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30년 연재를 마치며:

“독일 통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10월 3일 통일 31주년을 맞아 작센안할트주 할레시에서 동·서독 간의 갈등을 줄이려면 독일 국민들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취지의 연설을 한 바 있다. 독일에서는 여전히 옛 서독 지역보다 동독 지역이 경제적으로 뒤처져 있고, 이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동독인들과 주류 사회의 주축인 서독인들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태를 지적한 것이다.

메르켈은 “서로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며 다른 사람들과의 다름을 용인해야 한다”며 “우리는 서로 살아온 길과 경험을 존중해야 하며 이것이 통일 31주년의 교훈”이라고 했다. 서독인과 동독인들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더 기울여 달라는 호소로 받아들여졌다.

여전한 구동·서독 지역 간 경제격차

독일은 통일된 지 31년이 지났지만 가 여전해 갖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서독이 4만3449유로였으며, 동독 지역은 서독의 69% 수준인 3만27유로. 실업률도 5.1%(서독) 대 7.1%(동독)로 차이가 있다. 또한 할레경제연구소(IWH)가 독일 500대 기업의 분포를 전수조사해 보니 서독에 본사가 있는 기업이 93%(464곳)였고, 동독에는 불과 7%(36곳)만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동베를린 지역을 제외하면 17개로 3.4%에 불과한 실정이다. 더구나 독일 증시에서 최우량 주식 주가 동향을 보여주는 닥스(DAX) 지수에 포함된 30개 기업 가운데 구동독 지역에 본사가 위치한 기업은 하나도 없다.

부가가치가 높은 경제활동이나 최고위 경영층의 결정이 이뤄지고 연구개발이 이뤄지는 곳은 모두 서독 지역에 있는 반면, 구동독 지역은 자동차 조립공장 등 하청 제조 산업의 경제구조가 집중돼 있다. 그렇다 보니 구동독 지역에서는 고학력 고임금 일자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결국 고부가가치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하는 경제적 활동은 주로 구서독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비록 구동독 지역은 국가와 대학 그리고 중소기업이 연계해 고부가가치 산업 창출을 위한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 있지만,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갖춘 구서독의 많은 대기업의 역량에 비하면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구동독지역 젊은 세대들의 두서독지역으로의 이주

이런 격차가 해소될 조짐이 없자 동독에서는 능력 있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서독으로 빠져나가는 탈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독일의 민간 싱크탱크인 이포(Ifo)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1700만명이던 동독 지역 인구(베를린 제외)는 2019년 1360만명으로 줄어들어 1905년 인구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동독인들은 “우리는 여전히 ‘차별받는 2등 국민’”이라는 불만이 적지 않다.

반면 서독인들 사이에서는 “동독인들은 서독인들의 희생으로 같은 공산권이던 다른 동유럽 나라 국민들보다 훨씬 잘살게 됐는데 왜 불만을 갖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경제통합보다 어려운 사회통합 과제극우세력 등의 도전

동서독의 경제적 격차는 독일정부의 노력으로 매년 눈에 보이는 성과를 보이는 반면 사회통합은 좀 더 어려운 과제다.

분단기 동서로 갈렸다가 하나의 도시로 다시 돌아간 베를린에서 특히 그렇다. 한 도시 안에서 동서 간의 차이가 아직 상당하다. 서베를린은 상대적인 부유층이 거주한다. 동베를린도 미테와 크로이츠베르크의 일부 지역은 고급 주거지로 탈바꿈하고 있지만, 서베를린보다는 경제적으로 뒤쳐진다.

통일 당시 동독지역 기업들이 무너지면서 당시 동독주민들은 대량 해고의 아픔을 맛봤다. 동독 지역 대학에서 상당수의 교수가 쫓겨났다. 일부 지역은 비밀경찰 출신을 철저히 색출해 불이익을 줬다. 동독 체제의 엘리트 계층 가운데 불만을 품어온 이들이 적지 않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불만은 2015년 난민의 대량 유입 이후 반(反)난민정서와 결합하기도 했다.

동독지역은 농촌이 많아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막연하게 난민, 외국인에 대한 공포감이 조장되는 경향이 생겼다.

반난민정서는 동독지역 청년 세대에도 파고들었다. 자신의 일자리를 이방인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다. 난민의 사회적 통합 작업에서 부작용이 나타나는 틈을 타 극우세력이 반난민정서를 부추기기도 했다.

극우 성향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017년 총선과 지난 9월 총선에서 10%대의 지지로 연방하원에 입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배경이 뒷받침돼 있다. 9월 총선에서 독일의 16주 가운데 AfD가 1위를 차지한 작센주와 튀링겐주는 모두 동독 지역이다.

동독이 서독 체제에 흡수된 1990년 통일 이후 31년이 흘렀지만 옛 동독 지역 주민들의 상실감과 소외감은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고, 그것이 AfD에 대한 관심과 지지로 연결되고 있다는게 독일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독일 사회는 동독에서 주민들의 소외감과 극우 부상 현상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의 단순히 경제적 격차에 주목하던 관점을 반성하면서 동독 주민들이 그동안 겪었을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이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통일과 관련해 갑작스런 ‘선물’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옛 동독 시민이 스스로 민주화를 이뤄내고 통일 이후 사회의 주역 중 하나라는 자긍심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지난 10월 3일 ‘통일의 날’ 기념식에서 “서로의 말을 듣고 대화를 해야 한다”며 “민주주의는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위해 매일 함께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에서 통일 후유증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1240호 31면, 2021년 10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