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원 박사와 둘러보는 문화와 문화 사이를 잇는 다양한 현장들 (2)

한국과 독일의 약속에 대한 서로 다른 개념과 의사표현 방식

독일에서 약속은 상호 간의 협정이다. 직장에서든 개인적인 상황에서든 약속이라는 것은 꼭 지켜야 하는 상호 간의 협약으로 받아들여진다. 의사를 방문할 때도 관공서를 방문할 때도 꼭 약속을 잡고 가야하고 공적인 일뿐 아니라 사적인 일들도 대부분 미리미리 약속을 잡고 해당 시간에 일처리를 하고 만남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내가 이 문화 교육을 할 때 미국, 프랑스, 브라질, 스웨덴, 한국 등 타 문화권의 사람들이 독일 사람들과 소통할 때 불편하게 생각하는 점 중 하나가 독일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약속을 잡아야 하고 그것에 대해 바꾸고 취소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모든 독일 사람이 약속에 대해 다 진중하고 꼭 약속을 지킨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개인차는 있을 수 있겠으나 독일 사회는 타문화와 비교해서 약속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그것을 지키고 따르는 것이 더 잘 수용된다는 것이다.

한국 독일의 서로 다른 표현 방법
(루이 콜만)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친구끼리 사교모임 날짜를 잡을 때도 독일인들은 달력을 펼쳐 들며 심각하게 시간 계획을 잡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약속을 잡고자 하는 상대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저 “시간 있을 때 커피 한잔합시다”라는 가벼운 인사말에도 달력을 꺼내 들며 “몇 월, 며칠, 몇 시에 만날까요?” 로 응대하는 독일 사람들의 약속에 대한 진중함은 인터넷상에서도 유머로 잔잔하게 그리고 널리 퍼져있다.

함께 커피 한 잔 마시겠냐고 묻는데 달력을 들고 덤비는 진중한 독일 사람들의 태도는 마치 “나는 이렇게 바쁘지만, 당신과의 만남은 꼭 성사하겠소”하고 목 놓아 외치는 것으로 보이기에 십상이라 상대를 부담스럽게 만든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독일인들의 시간 약속에 대한 진중함은 존중받아 마땅한 일이다. 내 시간이 중요한 만큼 남의 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당하지 않은가.

독일인들은 자신과 한 약속 시간을 잘 지키지 않거나 함께 결정한 일을 멋대로 백지장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남에 대한 존중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약속이 자신의 중요한 일을 다 한 후에 남은 시간을 채우는 행위에 그치기도 하는데 이러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독일에서는 통상 예의가 없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하지만 개인적 약속을 즉각적으로 취소하는 일은 한국 사회에서는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본인의 일상이 불가항력적인 큰 힘으로 통제받고 있고 거기에 자신의 일정을 맞추어야 하므로 개인적 약속을 취소하거나 뒤로 미루는 일이 독일에서보다 더 자주 일어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독일 사회에 비해 철저한 위계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예를 들어 퇴근 시간이 되었을 때 갑자기 고객이나 상사가 일을 시켜서 야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러한 사회구조에서 저녁 퇴근 후 개인적인 약속은 물거품처럼 취소될 수 있다. 이뿐인가, 상명하달 체제에 윗사람의 명령이나 조직의 이익을 위해 휴가 계획조차 미리 세우지 못하거나 기껏 세워놓은 휴가 계획도 취소해야 하는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일로 만든 약속은 반드시 지키기 힘들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약속의 즉각적인 취소 및 변경은 직장생활로 인한 것뿐 아니라 사적인 약속에서도 독일에 비해 더 너그럽게 받아들여진다.

아래의 글은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독일 학생이 한국 친구들과 지내면서 약속에 대한 문화차이로 고생한 이야기를 나눈 글이다. 학생은 처음에 한국과 독일의 약속 문화의 차이에 대해 겪었던 불편을 나름의 상황 분석과 경험을 통해 이해 차원으로 발전시킨 과정을 진솔하게 설명한다.

< 독일과 한국 우정간 타이밍 딜레마>

저는 독일에서 동아시아 석사를 전공하는 마이케 오르트기쓰입니다. 현재 23살로 인생의 4분의 1을 한국어 학습에 바쳤으며 한국어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하지만 한국어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한국을 무조건 과대평가한다기보다 존경의 마음과 의심의 마음을 함께 가지고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비판하고 분석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언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은 단지 그 언어를 배우고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와 문화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탐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져다준 한국 친구들과의 교류에서 경험한 것들을 여러분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다른 나라를 알려면 그 나라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독일 철학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말입니다. 21세기에 새삼스러운 것이 없는 말이지만 언어를 배운다고 해서 소통의 어려움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상호 이해 없는 언어습득은 또 다른, 아니 더 큰 어려움을 낳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는 동안 한국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이것을 깨달았던 계기가 있었기에 여러분과 공유하려 합니다. 다음은 한국 친구와 제가 만날 약속을 잡을 때의 일상적인 채팅 대화의 일부입니다.

