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야기, 세상이야기 (3)

황만섭

크리스탈 밤(Kristallnacht)

1939년 11월 9일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공격하는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베를린, 뮌헨, 비엔나 등 대도시에 있는 유대인들의 상점 수만 여 곳을 공격하는 사건을 시작으로 유태인대학살을 예고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상점들의 유리창이 깨지는 불빛이 마치 크리스탈처럼 빛났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 ‘크리스탈 밤’이다. 이 공격으로 유대인 1500여명이 사망하고 3만 여명이 수용소로 끌려갔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후에 베를린장벽(1989)이 무너진 날과 겹치게 되었다. 그래서 메르켈 수상에게는 기념식과 추모식에 참석하느라 바쁜 날이 되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어이없게도 동독정보관대변인의 말실수로 일어난 사건이다.
기자들의 회견장에서였다. 한 기자가 “동독인들은 언제쯤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대변인은 “동독인들은 원하는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럼 그 법은 언제부터 시행됩니까?”라고 다시 묻자, “지금 당장부터입니다”라고 답했다.
이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동독인들은 베를린 장벽으로 달려갔고 “지금부터 국경을 마음대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정부발표가 조금 전에 있었다”고 하자, 국경수비병들이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에 베를린장벽은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년 후, 1990년 동독인민의회가 독일연방공화국편입을 결정하면서 독일통일이 이루어졌다.

종교개혁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혁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기득권을 갖고 있는 세력들이 목숨을 걸고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재력도 학력도 그리고 힘도 있고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 종교개혁도 어려웠고, 조광조(1482-1520)의 개혁도 좌절되고 말았다. 처음엔 왕도 조광조와 함께 개혁을 계획했지만, 기득권의 저항이 완강해지자 왕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만다.
지금의 적폐세력들도 엄청난 저항을 하고 있다. 거개의 사람들은 불의는 참아도 자신의 불이익은 못 참는다. 그들의 후손이 몰락해서 훗날에 얼마나 힘들게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질 않는다. 다만 눈앞에 이익에만 목숨을 건다.
지난 회에 종교개혁에 대해 짧게 언급했지만, 오늘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당시 성경은 어려운 라틴어로 쓰여 있었고, 교육을 받지 못한 일반인들은 성경책 옆에도 갈 수가 없었다. 성직자들은 글을 모르는 교인들의 신앙심을 고취시켜주기 위해 많은 성물들을 교회 안에 만들어 신앙심이 생기도록 유도했다. 거기에다가 엄숙한 분위기까지 연출했다.
베드로성당을 짓다가 공사비가 부족하자 각 나라에 기부금(분담금)을 요구했고, 독일의 꼬마나라들에게도 거의 동등한 거액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설상가상으로 면죄부판매까지 강행하자, 마틴 루터가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불만이 많았던 독일의 영주들은 루터를 지지하고 숨겨주게 된 것이 종교개혁의 성공요인으로 작용했다.
루터는 일반인들도 성경을 읽어 신앙심을 키우도록 세계최초로 신약성경을 번역했는데, 번역된 성경은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문학작품이 되었고, 200백년 후 괴테는 “루터가 우리민족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고 극찬했다. 루터가 성경을 번역할 당시 독일어는 땅에 굴러다니는 천한 말이었다. 그걸 라틴어 그리스어 불어 등 여러 외국어를 섞어가면서 빛나는 독일어로 11주만에 성경 27권을 번역했다. 참으로 기적적인 위대한 업적이라 할 것이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어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뜻을 펼치게 해주려고 한글창제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당시의 벼슬아치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무식해야 된다고 믿었다. 그들은 ‘한글은 언문’이라고 비하했고 엄청난 저항으로 한글창제를 방해했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적폐세력들은 항상 나라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 빠져있다.
지금의 토착왜구들도 마찬가지다. 여야, 보수세력, 개혁세력 할 것 없이 코앞의 이익에만 올인하지 말고 장차 우리의 자손들이 어떤 세상에서 살아야 좋은 세상이겠는가를 생각하면 금방 답이 보인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 부자가 훗날 가난할 수도 있고, 지금 가난한 사람들이 후대에 부자로 잘 살 수도 있다. 세상은 지금도 돌고 있고 앞으로도 쉬지 않고 돌게 될 것이다.

반복되는 이야기

다시 한 번 앞의 이야기를 요약해보자. 2~3천년 전에 흘러 들어온 게르만족은 그럭저럭 살다가 훈족(고조선, 지금의 역사학자들의 주장)의 공격으로 로마 쪽으로 쫓기는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있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로마군인으로 고용된 게르만족 병사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났고, 그중 오토 아케르라는 게르만족 장군에 의해 서기 476년 로마가 멸망하고, 로마 땅 위에는 동고트, 서고트, 롬바디아, 반달족 프랑크 왕국 등 많은 나라들이 생겨났다. 그 중 프랑켄왕국은 프랑스와 독일에 결친 큰 나라를 세워 4백여년 동안 작은 나라들을 괴롭혔다.
한편 프랑켄 왕국에서는 아버지가 죽고 아들 3형제가 3등분 했다가 장남이 죽자, 나머지 형의 땅을 두 동생이 나누어 가진 것이 오늘날 동프랑코는 독일이 되었고, 서프랑코는 프랑스가 된다. 프랑스는 영국과 백년전쟁을 하면서 강한 군대를 가진 중앙집권체제가 자리 잡았고, 독일은 300여 개의 작은 나라들로 나뉘어져 지방분권이 뿌리를 내렸다. 이 300여개의 나라들은 똑같이 독일어 사용과, 같은 종교(가톨릭)를 가졌기 때문에 큰 마찰 없이 오랜 세월을 같이 공존할 수 있었다.
911년 동프랑코 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호족들은 서로 왕이 되고자 싸웠다. 진통 끝에 하인리히 1세(919~936)가 왕으로 뽑혔고 그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오토가(936~973) 다시 왕으로 뽑혔다. 오토 왕은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로마 교황의 힘을 빌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거창한 황제의 관을 요하네스 12세로부터 받았고, 그것이 바로 도이취란트 제1제국이다. 신성 로마 제국은 844년 동안 그 이름을 유지하다가 1806년에 나폴레옹에 의해 망하게 된다.
옛날에는 체코도 오스트리아도 프로이센도 독일의 300여개 나라들 중 하나였다. 프로이센은 러시아 땅 일부(상트 페터스부르크)와 폴란드 땅에 자리를 잡았다가 차차 남쪽으로 세력을 넓히면서 내려왔고, 후에 베를린을 수도로 정했고, 비스마르크에 의해 독일통일을 이룩한 것이 오늘날의 ‘도이취란트 제2제국’이다. 남의 나라 역사이야기를 한꺼번에 기억하기는 어렵다. 독일이야기를 사랑방 이야기식으로 담 넘어가듯이 반복하는 이유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참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사전, 나무위키 참조, 먼 나라 이웃나라, 교양,

1206호 22면, 2021년 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