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과 동료(2)

류현옥

(지난호에서 이어집니다.)

인간성을 감지하는 재능을 가진 그리트의 특별한 안테나에 신호가 들어온 것이다. 남자는 친절한 그리트에게 공감을 느꼈고 대화를 즐겼다. 어느새 밤번을 한날이면 그리트는 남자와 손을 잡고 호스피스를 떠났고 근무시간에 맞추어 둘이 다시 나타났다.

그리트의 임신소식에 아무도 놀라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트는 직장 속에서 새 가족을 만나 새 가정을 이루어갔다. 가정의 따뜻함을 찾았다고 확신했다 자랑스럽게 앞배를 내밀며 이제 곧 남자의집으로 이사를 갈 것이며 남자의 아버지가 남기고 갈 재산으로 여유 있게 살 것이라는 가족계획을 걱정스럽게 말했다.

남자의 아버지는 호스피스에 들어와 반년을 지나면서 회복을 한 듯 상태가 오히려 좋아져가고 있었다. 아들과 함께 침대 옆에 앉자 손을 잡아주는 간호사가 대를 이어줄 손자를 낳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체 친절한 젊은 간호사와 아들의 달라진 모습을 즐겼다. 언제부턴가 침대에 앉아 옛 이야기를 하곤 했다.

환자는 먼저간 아내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하나뿐인 아들이 짝을 얻고 자식을 낳는 것을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는 말을 할 때는 그리트를 유난히 자세히 보았다. 그러면서 환자는 그리트의 손을 꼭 잡으며 눈을 감기도 했다.

그리트는 남지에게 아버지를 마음 편하게 돌아가시게 하기위해 그들의 관계를 이야기 하고 그녀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손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고 제의했다. 남자는 의외로 거절했다. 허약해진 건강상태의 아버지는 그런 정서적인 놀람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고 돌아가실 지도 모르기에 알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트는 그동안 회복을 한 아버지에게 더 살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며 설령 환자가 감당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희소식으로 알려드려야 한다는 주장도 완강히 거절했다. 아버지는 “나는 이렇게 죽어가는 데 너는 여자를 껴안고 나를 잊었다는 말이지 ?” 라고 할 것이란다.

그리트는 병가를 내고 남자의 아버지와 그 남자가 사는 병동을 피했다. 남자는 다시 아버지의 침대 옆에 매트리스를 갈고 밤을 새우며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트의 소식을 듣지 못한 몇 주 후에 남자의 아버지가 임종을 하고 다시 몇 주 후에 그녀는 출생 신고서를 보내왔다. 산모휴가를 일 년으로 연장하겠다는 신청서까지 동봉해서 보내왔다. 동료들은 그리트를 위해 돈을 모았다. 황새가 갓난아기를 싼 보자기를 입에 물고 날아오는 그림의 대형카드에 모두 한마디씩 축하의 말을 쓰고 서명을 했다. 아기 옷을 한 벌 사고 그리트를 위해서는 작은 꽃다발을 준비하여 젊은 동료 두 사람이 방문을 갔다. 호스피스의 팀은 그리트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가족이었다.

그동안 궁금했던 소식들이 전해졌다.

아기의 아버지는 아직 태어난 아기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트는 해결되지 않은 이혼과 장애자 딸에 대한 문제로 새아기에 대한 기쁨을 누리지도 못하는 상태라고 전했다. 장애자 케어로 나오는 돈을 받기위해 남편은 딸을 자신이 키우겠다고 하여 가정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녀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태어난 아기의 아버지와의 무산된 계획이었다. 남자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뇌졸중으로 쓸어진 후 반신불구의 몸으로 그리트가 아이를 안고 와서 보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트가 갓난아이를 안고 돌아가신 아버지의가 남긴 집으로 남자를 찾아가 거기에 주저앉으면 새 아이의 아버지 전용 간호사가 될 것이기에 주저하고 있단다.

두 동료는 그리트의 사정이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고 오히려 파국적인 상황에 이렀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될 의지가 전연 없는 남자에게 아버지 역할을 요구하는 실수를 반복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사전의 의논 없이 대학생 남자를 아버지로 만든 실수를 거듭 반복한 것이다.

처한 상황에 대해 여유있게 생각해 볼 여지도 없이, 조금도 후회하는 기색 없이, 그녀는 다시 다가오는 삶의 문제해결을 위해 쫓기게 될 것이다. 그녀의 두 딸이 어른이 되어 어머니를 이해할지 모르지만 당분간은 조건 없는 사랑으로 그들의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40 년의 직장생활을 통해 동료들과 인연을 가지고 그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보이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어왔다. 그럼에도 성인이 되어 만나는 생활광장이기에 조언도 할 수 없고 불행으로 가는 동료를 설득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체험했다. 모든 사람은 실수를 통해서 배운다고 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평생을 좌우하는 길로 들어선다는 것을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가서야 알게 된다.

그리트는 두 딸을 키우며 길모퉁이에서서 혼자 지나가는 남자를 바라보며 꿈을 꿀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그물(Sozialenetz )의 걸려 사는 동안만은 노숙자가 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적 그물로써는 피를 나눈 한 가족이 같이 사는 집과 직장이 중요한 제도적 기관일 것이다. 개미 쳇바퀴 돌 듯, 가정과 직장을 오가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그리트의 꿈은 꿈으로 써 가치가있을 뿐이다.

1204호 14면, 2021년 1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