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dwig 2세의 꿈이 살아 숨 쉬는 `백조의 성´

유한나 (재독시인, 수필가)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이어지던 8월 중순, 바이에른주의 소도시 퓌센 (Füssen) 근처에 있는 노이슈반스타인 (Neuschwanstein) 성에 다녀왔다. 한국이나 외국에 사는 분들이 독일을 방문하면 즐겨 찾는 관광명소인데도 그동안 여행할 기회가 없었다. 독일 생활 33년이 지나 이번에 마침내 이곳을 다녀오게 되었다.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보아야 한다고 할 만큼 아름다운 이 성을 보고 나서 150년 전에 이 성을 건축하기 시작한 루드비히 2세 (Ludwig II 1845.8 – 1886.6)의 드라마틱한 삶에 관해 듣게 되었다.

`동화왕 (Märchenkönig)´이라고 불리기도 한 루드비히 2세는 그의 할아버지 루드비히 1세와 같은 생일에 태어나 루드비히 2세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만 18살에 바이에른 왕국의 네 번째 왕이 되었다. 막시밀리안 2세는 슈반스타인성이라는 폐허가 된 성을 사들여 재건축하여 호헨슈반가우 (Hohenschwangau) 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호헨슈반가우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루드비히는 독일 중세 신화와 전설 속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성안에서 살았고, 백조가 평화로이 떠다니는 알프스 호수 (Alpsee)를 바라보며 자랐다. 15살에 바그너 (Richard Wagner 1813-1883)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관람하고 깊은 감명을 받은 루드비히는 그가 왕이 된 후에 첫 번째 내린 행정 명령이 바그너를 바이에른으로 데려오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 많은 빚을 떠안고 유럽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바그너는 루드비히 2세의 재정적인 지원으로 오페라 창작에 전념할 수 있었다.

루드비히 2세는 그가 바그너의 오페라를 감상하였던 바트부르크(Wartburg) 성과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백조의 전설에서 영감을 얻어 백조의 성을 지었다고 한다. 호헨슈반가우성의 본래 이름이 슈반스타인성이어서 그랬는지 `새 백조의 성´이라는 뜻인 `노이슈반스타인´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먼저 들렀던 바이에른 자연공원 (Naturpark)에서 자동차로 백조의 성 앞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 30분경. 코로나 때인데도 많은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성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이 이미 모두 팔려서 다음을 기약하여야 했다. 성안의 방마다 바그너 오페라에 나오는 인물들이나 배경이 그려져 있다고 들었다. 백조의 성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따라 등산하는 기분으로 약 30분 걸어서 올라갔다.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올라가거나 산길을 내려오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 성은 우아한 백조의 모습을 연상시키듯 연한 회색 돌로 지어졌고, 백조가 하늘을 향해 비상하듯 하늘로 솟아오른 몇 개의 성탑이 있다. 푸르른 하늘과 울창한 초록의 숲, 거울같이 맑은 호수에 떠다니는 백조를 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 루드비히는 자신이 살던 호헨슈반스타인성에서 마주 보이는 높은 곳에 성을 지으리라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 이름 Marie에서 따온 마리엔 다리 (Marienbrücke)에서 바라보는 백조의 성은 동화의 나라, 마법의 나라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협곡을 잇는 이 다리 위에서 성의 모습이 아주 잘 보인다고 알려져서 그런지, 마리엔 다리로 들어가는 비탈진 산길에는 관광객들이 줄지어 서 있어서 약 40분이나 기다린 후에 마리엔 다리를 밟을 수 있었다.

이 성은 1869년 9월 5일에 짓기 시작하여 17년 동안 건축되다가 1886년 6월, 루드비히 2세의 퇴위와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성이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지난 130여 년 동안 이 성은 바이에른주의 자랑이며 독일의 예술성을 세계에 알리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루드비히 왕은 이 성을 건축하고 바그너를 지속해서 후원함으로써 당시 바이에른 내각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국고가 아닌 왕실의 자금으로 이 성을 건축하였지만, 정치보다 끊임없이 성 건축에 몰두하였고 왕정 존립을 위협하는 공화주의자 바그너를 후원하는 왕에게 신하들은 바그너를 추방하도록 건의하였다.

이러한 내각을 해체하려던 루드비히 왕을 그들은 정신질환자로 몰아서 퇴위시키고 유배지로 보냈다. 루드비히 왕은 퇴위 된 지 사흘 후, 그의 의사와 함께 산책하러 나갔다가 그의 유배지에서 가까운 슈타른베르크 호수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방문한 후, 프랑스보다 바이에른 왕국에 궁전이나 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던 루드비히 왕은 그가 바이에른 왕으로 있던 22년 동안 모두 세 개의 성을 건축하였다. 백조의 성 이외에 프랑스 루이 14세가 지은 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떠서 지은 웅장하고 화려한 헤렌킴제 성 (Schloss Herrenchiemsee), 막시밀리안 2세의 사냥 별장이 있던 Ettal 근처에 아름다운 린더호프 성 (Schloss Linderhof)을 건축하였다.

독일 민족의 전설이 담겨 있는 중세 신화를 소재로 만든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탄호이저> 등 바그너의 오페라를 사랑하였던 루드비히 2세! 그는 어릴 적부터 품었던 꿈을 안고 직접 설계에 참여하여 백조의 성을 비롯한 세 개의 성을 건축하고 성안에 바그너의 오페라에 나오는 인물들과 배경을 그리게 함으로써 독일 뿐 아니라 세계에서 손꼽는 예술작품과 건축물을 예술문화유산으로 남겼다.

그리고 <니벨룽겐의 반지>를 공연할 오페라 극장을 바이로이트 (Beyreuth)에 새로 건축하려던 바그너에게 모자란 경비를 기부함으로써 바이로이트 바그너 축제가 탄생하도록 도왔다.

루드비히 2세는 자신의 꿈을 현실화시켜서 백조의 성을 17년 동안 지었고, 이 성은 디즈니랜드를 만들어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은 월트 디즈니 (Walt Disney 1901. 12 – 1966. 12)에게 영감을 주어 디즈니랜드 신데렐라 성의 모델이 되기까지 하였다.

한 사람 루드비히 왕의 꿈과 비전이 다른 한 사람을 거쳐 세계인에게 전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백조의 성을 보면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비록 만 40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동화왕´ 혹은 `광인 왕´으로 불리는 그가 남긴 불후의 예술건축물인 백조의 성과 린더호프 성, 헤렌킴제 성은 15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후세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인생은 한 줌 흙으로 사라지나 꿈은 후세까지 전해지고 남는다. 그 꿈이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고 예술과 예술가를 사랑하고 키우는 꿈이라면 언젠가 다른 한 사람에게, 마침내 세계인의 가슴마다 환상적인 백조의 성으로 우뚝 세워지지 않을까?

만 60년을 살고 이제 첫해를 맞은 내게 앞으로 나의 한정된 삶 동안에 어떤 환상적인 꿈을 품고,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자세로 정진해나가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하게 해준 뜻 깊은 여행이었다.

1185호 14면, 2020년 9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