연소로 골을 넣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후 총 5시즌 간 손흥민은 79경기에서 20골을 몰아넣었다.
함부르크 팬들에게 손흥민은 마치 애지중지 키운 자녀가 자신의 꿈을 위해 집을 떠나고 남은 부모의 마음을 느끼게 하는 존재다. 마찬가지로 손흥민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함부르크는 제 2의 고향”이라며 애틋함을 드러냈다. 이후 손흥민은 바이엘 레버쿠젠, 영국 토트넘 훗스퍼로 이적하며 축구 역사를 써가고 있다. 역사의 시발점이 바로 함부르크였던 것이다.
손흥민이 독일에서 축구 장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독일에는 장인 정신이 깃든 기업과 산업이 많다. 국내에서도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휘슬러, 지멘스, 보쉬, 글라스 휘테, 휴고 보스, 몽블랑, 포르쉐, 폭스바겐 등등이 있고 이외에도 소비재, 제조업 등을 중심으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장인 기업들이 많다.
이러한 명성을 쌓을 수 있는 데 기여한 여러 요인 중 하나가 독일의 ‘아우스빌둥(Ausbildung)’ 제도다. 아우스빌둥은 이론과 실습을 동시에 진행하는 일종의 ‘이원식 직업교육’이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추후 커리어에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기술을 어릴 때부터 가르친다는 점에서 HSV 유소년팀 훈련 방식과 유사하다.
이러한 직업교육을 택한 학생은 3년간 일주일 기준으로 1~2일은 이론 수업을 듣고, 3~4일은 현장에서 직무 실습을 한다. 한국으로 치면 고1~고2의 나이에 직업과 관련한 이론 수업과 기업 내 현장 실습을 병행하는 것이다. 2021년 기준으로 독일에서만 한 해 동안 약 125만 명이 직업교육을 수료했다.
이러한 교육 과정은 모두 고용주 측의 부담으로 제공되는 것이 특징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본인들의 교육을 받은 학생이 졸업 후 다시 유능한 인력으로 실무에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1년 이상의 실무 기간을 쌓을 수 있게 하는 인재 육성 프로그램인 ‘트레이니(Trainee)’ 제도도 있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1년간 기업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친 후 좋은 성과를 보여줄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이처럼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아보고, 이를 잘 육성하는 것이 독일 사회 전반에 뿌리 내린 교육 방식이자 독일 힘의 원천이다. 이를 통해 독일이 축구 강국으로 성장한 것은 물론 100년, 200년 기업이 지속될 수 있는 장인 정신도 인정받는 것이다.
국내에도 사실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다. 2010년부터 개교한 마이스터(Meister)고등학교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전문적인 직업 교육의 발전을 위해 산업계 수요와 연계한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은 78.1%의 대학 진학률(20년 기준)을 보일 정도로 OECD 평균인 60.8%를 한참 상회한다. 그만큼 한국에는 유능한 인력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인재들을 단순 채용을 통한 커리어 개발이 아닌, 중장기적 투자를 통해 전문 인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교육 제도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독일식 인재 육성 시스템이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다. 산학연 협력 등을 통해 추후에는 국내에도 장인 정신이 깃든 기업이 많아지길 바란다. 또 함부르크 출신의 ‘축구 장인’ 손흥민이 속한 한국 대표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선전도 기원한다.
교포신문에서는 2022년 11월부터 코트라 함부르크 무역관 윤태현과장의 “독일 생활 속의 경제이야기”를 매월 첫째 주에 연재한다. 귀한 원고 게재를 하락해 준 윤태현 과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편집자주
1293호 18면, 2022년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