“되는 것 같다고?” 친구의 문자에 대해 저의 반응은 ‘그러니까, 된다는 말이야? 안된다는 말이야?’였습니다. 친구에게 약속을 잡기 위해 문자를 보낸 후에 이런 답변을 받을 때마다 저는 엄청나게 혼란스럽고 짜증이 났었습니다.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교류가 잦아지면서 저는 친구의 ‘되는 것 같다’는 이 답변을 점차적으로 긍정적인 “응!”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되는 것 같다’는 현재는 가능하지만, 그때 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독일인인 저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메시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약속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는 친구가 갑자기 우리의 만남을 취소할 때도 마찬가지였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대게 앞으로 일어날 (어떠한)일에 대해서든 대비하기 위해 미리미리 계획을 세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약속을 잡을 때도 신중하게 잡고 약속을 잘 지키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교환학생으로 있으면서 한국 친구들과 한 약속들은 번번이 취소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한국 친구들은 미리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아서 더욱 중요한 일이 자주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미 잡은 약속을 자주 즉각적으로 변경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지금 나갈 기분이 아니라는 등의 감정적인 변화가 약속 취소의 이유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바꿀 수 없는 협약으로 알고 자란 제게 이러한 즉각적인 약속의 취소나 변동은 처음에는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는 대부분 시간 약속을 정확하게 지키고 혹시 약속을 취소해야 할 일이 생기면 반드시 사전에 상대에게 연락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친구들은 자주 약속에 지각하거나 마지막 순간에 약속을 취소하며, 적절한 설명이나 사과 없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오래 살면서 한국 학생들의 약속에 대한 관념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면서 이러한 현상을 독일과 한국 우정의 “타이밍 딜레마”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즉 독일과 한국의 서로 다른 사고와 표현방식이 잘못된 의사소통과 “타이밍 딜레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인은 직접적이고 솔직한 의사소통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 문화에서는 정직성, 명확성, 효율성이 크게 중요시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비즈니스 미팅에서 독일 전문가는 솔직한 의견을 표현하며 구체적인 세부 사항과 피드백을 주저하지 않고 제시합니다.

마찬가지로, 사교모임에서도 독일인들은 칭찬이나 비판 등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독일에서는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문제나 갈등을 해결하고 의사소통의 투명성은 신뢰를 증진시키고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직접적인 의사소통보다는 사회구성원 간의 조화로운 관계 형성과 체면 유지가 중요합니다. 직접적인 언어 소통 보다는 맥락에 의존하는 의사소통 스타일을 사용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직접적 비판이나 반대를 가능한 한 피하고 꼭 그래야 할 때는 비언어적인 힌트나 제스처 등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초대를 받았을 때, 초대에 응한다 아니다를 분명하게 말하기 보다는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정이 허락한다면” 또는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등으로 답하며 독일사람의 입장에서는 확답을 피하는 것 같아 보이는 답변을 하는데 그 이유는 그 약속을 지키고 따르기 전에 여러 가지 요소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약속에 대한 개념과 표현의 극명한 문화차이는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가거나 주재원으로 가게 된 독일인들에게 커다란 어려움을 초래합니다. 저도 한동안 이러한 어려움을 겪다가 점차 한국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하게 되면서 한국 친구가 갑자기 약속을 취소한다하더라도 화내고 당황하기보다 혼자서 소주를 마시러 가게 되었습니다.

즉 약속에 대해 독일적인 편협한 습관을 앞세우기보다 한국적인 자세로 유연하게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시인 조지훈의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태어난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을 충실하게 따르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공부하는 한국인 학생이나 주재원들도 대학이나 직장에서 직접적이고 적극적이며 단호한 의사소통 스타일을 배우고 그것에 적응해야 합니다. 혹시 무례해 보일까 염려하지 말고 가감 없이 자기 의견과 생각을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경계를 존중하는 균형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약속뿐 아니라 다른 문화적, 관념적, 표현적 차이에 대해 타문화를 탓하고 자신의 문화의 전형적 습관을 내세우기보다 인내심과 자제심을 갖고 다른 문화의 세부사항을 배우려는 의지를 잃지 않는다면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면서 문화 다양성을 수용하고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법을 배워나가는 것은 독일과 한국 사이의 협력과 문화적 교류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그것의 첫 발은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삽화작가 소개:
루이 콜만 (Lui Kohlmann, 1995)
루이 콜만은 브래멘 대학에서 미술학위를 마친 후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중이며 그와 더불어 현재 한국학 학사를 취득중이다. (https://lui-kohlmann.de)

1325호 14면, 2023년 8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