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76회: “나이 드는 내가 좋다!”

나이 듦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우리 어르신들도 모두 시간이 가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보게 된다. 여러분은 어떤가? 다시 스무 살의 나이로 돌아가고 싶은가? 저는 단언하건대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오직 “지금”이 나에게 주어진 최고의 시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 시간에도 나름대로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안다면, 나이 드는 일을 단지 쇠약해지는 과정으로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또 화려한 날들은 다 끝났다고 아쉬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나이가 든 사람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수는 추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이 든 사람들을 중요하게 쓰시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이삭이 태어났을 때 아브라함은 백 살이었고, 사라는 아흔 살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켰을 때 모세는 여든 살이었다. 스가랴와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낳았을 때 ‘두 사람의 나이가 많았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나이 듦을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잘못되어 가고 있다. 의학의 발달이 우리가 이 땅에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고, 많은 사람이 젊음과 건강을 우상화하면서 수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려고 집착하며 살고 있다. 이는 시간을 재는 잣대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시간의 ‘깊이’라는 것을 잊고 살기 때문이다.

시간을 “깊이 있게”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땅에서 최고의 삶인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족에서부터 주변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까지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이것은 노년이 되어도 시들지 않고 얼마든지 지속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 몸으로 봉사할 수 없을 때는 “기도”와 작은 것을 나누는 “마음”으로도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떻게 나이 드느냐’를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해로에서는 파독 1세대 어르신들이 몸의 기운이 쇠약해지고 점점 인지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어르신들을 잘 섬길 수 있을까 지혜를 모으고 있다. 노래교실, 기타교실, 베를린 산책 등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작은 활동이라도 지속하며 일상의 삶을 의미 있게 해드리려고 애쓰고 있다.

3대가 함께 하는 존탁스카페

올해는 카톡과 핸드폰 사용 강좌를 통해 남자 어르신들을 위한 모임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만남과 모이기를 주저하는 분들이 많다. 새로운 만남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고, 나만의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제 우리 어르신들은 나이 들어감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나이 듦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노년이 오히려 더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젊어서 성공한 인생을 살아온 분들도 노년이 되면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아픔, 고통, 외로움을 겪을까 봐 미리 겁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 드는 일 때문에 절망과 비관으로 살 필요는 없다. 건강이 약해지고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당당하게 나이 듦에 직면하고, 고상하게 미소 지으며 노년을 맞이해야 한다.

노년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다른 모습의 삶이지만, 마음만큼은 20대에 독일로 건너올 때와 같이 도전하는 마음으로 어깨를 펴고 “나는 나이 드는 내가 좋다!”하고 외치며 새로움에 도전해보자. 그러면 분명히 노년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년의 시간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나이에 맞는 새로운 의미와 목적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예전에는 많이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한다”, “고맙다”, “행복하다”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아보자. 그러면 매일의 삶이 더욱 행복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지난주에, 필자가 2년 전에 독일에 오기 전까지 30년 동안 모셨던, 장모님께서 별세하셨다. 장모님은 향년이 101세로 장수하셨다. 위독하시다는 소식에 급히 한국에 들어가서 마지막 나흘을 함께 보냈다. 코로나 이후 요양병원에서는 2주에 한 번밖에 면회가 안 된다고 하여, 자녀들이 대소변을 받아내는 수고를 해야 했지만,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을 우리 집에서 함께 보내기로 하였다.

다행히 마지막 이틀 동안은 맑은 정신으로 모든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 말씀으로 “고맙다. 사랑한다. 너희들 덕분에 행복했다. 천국에서 다 함께 같이 살자!”는 말씀을 남기셨다. 이 마지막 말씀은 지난 수년간 자녀들에게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기도 했다. 그로 인해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었다.

자녀들은 기저귀 가는 일들을 직접 하면서 수고로움보다 오히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정이 더욱 깊어짐을 깨달았고, 받은 사랑의 만분의 일도 안 되지만 어머니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 시간으로 인해 형제간의 우애와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새롭게 발견하였고 마음 깊이 간직할 수 있었다.

젊은이든 100세 노인이든 모든 연령층이 우리에게 모두 소중하고 꼭 필요한 분들이다. 특별히 어른들이 우리와 함께 있을 때, 우리 공동체가 더 풍성해지고 온전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 우리 어르신들도 “나이 드는 내가 좋다!”라고 하시며 행복하게 사시기를 소망한다.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욥 12:12)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14호 16면, 2023년 5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