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속의 한국 문화재 (2)
상트 오틸리언 수도원은 한국 근대사의 보고(寶庫)이다 ➀

상트 오틸리언 수도원: 한국 근대사 보고

베네딕도회의 한국진출은 여러 방면으로 한국 근대사에 이바지했다. 그 중 가장 큰 공헌은 선교박물관의 한국관 설립과 수도원 문헌실에 가득찬 한국근대역사 사료이다.

상트 오틸리언 수도원의 총원장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는 1911년 초에 선교지 시찰을 하기 위해 조선땅을 밟는다. 4개월간 선교지를 시찰하면서 한국인. 한국의 문화에 빠진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말살하려는 한국의 문화와 유물이 안타까워 “나는 이를 보호하겠다”는 차원에서 한국의 유물을 수집했다.

노르베르트 붸버 총원장은 신학자, 철학자이다, 또한 인류문화학자, 문학자이며 화가. 사진사이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한 학식의 원장신부는 한국에서 실제로 온갖 분야의 체험을 일기로 적고 사진기에 담고 그림으로 표현해서 본국으로 옮겼다. 한국의 문화유물도 힘에 미치는만큼 구입해서 본원으로 가지고 왔는데, 이러한 유물이 선교박물관 한국관의 기본이며 당시 수집한 각종 유물은 현재 한국근대사의 보고가 되고 있다.

노르베르트 베버 총원장은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흠취되어 본국에서 <Im Lande der Morgenstille> 제목으로 1915년 한국을 소개하는 방대한 책을 출판한다. 이 책은 현재까지 한국문화에 관심을 가진 유럽인과 한국인에게 좋은 자료집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2012년에는 국내에서 분도출판사에서 번역본을 출간하였다.

또한 베버 원장신부가 금강산 방문 때 구입한 겸재의 금강산화첩은 몇해전 한국으로 반환되어 한국의 복이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Norbert Weber 총원장은 국내를 순회하면서 그린 그림들, 사진기에 담은 한국의 문화, 그리고 한국문화에 대한 그의 영상물도 우리 한국에 크게 공헌을 했다. (2009년 KBS에서 방영된 바 있다)

문화를 지극히 사랑하는 붸버 총원장은 한국을 방문하고 다녀가서 가장 먼저 과제로 1915년에 한국에 관한 방대한 견문기 <Im Lande der Morgenstille >를 출간했는데, 서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한국에) 분명히 새로운 삶이 싹트고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삶이다. 하룻밤에 사라질 옛것들을 윤각이나마 원색의 붓놀림으로 잡아 두는 것도 보람된 일이 아닐까?”

바로 이러한 정신과 목적이 바로 선교박물관의 한국관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수도원에 소장된 각 종류의 유품을 방문하는 우리 한국인도 감탄을 하게 된다.

한국관에 소장된 유물의 대부분은 베버 총원장이 수집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물 종류도 다양하다.

이번호에는 베버 총원장의 한국문화재에 대한 업적을 살펴보고, 다음 호에서는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선교박물관 한국관 유물을 소개한다.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Norbert Weber 총원장의 한국에 관한 업적

베버 총원장은 사라졌을 한국유물 구입은 물론 1924년- 1927년까지 한국에 관한 문화 영상물 제작하였다. 원판은 독일 수도원에 보존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제작물이다. “Reise in den Fernen Osten (동양여행기 일반)”, “Die Perlen des Ostens (필리핀 위주)”, “Im Lande der Morgenstille(한국문화)”, “ Kim und Marta.Eine koreanische Hochzeit(전통혼례식)”, “Auf koreanischen Missionsfeldern (한국선교지)”, “Unter den Jugend Koreas (한국의 청소년 교육현장에서)”, “Ahnenkult (한국인의 장례식과 제사)”, “베틀에서 천을 짜는 모습”의 영상물 등이다.

이외에도 한국 당시의 풍물사진으로 1000 여장의 유리원판이 보관되어 있다. 또한 한국에 관한 저서로 “Im lande der Morgenstille(고요한 아침의 나라), 초판 1915년, 증보 2 판 1923년( 2012년 분도출판사 역)”와 “Diamantberg Koreas(한국의 금강산) 1925년, 국어번역/ 수도사와 금강산, 베커스 김영자, 푸른숲 출판사 1999년”을 둘 수 있다.

이외에도 한국에 관한 근대 조선의 사진자료로 전통문화 공예 및 풍물사진. 민속사진 등 1,000 점 유리 원판이 문서보관소에 보관되어 있고, 국보급 보물인 겸재의 ‘금강산 화첩’을 2006년 영구임대식으로 한국에 반환했다는 점이다.

이 화첩은 노르베르트 붸버 총원장이 1925년 금강산 방문을 하면서 금강산 그림을 구입하고저 했지만 금강산 정상에서 한국, 중국, 일본인 화가들은 많았으나 제대로 금강산 묘사를 한 그림은 없었다고 그의 저서에 적는다. 그래도 한 일본인 화가의 금강산그림 한 점을 구입했다(현재 선교박물관에 전시되었음/ 그림상태는 아주 나쁨). 그러다가 베버 원장신부는 우연히 구한 겸재 정선의 금강산화첩을 본원으로 가지고 왔다. 그렇지만 이 화첩이 겸재가 그린 것이란 것은 당시 아무도 알지 못 했다.

1930년 베버 총원장이 직책에서 물러나고 그는 얼마 후에 아프리카 선교사로 떠나는 등 선교박물관 자체와 겸재의 금강산화첩은 수도원에서 거의 잊혀졌다. 동양전시관의 한 진열장에서 그저 평범한 그림 한 장으로 수십 년을 보냈다. 1970년대 우연히 전시실에서 이 그림의 진가가 밝혀지면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고 결국 정선 겸재의 화첩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2005년 현 총원장 Jeremias Schroeder 신부의 배려로 한국에 반환되었다. (편집실)


그동안 한류를 통해 한국 문학, K-Ppo, K-Beauty, K-Drama 등 다양한 한국 문화가 독일에 소개되어 왔다.
그러나 2018년 기준 독일 내 한국 문화재는 총 1만876점. 일본,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우리 문화재를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매우 생소하다. 더욱이 독일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 문화재 규모가 유럽 국가 중 최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예술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점은 매우 안타깝기만 한 현실이다.
실제로 독일 박물관은 엄청난 양의 한국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문화재는 동아시아 미술품으로 광범위하게 분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및 중국 문화재에 밀려 학술적 연구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한국 문화재를 2000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 베를린인류학박물관, 함부르크민속박물관이 단 한 점의 한국 문화재도 전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렇듯 오랜 기간 한국 문화재는 그 가치가 발견되지 않은 보물 상태로 머물러 있다.
교포신문사에서는 특집연재 “독일 속의 한국 문화재”를 통해 독일 내 한국문화재의 현황을 소개하며, 재독한인들과 한국 정부의 “독일 속의 한국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자 한다.

2020년 6월 26일, 1176호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