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23)
동독 사회주의 독재의 사법적 청산 (2)

사법청산의 전개-국경 탈주자 살상 사건을 중심으로

정권 범죄 특별수사부의 설립

사통당 정권 범죄의 실상을 접한 독일인들은 분노를 표출하며 모든 범죄 의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법치주의 원칙을 표방 한 독일 사법부는 형벌 불소급 원칙을 침해하지 않는, 즉 동독법상 처벌 사유가 있는 행위를 중심으로 사법 처리를 시행했다. 선거 조작, 납치, 살해, 고문, 신체 상해, 사통당의 정치적 권력 유지를 위해 법을 왜곡하여 판결한 동 독 판·검사들의 행위, 베를린 장벽과 동서독 국경을 넘어 서독으로 탈주를 시도한 동독인에 대한 살상 행위 등이 이에 해당했다.

이러한 범죄에 대한 사법 처리를 뒷받침하기 위해 1991년 독일 각 주검찰 청 내에 정권 범죄 특별수사부가 설치되었다. 베를린의 경우 주 최고 검찰청 내에 특별수사부가 설치되었다. 베를린 특별수사부는 예외적으로 다 른 주로부터 210명의 수사관과 60명의 검사를 차출해 총 430명의 수사관과 80명의 검사로 구성되었다. 베를린에 가장 규모가 큰 특별수사부가 설립된 것은 동독의 중앙집권적 체제로 인해 수도였던 동베를린에서 거의 모든 중요 한 정치적 결정이 내려졌고, 정권 범죄의 대부분이 이곳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 문이다.

활동 기간은 원래 1998년까지만 한 시적으로 운영할 생각이었지만 수사가 장기화되고 업무량이 많아짐에 따라 2003년까지 연장되었다.

국경수비대 재판

통일 후 시도된 사법청산 과정에서 독일 사회의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것은 국경을 넘어 탈주를 시도한 동독인에 대한 발포 및 사살을 둘러싼 재판 이었다. 비무장 상태로 오로지 서독으로 넘어가기 위해 월경을 시도한 민간 인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죽음에 이르게 한 비인간적 행위는 동독 정권의 인권 경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당연시되었기 때문이다.

특별경찰기구인 ‘정권·통일 범죄 중앙 수사본부(Zentrale Ermit-telungsstelle für Regierungs- und Vereinigungskriminalität)’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경지대에서 지뢰 및 총기 발포로 인해 발생한 희생자는 584명 에 달하며, 이 가운데 369명은 정조준 사격에 의해 사살되었다.

재판은 탈주자를 겨냥해 총격을 가한 국경수비대원, 이들에게 발포 지침을 내린 국경수비대 사령부, 그리고 동독 국경 방위 문제에 대한 최상위 명령권자인 국방위원회와 정치국 위원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국방위원회 위원 재판

국경수비대 일반 병사에 대한 재판은 곧 독일 사회 내에 경범은 처벌하고 중범은 놔준다는 비판을 야기했다. 요컨대 동독 탈주자 사살에 대한 책임을 명령을 수행한 하급 병사에게만 부과하고, 명령을 내린 권력자들은 왜 처벌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를린 정권 범죄 특별수사부 는 동독 지도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내용이 명시된 문서를 입수했다.

이는 동독 국방위원회(Nationaler Verteidigungsrat der DDR) 회의 문서로, 베를린 장벽 수립을 전후한 시기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열린 내부 회의에 서 국방위원들은 국경 탈주를 저지하기 위해 국경 지대에 지뢰와 자동 발사 장치 등의 살상 무기를 지속적으로 확대 설치하고, 탈주자를 저지하기 위해 발포 및 사살도 불사해야 한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보다 결정적인 것은 1974년 5월 3일 국방위원회 제45차 회의 내용을 기록한 문서였다. 이 회의에서 호네커는 국경이 침범될 경우 가차 없이 총포가 사용되어야 한다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 했고, 성공적으로 탈주자를 저지한 수비대원은 치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는 다른 국방위원들의 동의를 얻어 결의로 채택되었고, 이 결의에 따라 대부분의 동서 베를린 및 동서독 국경 지대에 지뢰와 자동 발사장치가 설치되었고, 국경수비대에게 필요시 “국경 침범자”를 총포로 “제거”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의 명령과 복무규정도 마련되었다.

대법원은 국경수비대원 재판과 마찬가지로 국방위원회 위원 재판 에서도 동독 탈주자를 저지하기 위해 총, 지뢰 등을 동원해 고의적으로 동 독인을 살해한 정권의 행위는 심각한 인권 침해 행위이므로 실정법보다 자연 법을 우위에 두는 국제 인권법의 적용이 정당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정치국 위원 재판

연방 대법원이 국방위원회에 대한 베를린 주 법원의 판결을 재확인함에 따라 국경 탈주자 살상 사건에 대해 책임이 있는 정치국 위원을 기소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1996년 1월에 에곤 크렌츠(Egon Krenz), 귄터 클라이버(Günter Kleiber), 귄터 샤봅스키(Günter Schabowski), 한스 요아힘 뵈메(Hans-Joachim Böhme), 지그프리트 로렌츠(Siegfried Lorenz), 헤르베르트 해버(Herbert Häber)가 기소되었다.

정치국은 동독 최고의 권력기관으로, 모든 중요한 결정은 기본적으로 정치국이 내렸다. 엄연히 국방위원회가 있었지만 정치국은 안보문제에도 깊이 개입했다. 예컨대 정치국은 1971년과 1973년에 국경 수비와 관련된 광범위한 결정을 내렸고, 지뢰 설치를 통해 국경 방어 시설을 강화하도록 지시했다.

국방위원회 위원들과 마찬가지로 정치국 위원들의 결의와 지시 역시 국방부장관을 통해 베를린 장벽 및 동서독 국경 지역 수비대에게 총기를 사용하라는 명령으로 하달되었고, 이에 따라 국경수비대원들은 살인을 감수하며 탈주자를 향해 발포했던 것이다.

내독 국경에서 자행된 폭력행위와 관련해 베를린 형사소추기관에 총 6,432건의 소송이 제기되었다. 이 가운데 기소 건수는 112건이었고, 246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재판 결과 이 가운데 61명은 무죄로 석방되었고, 132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재판부는 피고의 권력 서열, 지속적인 정치적 세뇌 교육에 따른 법의식의 파괴, 명령에 대한 맹 목적 복종을 강요한 억압적 상황, 고령 등을 고려해 형량을 결정했다.

가장 말단에 해당하는 국경수비대원과 이들의 직속상관은 대부분 6개월 에서 2년 사이의 집행 유예를 선고 받았다. 그에 비해 국경수비대 연대장은 1 년 8개월에서 2년 반, 여단장은 3년 3개월, 국경수비대장은 3년 3개월에서 6 년 반, 국방위원회 위원들은 3년 반에서 7년 반, 그리고 정치국 위원들은 처벌 포기에서 6년 반에 이르는 형을 선고 받았다.


교포신문사는 독일통일 30주년을 맞아, 분단으로부터 통일을 거쳐 오늘날까지의 독일을 조망해본다.
이를 위해 지면을 통해 독일의 분단, 분단의 고착화, 통일과정, 통일 후 사회통합과정을 6월 첫 주부터 연재를 통해 살펴보도록 한다 -편집자 주

1199호 31면, 2020년 12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