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 61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니”

‘사단법인 해로’에서는 지난 추석에 ‘해로’가 위치한 베를린 지역에 살고 계시는 고령의 환자와 장애인 등 어려운 분들에게 추석 음식을 도시락으로 만들어 대접하는 봉사를 하였다. 나눔의 대상자가 50여 명밖에 안 되는 소규모 봉사였지만, 작은 봉사단체인 ‘해로’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다소 벅찬 봉사였다. 이 봉사는 6개월 전부터 기획하고 준비한 봉사였다.

작년에 이어 지난 2월 설날에, 대사관 주관으로,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령의 어르신들을 위한 도시락 나눔 봉사를 하였는데, 이때 대사관에서 맛있는 도시락을 준비해 주셨고, 대상자 파악과 연락 및 배달 등의 실무적인 준비와 나눔 봉사에는 ‘해로’의 봉사자들이 많은 수고를 하였다.

이런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추석에는 ‘해로’에서 섬기고 있는 환자와 힘든 고령의 어르신들을 섬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사후 평가가 있었다.

사전 회의를 통해 반찬의 종류와 업무별 담당자를 정하고 역할을 나누었다. 추석 당일에 맛있는 명절 음식을 대접해 드리려는 목적과 봉사자들의 조리 환경을 생각하여, 도시락 봉사 대상자를 50명으로 정하였다. 소요되는 모든 비용은 ‘해로’에서 부담하기로 하였는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해로’의 넉넉지 않은 재정을 아시고 도움의 길을 열어주셨다. ‘재외동포재단’에서 받은 사업예산을 고령의 어르신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도시락 봉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어서 재정적인 어려움 없이 어르신들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다고 하였다. 당장에는 사람이나 재정이 없어도, 선한 뜻이 있는 곳에는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이 항상 함께하는 것을 많이 경험하였다. 돈이나 사람이 없어서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과 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있을 때, 거기에는 사람도 돈도 모두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고 믿는다.

추석 당일 아침 일찍 ‘해로’ 사무실에 봉사자들이 모였다. 점심식사로 베를린 전역에 도시락을 배달하려면, 10시에는 출발해야 하기에 모두의 몸과 마음이 매우 분주했다. 반찬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며칠 전부터 재료를 준비하였고, 전날에는 하루종일 음식을 준비하느라 쉬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노동은 힘들지만, 자원해서 하는 섬김은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기쁘고 즐겁다.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해도, 배식에 실패한 장수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말을 서로 하면서, 맡은 반찬을 도시락에 차질없이 배분해야 한다는 마음에 봉사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마저 돌았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손놀림은 마냥 즐거워 보였다. 놀랍게도 풍성한 반찬으로 채워진 50개의 도시락에 모자라는 반찬이 없이 배식에 모두 성공하였다.

조금 여유가 있었던 김치와 밥으로 아침 일찍 나오느라 식사를 못 한 봉사자들이 김치만 먹어도 맛있다고 하면서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까지 있었다.

10명의 봉사자가 4개 팀으로 나누어 도시락을 배달하였다. 대상자를 선정하고 일일이 전화를 드려서 방문시간 약속을 잡는 일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매우 힘든 과정이다. 여러 번 통화를 시도해야 하는 수고로운 일이다. 어르신들 형편상 귀가 어두워 전화 소리를 잘 듣지 못하시는 분도 있고, 전화를 받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도 힘든 분들도 계신다. 전화번호가 바뀌신 분도 있고, 작년과 올해 설날에 방문했던 어르신들 중에 몇몇 분은 하늘나라에 가신 분들도 계셔서 봉사자들에게 안타까움을 더해 주었다. 이번 추석에 도시락을 받으신 분들을 내년 설에도 꼭 뵙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날 도시락 봉사에서, ‘해로’의 봉지은 대표는 차량 봉사자 한 명과 함께 치매를 앓고 계신 L 이모님을 방문하여 특별한 점심식사를 하였다. L 이모님과 식사를 함께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날은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 명절이고, 특별히 어르신들을 위해서 ‘해로’에서 준비한 명절 음식으로 만든 맛있는 추석 음식을 함께 나누었기에 특별한 식사가 되었다.

치매를 앓고 계신 어르신은 평소에도 혼자서 식사를 잘 못 하시기에, 도시락 봉사의 마지막 방문지로 정하여 어르신과 함께 도시락을 펼치고 국을 따끈하게 데워서 식사를 하였다.

어르신은 치매 때문에 같은 말씀과 질문을 10여 차례씩 반복하셨지만, 부모님을 찾아온 것과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계속 반복되는 질문에도 처음 듣는 것처럼 똑같이 대답해 드리며 맛있게 식사를 하였다. 동행한 봉사자는 환자를 섬긴다는 것이 매우 힘들지만 참으로 의미가 있는 중요한 봉사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독일에 이런 어려움을 겪고 계신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어서 그에 대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분들 대부분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파독 1세대 근로자들로 가장 고생을 많이 하신 분들인데, 이제 이국땅에서 병과 싸우며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요즘 ‘해로’의 긴급한 관심 사항은 치매 어르신과 혼자서는 생활하기 어려운 분들을 섬길 수 있는 그룹홈을 만드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어르신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주거시설이다.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하며 찾아보고 있지만, 우리 어르신들이 들어가서 살기에 적당한 집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분들을 돌보기 위한 시니어 그룹홈이 생겨나도록 함께 손 모아 기도해 주시기를 바란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태 18:20)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284호 17면, 2022년 9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