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호 아동을 소개 합니다

장기려 박사는, 의사이면서, 박사이면서, 교수였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의료보험의 시초가 된 청십자 의료보험 조합을 만든 의료행정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서울대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내 최초로 간 절개 수술에 성공한 최고의 외과 의사입니다. 하지만, 그는 평생 동안, 집 한 채 없이 살았습니다. 자신이 설립한 부산 복음병원 꼭대기 옥탑 방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들에게 무료로 수술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월급 명세서는 늘 적자였고, 병원도 늘 적자 운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환자의 입원비 지원 결정을 장기려 박사 혼자서 할 수 없도록, 조취를 취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장기려 박사는 입원비가 없어서 퇴원을 못하는 환자들에게, 뒷문을 열어놓고 몰래 도망가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환자들은 뒷문으로 다, 도망을 쳤습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집한 채, 땅 한 평 가지지 않은 채, 평생 옥탑 방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늙어서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평생의 삶 속에서 오직, 물레 하나밖에 남긴 것이 없는 인도의 간디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가진 것이 많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이 부산 복음 병원의 이사장으로 있을 때, 그를 쫓아내고 병원을 차지하려는 악한 부류의 배신자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사건은 장기려 박사의 편에 있던 젊은 수련의들의 의분으로 인해, 폭력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장기려 박사님 밑에서 신복처럼 충성했던, 최중묵 수련의사도 그 폭력 사태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고 2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장기려 박사님은, 최중묵 수련의사가 자기를 돕다가 싸워서 감옥에 가게 되자, 그를 심하게 꾸중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되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하네>라고 가르쳤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적대하던 상대방 세력들을 자비와 긍휼로 껴안았고, 자기편에 선 사람도, 잘못하면 가차 없이 꾸짖고 징계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오랜 세월이 지나서 폭력에 연루 되었던 최중묵 의사가 대한의사학회로부터 최우수논문상을 받게 되었을 때, 장기려 박사는 <그는 과거에 폭력을 쓰면서 잘못을 저지른 자입니다.>라고 지적을 하면서 그의 상 받는 것을 취소시켜 버렸습니다. 나중에 최중묵 박사가 병원을 개업한 뒤에야, 장기려 박사님이 그를 찾아가서 위로의 뜻을 담은 기념패를 그에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장기려 박사님이야말로, 예수님을 닮은 진실한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부산에서 천막을 치고 야전병원을 연 것이,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1951년 10월이었습니다. 더럽고 불결한 천막 안에서 전기마저 제대로 공급이 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촛불을 밝히고, 터져 버린 내장을 도려내고, 자르는 모습이 흡사 신들린 사람 같았었다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때 장기려를 도와서 무료진료에 적극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한상동 목사와 그리고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다가 급거 귀국한 전영창씨였습니다. 전영창씨가 미국에서 모금해 온 5.000$ 로 수술 장비를 갖출 수 있었고, 하루 50명분의 치료약을 미군으로부터 공급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환자는 하루에 150명에서, 200명 까지 몰려왔습니다. 모두가 다치고 병 들어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950년,12월, 6.25전쟁이 한참일 때, 야전병원에서 치료에 임하며 차를 타고 가던 중, 차창 밖으로 피난민 중에 섞여서 걷고 있는 늙으신 부모님과 아내, 다섯 명의 자식들을 바로 눈 앞에서 보았습니다. 장기려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가족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될 줄이야 장기려 자신도 몰랐습니다.

평양을 떠나 부산까지 내려온 장기려는 가족을 수소문 해봤으나, 다시 평양으로 돌아갔다는 소문만 풍문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내 혼자서 다섯 명의 자식들과 부모님을 부양해야한다,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녹아내렸습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정재호 아동의 어머니는, 아동을 출산 한 후, 남편에게 연락만 남기고, 행방불명되었고, 지금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아동의 아버지가 비닐하우스에서 상추를 제배하며, 재호를 양육하였으나, 경제적으로 더 이상 재호를 양육할 수 없게 되자, 재호를 고아원에 맡기게 되었고,, 가끔씩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재호 아동은 2020년 현재,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재호 아동은 또래 친구들보다 호기심이 많은 모습을 보이며, 체육활동을 좋아합니다. 활발한 성격으로 또래 아이들과 교우관계가 좋으며, 장래희망은 나쁜 사람을 잡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재호 아동은 시설의 형들에게 배우는 태권도 시간을 좋아하고, 킥보드 타는 것을 좋아 합니다. 아토피가 심해서 자주 간지러워하고, 병원에 가야하는 형편이지만, 그러한 와중에서도 건강에 큰 이상 없이 잘 성장하고 있습니다.

교민 여러분의 사랑과 격려는 재호 아동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심장은 1분에 70여회 뛰고, 하루 10만 번쯤 뜁니다. 70년을 산다고 하면, 평생 26억 번 뛰는 셈입니다. 하루 10만 번을 뛰는 심장은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우리 몸의 혈관의 총 길이는 16만 Km입니다. 서울에서 부산을 200번 왕복하는 길이입니다. 지구 한 바퀴가 4만 km인데, 지구를 4번 도는 길이입니다.

심장은 4.6 리터의 피를 하루에 1천 번 이상 순회시키고 있습니다. 평생 동안 심장은 30톤의 바위를 짊어지고,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는 힘을 쓰고 있습니다. 심장은 겨우 300g 밖에 되지 않고, 길이는 12~15cm이며, 폭은 9cm입니다.

심장은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신 신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쉬지 않고 일하는 심장은 말이 없습니다. 자기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쉬지 않고 일합니다. 당신과 나를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아니고서는 우리를 이토록 정교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온 종일 당신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는 당신의 심장처럼,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쉬지 않고, 당신의 생명의 연장을 위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꼭, 하나님<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장기려 박사의 감동적인 헌신은 그의 가슴 속에 예수님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민 여러분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 해 철 선교사 드림

1182호 34면, 2020년 8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