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라 함부르크 무역관 윤태현 과장
해가 바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해 목표를 세운다. 학생의 경우에는 학점 올리기, 자격증 따기부터 직장인들은 커리어 개발부터 다이어트, 외국어 배우기 등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외에 여행하기, 가족과 시간 보내기 등도 대표적인 새해 계획이다.
링크드인과 유사한 한국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지난해 말 직장인 5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운동과 체력 관리가 64.1%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새해 목표로 꼽혔다. 자기 계발, 재테크 공부, 절약 등이 그 뒤를 이었다. 2020년 이후 주식 열풍이 불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재테크 공부하기를 새해 목표로 삼는 것도 최근의 특징이다.
이러한 새해 계획을 세우는 건 만국 공통이다. 평소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이미지를 가진 독일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독일인들의 새해 계획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독일 설문조사기관 포르자(Forsa)가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23년 새해 계획 1위로 스트레스 줄이기(67%)가 올랐다. 다음으로 많이 응답한 계획은 기후 위기를 막고 지속 가능한 친환경에 기여하기(64%)로, 가족 및 친구와 시간 보내기(64%)와 함께 공동 2위에 올랐다. 한국에서 높은 순위로 뽑힌 운동하기와 재테크 공부는 각각 61%와 40%로 4위와 7위에 있었다.
독일인들의 새해 계획을 찬찬히 보다 보면, ‘친환경 기여하기’가 단연 눈에 띈다. 가족이나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답한 것이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생소하기 때문이다. 특히, 만 14세~29세 응답자 중 80%가 새해 1순위 목표로 친환경에 기여하기라고 답했다.
같은 나이대의 한국 생활을 생각해 보면 대부분 대학교 진학이나 전공 선택, 인턴십, 취업 등을 먼저 고려하는 시기다. 환경 이슈에 대해서 본인이 어떤 행동으로,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를 고려하기는커녕 환경문제 자체를 인식하는 사람도 드문 편이다.
반면, 독일에서는 개개인 한 명이 평소 실생활에서도 ‘내가 친환경에 기여하고 있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공병환수제도다. 독일어로 판트(Pfand)라고 불리는 이 제도는 페트병이나 캔 등에 보증금을 부과하고 추후 반환하면 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페트병은 1병당 25센트(약 350원)가 추가로 붙고 맥주병은 8센트(약 100원)가 더 붙는다. 즉, 가판대에 1유로짜리 물이 있으면 실제 계산할 때는 1.25유로를 내야하고, 다 마신 빈 병을 마트에 반납하면 25센트를 돌려받는 구조다.
독일에 처음 출장 오는 분들은 물이나 주스 같은 페트병을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다. 혹은 가판대에 있는 가격보다 비싼 가격이 바코드에 찍히는 것을 보고 당황하고는 한다. 하지만 특별한 신고 절차도 필요 없고, 마트에 자동 수거기가 없을 경우에는 계산대의 점원에게 페트병을 반환하면 바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독일 시민단체 움벨트힐페(Umwelthilfe)에 따르면 2003년부터 시작된 판트 제도 덕분에 현재 독일은 약 98.5%에 달하는 페트병 재활용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 개인이 친환경에 기여하는 대표 사례 중 하나는 채식주의 실천이다. 육류와 유제품 소비를 줄이면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공장식 축산업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도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자 채식을 택하는 것이다.
독일에는 채식주의 전용 식당을 쉽게 볼 수 있다. 식당가 주위를 걷다 보면 골목마다 채식주의 전용 식당이 하나씩 있다. 실제 사무실 근처에도 점심시간만 되면 긴 줄을 서는 베트남 식당이 하나 있는데, 대체육(代替肉)을 활용하여 쌀국수나 분짜 등을 만든다. 콩과 같은 식물성 재료를 활용하여 고기의 모양과 식감을 본떠 만든 식물 기반의 단백질 식품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체육 시장은 독일에서 새롭게 뜨는 시장이다.
또 비단 채식주의 전용 식당이 아니더라도 음식을 주문할 때 본인이 채식주의자라고 말하면 이에 맞춰서 음식을 만들어준다. 이처럼 채식주의는 독일에서 일종의 가치 소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정책적으로도 개인이 친환경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독일 내 식당이나 카페는 올해 1월부터 재활용 의무 사용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규정에 따르면, 모든 식당, 카페 등은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테이크 아웃 잔과 그릇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규정 위반 시, 최대 10만 유로(약 1억 3600만 원)까지 벌금을 물 수 있다.
이 외에 오는 5월부터 독일 전역에 도입되는 월 49유로(약 6만 8천 원)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 티켓, 자전거 전용 도로 확장 등 개인이 직·간접적으로 친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들도 다양하다.
이처럼 친환경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일상생활 패턴의 변화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기업들이 ESG 경영에 혈안을 올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도 트렌드에 맞춰 바뀌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실생활에서 친환경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데에는 독일, 나아가 유럽 특유의 여유로운 문화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도록 받는 교육 환경, 대부분 세미나로 구성되어 있는 대학 수업, 시민들의 높은 정치 참여도, 술 한잔 기울이면서도 사회 이슈에 대해 편하게 대화하는 문화 등이 대표적이다.
평소 일상에서 나뿐만 아니라 우리, 나아가 미래 세대까지 생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본인의 현재 상황이 만족스러워야, 즉 마음의 여유라는 전제조건이 성립되어야 타인을 돌아보는 것도 일부 가능한 일이다. 이에 무턱대고 ‘친환경이 중요하다! 친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발표된 2023년 기후변화대응지수(CCPI)에서 한국이 전체 60개 국가 중 57위에 오른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온실가스 배출, 에너지 소비, 기후 정책 등의 지표에서 모두 하위권을 기록했던 것이다. 반면, 제조업 강국이라는 수식어 앞에서는 한국도 독일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장기적으로 친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다 보면 이러한 불균형의 해소는 물론 한국인의 새해 계획에도 ‘친환경 기여하기’가 꼽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1305호 17면, 2023년 3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