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일선 스테파노 님 장례미사 거행

캄프린트포르트. 한가정의 가장으로 한인사회의 일꾼으로 그리고 성당에서 섬김의 생활에 열심을 다하며 살아 온 파독광부 김일선(2차4진/77년6월)님의 장례미사가 지난 24일(금) 10시30분, 캄프린트포르트에 소재한 ‘St.Josef Kirche’(Koenigstr.1 47475 Kamp-Lintfort)에서 루르한인천주교회 구경국 알로이시오 신부집례로 거행됐다.

장례미사를 집전한 구경국 알로이시오 신부는 장례미사는 돌아가신 분과 남아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며 “따뜻한 성품과 마음씨 좋으신 성도님과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에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고인의 한평생을 신앙공동체와 한인사회에서 필요한 이로서 충실히 살게 하셨음에 감사하고 김일선 스테파노를 사랑하시어 당신 품안으로 감싸주실 것입니다.

고인께서는 우리나라가 가장 어려웠던 60년, 70년대에 끈질김과 인내가 필요했던 시기에 흘린 피땀 어린 수고와 믿음생활로 주위에 용기를 심어주며 위로하고 어려움을 기꺼이 나눴던 분”이라고 장례강론에서 소개해 더욱 더 고인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재독일해병전우회(회장 지학균) 원형상 전 회장은 조사를 통해 별안간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한 김일선 선배와의 이별을 마음 아파하며 후배들을 그렇게 사랑했던 고인의 모습을 오랫동안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며 울먹였다. 이십여 전우들은 평생 해병대를 사랑했던 고 김일선(180기)해병에게 “필승!”이란 구호와 함께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였다.

유족인사에서 장남 김성훈씨는 “아버지 장례미사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저희 아버지는 이러한 모습을 보시며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시게 될 것이라며 인사하고 모든 장례절차 후에 준비한 소찬에 모시게 됨을 안내했다.

미사 후, 조객들은 성당내 친교실에서 대형 태극기 아래 고인의 삶을 보여주는 가족사진, 월남전 무공훈장, 재향군인회 공로훈장, 공로패, 개인표창 등, 수많은 공적관련 자료가 회관 전면에 전시되어 고인과의 작별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그는 강원도민회장, 글뤽아우프회와 한인회 임원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날 미사에 참석한 최광섭 동기회장은 그와의 일화를 전하며 고인은 늘 무슨 일이 닥쳐도 ‘난 괜찮아’라고 하면서 여유를 보이며 주변을 더 챙기곤 했던 분, 그리고 참 인정 많은 분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하관예식은 13시부터 시 북부에 위치한 Dachsberg Friedhof(Muehlenstr.252 47475 Kamp Lintfort)에서 진행되었다.

비가 오는 가운데에서도 많은 조객들은 묘지까지의 행렬과 하관예식에 모든 예를 다하였다. 구경국 알로이시오 신부는 강론과 축복 기도를 통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가 보이신 무덤에 묻히심과 부활의 여정을 기억하도록 했으며 하관 후 구경국 알로이시오 신부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기하며 망자의 부활을 간구하였다.

취토를 집례자가 한 후에 유가족, 조문객 순으로 준비된 취토 흙과 향기나는 꽃잎으로 고인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이날 장례미사에는 성당교우들과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심동간), 재독일해병전우회(지학균), 월남참전전우, 이북5도민회,(노광범), 강원도민회(김순복)회원, 뮌스터한인회(서봉석)회원 등, 많은 지인들이 참석했다. 취토를 하고 자리를 뜨던 한 성도는 ‘늘 겸손함을 잃지 않던 김일선 스테파노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다”라고 고인을 회상했다.

고인은 월남전 참전전우로, 또 파독광부로 조국의 근현대사에 주요한 시대에 주인공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 시간간격이 좁아지며 이웃들이 세상을 떠난다. 그 속도는 더 가속화 될 것이며 언젠가는 그누구도 그 중의 한 명이 될 것이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또 세상에 훌륭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야 비로써 고인의 사랑을 느끼고 고인의 고귀함을 더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나복찬 중부지사장 nbc@kodb.de.

1305호 12면, 2023년 3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