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17)
독일통일과 신연방주 구축 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독일 통일은 외교적 노력과 흡수통일이라는 정치적 결단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1990년 10월 통일 이후에 정치, 행정 부분의 통합 작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반면에 경제 통합과 구 동독지역 재건 사업은 상당한 어려움이 대두되었다.

구 동독지역 재건(Aufbau Ost) 프로젝트는 구 동독지역 주민들의 구 서독지역으로의 대량 유입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에서 독일 통일기금(Fonds Deutsche Einheit), 통일연대세(Solidaritätszuschlag), 연대협약(Solidarpakt) 등의 재원을 가지고 독일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서로 협력하여 시행하였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에서 구 동독지역 재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중심조직으로는 신연방주를 위한 특임관(Der Beauftragte der Bundesregierung für die Neuen Bundesländer)을 두었다.

지난호까지 구 동독지역 재건 재정지원 조달방안인 독일 통일기금(Fonds Deutsche Einheit)과 통일연대세(Solidaritätszuschlag)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호는 마지막으로 연대협약(Solidarpakt)에 관해 살펴본다.


독일통일은 1990년 10월 3일 동독(독일민주공화국)지역에 5개의 연방주(聯邦州)가 설치되어, 이 연방주가 서독(독일연방공화국)에 가입하는 형식으로 실현되었다. 이로써 1949년 정부 수립 이후 40여 년 이상 존재했던 동독이라는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통일 이전 서독에는 11개의 연방주가 있었는데, 통일과 동시에 5개의 연방주가 더해져 독일에는 총 16개의 연방주가 존재하게 되었다. 독일인들은 통일 전 구서독지역에 있었던 연방주를 ‘구연방주(alte Bundesländer)’라고 부르며 통일과 함께 가입한 5개의 연방주를 ‘신연방주(neue Bundesländer)’라고 칭하고 있다.

독일의 연방제는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히틀러의 제3제국 시대에 잠시 중단되었다가 서독 정부 수립과 함께 부활되었다. 그러나 동서독 분단 후 서독에서는 연방제가 부활되었던 것과는 달리 동독 사회주의 정권은 연방제와 지방자치제를 실시하지 않았다. ‘독일 사회주의통일당(Sozialistische Einheitspartei Deutschlands, 약자 사통당)’ 중심의 국정운영과 중앙집권제를 강조하는 동독 사회주의 정권이 권력의 분산을 의미하는 연방제와 지방자치제를 허용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통일을 앞두고 동독에서 주 제도와 지방자치제 부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동독 정부는 시민혁명 이후 사통당이 몰락하고 통일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던 1990년 초 주 제도와 지방자치제 부활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으며, 마침내 주를 부활시킬 것을 결정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와 동시에 동독에서 지방자치제를 실시할 것도 결정하였다. 이러한 조치의 배경에는 더 이상 동독의 기존 제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동독 국민의 요구와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는 동독 정부의 자발적인 개혁이 아니라 연방제 부활에 대한 국민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통일과 주 제도의 부활에 대해 보다 확실한 결정이 내려진 것은 1990년 3월 18일에 있었던 동독 최초의 민주 총선 이후였다. 총선 이후 들어선 동독의 민주 정부는 동독 국민들의 뜻에 따라 조속한 통일을 결정·추진하였으며, 통일의 방법에 있어서도 주를 신설하여 이 주들이 서독의 기본법 적용지역, 즉 서독으로 가입하는 형식을 선택하였다. 이른바 서독 기본법 제23조에 따른 통일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다.

동독의 입법기관인 인민회의(Volkskammer) 역시 인민의 뜻에 따라 관련 법 제정을 서둘렀다. 동독 인민회의는 5월 17일 ‘지방자치법’을 제정하였으며, 동년 7월 22일 주를 부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소위 ‘주도입법’을 제정하였다. 또한 1990년 7월 6일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적 문제를 규정하기 위해 일명 지방재산법(Kommunalvermögensgetz)도 제정하였다.

통일과정 속에서 신연방주 구축

독일통일 과정에서 신연방주 체제 구축은 통일 이후에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지만, 그 토대는 사실상 통일 이전에 이미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90년 초부터 동서독 간 또는 동서독 내부에서는 통일과 통일 이후의 체제통합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결정이 있었는데, 신연방주 부활도 이때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1) 통일 이전의 과정

동독에서의 부활 결정

서독 정부는 1990년 2월 콜(Helmut Kohl) 총리가 소련 당서기장인 고르바초프와의 회담을 통해 독일통일에 합의한 이후부터 통일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했는데, 그것은 조속한 통일을 이루는 것이었다. 반면 모드로우(Hans Modrow) 총리를 대표로 하는 동독의 과도기 정부는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서독 정부와 이견을 보이지 않았으나,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서독과 달리했다.

동독 정부는 서독의 빠른 통일과는 달리 국가연합을 거쳐 독일연방을 구축하는 점진적 방안을 제시하였다. 또한 통일국가는 군사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등 어떠한 군사동맹 기구에도 가입하지 않는 중립국 국가 통일방안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다시 서독 정부에 의해 거부되는 등 동서독 정부 간에는 물론 각 진영의 내부에서도 아직 통일에 대한 확실한 방안이 확정되지 않은 채 다양한 논의들만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 동독 내부에서는 통일 방안에 대한 것 이외에도 동독 체제의 개혁과 통일 이후를 위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는데, 그중 중요한 주제 하나가 바로 행정체제의 개편에 관한 것이었다. 통일의 방법과 시기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동독 내부의 개혁과 통일준비 차원에서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이었다.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논의 중 대표적 주제는 동독에서의 주(州)의 부활과 지방자치제 실시에 관한 것이었는데, 여러 논의 끝에 동독 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한 기본 방향이 결정된 것은 1990년 2월 1일에 있었던 각료회의였다.

여기에서 논의되고 동년 2월 5에 있었던 원탁회의(Runder Tisch)에서 승인된 개혁의 주요 내용을 보면, 우선 동독에서 주가 부활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 동독 국민의 50% 이상이 주 부활에 찬성한다고 설명하면서, 1990년 2월 말 이전에 주 부활을 위한 기본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동독에서 주의 부활을 위한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당시 주 부활에 대해 구체적 실천 방법, 즉 몇 개의 주를 어떠한 방법을 통해 설치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3개의 방안이 논의되었다.

첫 번째 안은 기존의 관구제도를 폐지하고 대신 이 지역에 5개의 주를 설치하는 것인데, 기존의 행정구역 경계를 유지하는 방안이었다. 이 방안은 당시의 경계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관구만 폐지하는 방안이다.

두 번째 방안은 1952년까지 존속되었던 주와 지방자치단체 모두를 그대로 복원시키는 것으로써, 이는 곧 지난 약 40년 동안의 동독 사회주의 지방행정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 방안은 3개의 주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동독 지역의 지리적 상황을 고려한 것은 물론 통일 이후 동독지역의 행정력 강화를 위해 가능하면 주의 수를 축소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3개의 주를 만들어야 한다는 안이 제시되었다.

1189호 28면, 2020년 10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