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한인문화예술협회 주최, 제1회 문학창작마당 동상 수상작

행복의 무대

김지혜

뺨 언저리에 잔잔한 소름이 돋는다. 곧 겨울이 올 건가보다. 외투의 옷깃에 달려있는 소복한 털이 내 몸 안 속까지 따뜻하게 만드니…

새삼 외투에 감사한 마음 까지 든다. 어깨에 한 가득 가방을 메고 들어선다.

하나는 노트북, 하나는 수많은 교재, 하나는 나의 지갑 등 잡동사니가 들어있는 가방이다.

어깨 한 쪽이 기울어 진 상태로 약간은 뒷모습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문에 들어서니 노르스름하고 흑자줏빛 같은 잎사귀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가을의 끝자락. 노랗고 빨간 길 을 따라 들어가면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잘은 들리지 않지만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분명하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교무실이 보인다. 동료교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오늘 시간표를 확인한다.

오늘은 ㅇㅇ 시간에 ㅇㅇ 학생들을 만나겠구나.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친구들이다. 수첩을 꺼내 들고 오늘 수업할 내용과 할 일들을 적어본다.

꽤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수업을 시작하기 전의 준비 시간은 나를 설레게 한다.

지그시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집중하기 위 해 머릿속을 깨끗이 비우는 시간이다. 1교시 종이 울리고 교실에 들어가면 나의 무대는 시작된다.

그 곳은 나만의 공간이다. 나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치밀하고 카리스마 있는 탐정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잔소리 많은 이웃집 할머니 가 되기도 한다.

15년 전 나는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교탁 앞에서 처음 우리 아이들을 만났던 날을…

대학시절에도 그 수많은 시간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벌벌 떨던 내가 교탁 앞에서 처음 학생들을 대했던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나보다 두 뼘 이상 키가 컸던 아이들 앞에서 내 소개를 하고 처음으로 무대에 서던 날.

나 지금 떨고 있니. 애써 침착하려, 한 명이라도 오늘 나의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이 있다면 가만있지 않으리라.

힘겹게 눈가를 찌푸리기도 했던 그 날을,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지만 수업 시간이 끝나고 나 스스로의 창피함에 못이겨 화장실에 혼자 들어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그 날을….

어린 시절 나의 꿈은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 있다.

몇 주 전 나는 15년 전 처음으로 가르쳤던 학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첫 아이를 낳았단다.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나에게 개 인 지도를 받던 학생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남들 다 하나는 과외 한 번, 학 원 한 번을 못 다녀 매일 점심시간마다 나에게 개인 지도를 받던 학생이었다.

이름도 안 잊었다. 연락처를 어떻게 알고 독일에 있는 나에게 연락을 하다니…

우리 는 한 시간을 얘기했다.

15년간의 세월을 어찌 한 시간 안에 다 담을 수 있을까. 하지만 바로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얘기를 나누었다.

조그마한 사업을 하고 있단다. 기특한 것…

기사에 여기저기 남발되고 있는 교권의 추락은 관심없다.

나는 오늘도 행복의 무대에 선다. 그 무대에서 나와 아이들이 함께 서 있다.

내가 조연이어도 단역이어도 괜찮다. 아이들과 함께 대사를 읊으며 그 시간을 채워나 간다.

내 어린 시절 나에게 “좋은 선생님”의 꿈을 심어 주었던 선생님을 추억하며 … 나는 오늘도 행복의 무대에 선다.

1201호 17면, 2021년 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