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
합리적 타협과 융합의 정치를 실천하다 ➁
명품 왕국 독일에는 제품·인프라·시스템뿐만 아니라 인물에도 명품이 많다.
경제적으로 ‘라인강의 기적’과 정치적으로 ‘베를린의 기적’을 이끌어온 ‘서독과 통일독일의 연방총리들’이야 말로 나치 정권의 혹독한 시련을 겪은 독일이 길러낸 최고 명장들이며 독일 국민이 만들어낸 최고의 명품이다.
독일의 연방총리를 보면 자유민주주의와 강력한 서독(아데나워)- 시장경제와 경제기적(에르하르트)- 동방정책(빌리 브란트)-동서 데탕트 시대(슈미트)- 유럽 통합과 독일 통일(헬무트 콜)- 노동개혁과 독일병 처방(슈뢰더)- 독일병 치유와 EU 대주주(메르켈) 그리고 현재 올라프 숄츠로 이어지며, 제2차 세계대전 후 건국-분단-냉전-성장-통일-통합에 이르기까지 마치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잘 짜여진 시나리오로 구성되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005년 독일 총리에 취임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많은 기록을 남겼다.
독일 첫 여성 총리이자 첫 동독 출신 총리다(서독에서 태어났지만 동독에서 자랐다). 쉰한 살에 독일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전후 최연소 총리이며, 의원내각제 독일에서 스스로 임기를 마감한 첫 총리이기도 하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22년), 헬무트 콜(16년)에 이어 독일의 세 번째 장수 총리다.
단순히 임기만 긴 게 아니다. 양과 질 모두 칭송받는다.
16년 임기 동안 개인 비리나 스캔들이 없었다. 퇴임까지도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임기 동안 독일 경제는 더 탄탄해졌다. 독일은 명실상부 유럽연합(EU) 수장으로 올랐다. 그리스 경제위기, 시리아 난민 사태, 브렉시트와 같은 국면에서 중심을 다잡는 리더였다.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포브스〉가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는 임기 동안 메르켈을 따라다니던 수식어다.
정치 입문, 그리고 총리가 되기까지
전후 동·서독을 가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해, 메르켈의 삶도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1989년 당시 동독 정당 ‘민주약진’ 가입, 그리고 이후 독일이 다시 하나가 된 이듬해 이 정당의 기독교민주당(CDU)과의 통합이 정치인 메르켈의 출발선이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은 로타 드 매지에르가 이끄는 동독의 처음이자 마지막 민주 과도 정권에서 부대변인을 맡으며 경제, 화폐 및 사회통합협약 등 독일 통일과 관련된 주요 결정 사항들을 지근거리에서 체험했다.
1990년 10월 3일 통일이 된 후 같은 해 12월 치러진 통일독일의 첫 총선에서 멕클렌부르크-포어폼메른주의 뤼겐에서 출마해 당선됐으며, 메르켈은 2021년 마지막 총선까지 이곳을 지역구로 유지했다.
출발부터 남달랐다. 통일 독일의 첫 내각에서 만 36세의 나이로 여성청소년부 장관을 맡았다.메르켈의 뒤에는 자신을 낙점하고 전폭 후원한 CDU 당수 헬무트 콜 총리가 있었다. 메르켈에게 한동안 ‘콜의 양녀(養女)’라는 별칭이 따랐던 이유다.
메르켈의 길은 탄탄대로였다. 1991년 기민당 부대표에 오른 데 이어 1993년에는 정치적 고향인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 기민당 대표 자리를 거머쥐었다.
1994∼98년 환경부 장관 경험은 그를 더욱 정치적으로 단련시켰다. 1995년 베를린 세계기후변화회의 총회 의장을 맡아 다음 회의 때까지 감축 목표를 정하자는 합의를 도출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161개 참가국의 백가쟁명식 의견이 판치는 회의에서 ‘베를린 합의’가 나오리라고 상상한 이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1998년 헬무트 콜이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이끄는 사민당(SPD)이 정권을 잡자 메르켈의 승승장구도 끝이 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메르켈은 볼프강 쇼이블레가 이끄는 기민당의 새로운 사무총장으로 선출됐으며, 주요 선거들을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1999년에 있었던 유럽 의회 총선에서 48.7%의 매우 높은 득표율로 승리했다.
같은 해 기민당에서 기부금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쇼이블레 총재가 물러나자 그 이듬해인 2000년 4월 10일 메르켈은 기민당 총재가 됐으며, 2002년에는 원내대표까지 겸하게 됐다.
당수에 오르기 직전, 1999년 12월 당시 메르켈 CDU 사무총장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 기고문을 통해 ‘CDU는 콜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콜과 결별하고 민심을 얻었다. 당내에 만연한 콜에 대한 온정주의와 미련을 떨쳐내는 결정적 계기였다.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연방 총리는 낡은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하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한 후 총선을 앞당겨 실시하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2005년 총선은 당초 기민당의 압승이 예상되었지만, 토론회에서 사민당 소속 현직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메르켈에게 토론회에서 판정승을 거둔데다가, 선거 막판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면서도 정작 기업에 대한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공약이 논란이 되어 중산층 이하 시민들의 지지율을 깎아먹었다.
총선 결과 CDU/CSU이 제1당이 되었지만 연정파트너 자유민주당(제3당)과 합쳐도 과반을 넘기지 못했고, 사민당(제2당) 역시 연정파트너인 녹색당(제5당)과 합해도 절반을 넘기지 못하는, 애매한 결과가 나왔다
결국 슈뢰더와 사민당은 기민당과 대연정을 구성하기로 합의했고, 슈뢰더는 앙겔라 메르켈에게 총리직을 넘겨주고 퇴임하였다.
2005년 11월 22일 메르켈은 독일의 첫 여성 연방 총리로 취임했다. 이로써 메르켈 총리는 권력의 정점에 도달했으며, 언론들은 메르켈을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여성’이라고 칭했다.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2차 대전 종전 이후를 뜻하는 전후 세대 첫 총리였다.
1329호 29면, 2023년 9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