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너, 재밌게 살기! 어울려야 재밌다!

최월아

어떨 결에 했는데 평이 좋았다.

첫 수업시간에 가면서 했던 걱정,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과 연구를 하며 긴장 했는데 막상 부엌에서 강습지망생들과 마주하면서 편안해졌다. 누구나 즐기는 일이 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요리지만 한동안 바쁜 듯 살며 소홀했다. 한인사회의 활동에 밀렸었다. 한인사회의 활동은 주말을 필요로 하고 먼 길을 운전해야 한다. 가족들에게 왕따 따기 딱 좋은 조건이다. 그래서 조기퇴직을 하면서 모든 직에서도 물러나기로 했다. 사회활동과 직장에서 해방이 되어 ‘이제는!’ 하던 차 생각지 못한 과분한 명예직을 나라에서 임명받았다.

이 버거운 감투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충실히 실행하느라 더 멀리 더 바쁜 나날이 이어졌다. 가족들 먹일 음식을 할 여유조차 빠듯했다. 임기가 끝날 즈음 몸과 마음이 소진 된 듯 타거나 날아다니는 것이 버거웠다. 해서 연임한 임기를 마치며 모든 대내외활동에서 망설임 없이 물러났다. 그러나 사람은 어울려 살아야 재밌고 살맛난다는 걸 안다.

그리하여 그동안 등록만 해 놓고 참가를 못하던 지역 독일단체로 활동영역을 일단 좁혔다. 지역스포츠 페어라인에서 운동과 라인댄스를 하며 체력단련과 어울림을 만끽하고 있다. 진즉 가입해 놓았던 ZWAR(Zwischen Arbeit und Ruhestand) -퇴직을 앞둔 직장인이 소일거리와 취미를 찾아내어 랜트너에게 주어지는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하는 단체- 에서도 활동한다.

ZWAR가 추진하는 일회적 또는 장기적 이벤트와 봉사활동을 즐긴다. 프로그램 중 하나인 요리그룹에서 요리도 한다. 지역 한 학교의 환경 좋은 부엌에서 어울려 요리를 하는 재미와 나눠먹는 즐거움은 나의 적성에 아주 잘 맞다.

동호인들의 렌트너, 전 직장은 교수, 교사, 연구원, 공무원, 은행원, 비서직 등 다양하지만 함께 요리를 해서 멋지게 차린 식탁에 둘러 앉아 먹고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분위기는 아주 좋다. 나이 들어 이렇게 가까운 이웃에 가족이상의 관계를 맺게 된 인연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멀리 가지 않아 더 더욱 좋다

요리, 난 어릴 적부터 관심이 많았다. 자랄 때 우리 집엔 가족 외에도 그야말로 먹기 위한 식구가 많았다. 대소사도 엄청 많았다. 평소에도 대식구로 북적였지만 제사와 잔치가 있는 날이면 친인척들까지 몰려와 준비를 하느라 질서정연하면서도 시끌벅적했다. 특히 집안 가득 번지는 웃음 속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와 진동하던 음식냄새에 들뜬 우리들은 덩달아 신났다.

여자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가사/가정선생님들을 따른 건 당연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요리는 집에서 반듯이 실습을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엄마는 부엌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끝내는 조건으로 마음껏 사용하라며 너그럽게 허락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혼자 해보라’며 참견조차 않으셨다. 그렇게 만든 내 어설픈 요리를 “제법 먹을 만 하다!” 하면 으쓱했다. 그랬는데 요리는 입시 준비에 밀렸고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는 더 멀어질 수뿐이었다.

그러다 독일에 와서 빵과 치즈 대신 궁색한 재료로나마 다시 한식요리를 해서 친구들과 나눠먹었다. 모두 이십대 초반이던 처녀들이 의외로 요리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엄두를 못 낼 때 나는 그 옛날 집에서 눈요기 한 음식들을 흉내 내어 만들었다.

한독가정을 이룬 후 시집가족과 한인지인들을 자주 초대해서 불고기, 신선로, 전골, 잡채, 구절판, 양장피, 생선탕 등을 대접했다. 그 당시 한국에서도 흔치 않던 음식이라며 한인들도 놀라워했다.

렌트너가 되어 우연히 ZWAR에서 요리 동회 인들과 다시 요리를 하게 된 것은 참으로 절호의 찬스다. 열 두 서너 회원들은 매번 선정된 요리에 맞춰 전식. 후식. 상차림 등을 나눠서 하지만 나는 예외다. 나는 어김없이 한식을 한다. 손이 많이 가더라도 이왕이면 구색 맞춘 화사한 음식 두서너 가지를 골라 만든 음식을 예쁘게 맛깔스레 담아내면 모두가 먹기 아깝다면서 맛있게 잘 먹는다. 인기 완전 짱! 이다.

그러던 차 지난해에 우연히 VHS(volkshochschule)에서 한식 요리강습을 제안 받았다. 잠깐 주저했지만 깊이 고민하지 않고 덜컹 승낙을 했다. 하기 좋아하는 한식요리법을 현지인들에게 전수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참가자들을 모으는 안내에 궁리 끝에 요즘 유행하는 채식주의 자들도 쉽게 동참할 수 있는 ‘비빔밥’과 ‘야채전‘에 한식특유의 몇 가지 반찬을 하겠다고 하니 학교 측에서도 대 환영을 했다. 안내가 나간 2~3일 만에 최대 정원인원이 신청접수를 했고 그만큼이 또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실감한 한류의 인기다.

수업에 필요한 모든 재료구입은 강사가 해야 했다. 참가자들의 실력을 모르니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도 난감했다. 어쨌거나 재료를 구입했지만 주어진 5시간에 재료들을 다듬고 씻고 썰어 만든 요리를 함께 먹고 치워야 하는 것이 빠듯할 듯 했다. 해서 숙성기간이 필요한 양념고추장과 간장양념(매운 걸 못 먹는 사람을 위해)은 미리 집에서 만들어 갔다.

독일인들의 칼질 실력을 짐작하기에 재료의 반은 미리 다듬어 곱게 썰고, 고기도 잘게 썰어 미리 양념에 재어갔다. 당일에는 작은 양을 썰고 양념하고 지지고 볶는 것을 가르쳤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직접 다듬고 썰고 볶고 지지는 것을 좋아했다.

이렇게 미리 준비해간 덕분에 시간 내에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으며 평가를 했다. 참가인들은 대 만족이었다. 힘든 노동이었지만, 피드백이 무척 좋다는 VHS의 연락을 받고 나니, 피곤도 거뜬히 풀렸다. 다음 강의에는 좀 더 요령껏 일과 시간을 조절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가자들이 적지 않게 지불한 참가비가 아깝다! 고 후회는 하지 않도록 정성을 다 할 터이다.

수업 생들이 동기부여로 의기투합해 스스로 씻고 썰고 볶으며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확인 했으므로 여유롭게 다음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넉넉하게 해서 맛있게 먹고 남은 음식을 싹싹 긁어 가져들 갔는데 좀 덜 예쁘게 썰고 모양내면 무슨 상관이랴.

어울려 요리하는 재미와 맛있게 나눠먹는 즐거움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