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연재] 해로 – 95회: “흔들리며 피는 꽃”

우리나라는 입춘이 되면 봄이 시작된다고 하였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지만, 독일에도 봄이 시작되었다. 독일에 와서 늘 반가운 것은 봄꽃이다. 마트와 꽃집에서 파는 화려하고 예쁜 꽃도 좋지만, 긴 겨울을 견디느라 수고했다고 웃어주듯 풀밭에서 살며시 얼굴을 내미는 설강화, 크로커스, 수선화와 같은 야생의 봄꽃들이 너무 아름답고 반갑다. 이들 작은 꽃이 꽁꽁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얼굴을 내미는 것을 보면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 꽃들은 마치 우리에게 ‘힘을 내서 또 한 해를 열심히 살아보자!’하고 격려하는 것 같아서 참 좋다.

이들은 꽃을 피우기 위해 모진 추위의 겨울을 견뎠고, 새싹을 내밀고 자라면서는 몸을 가눌 수 없는 강한 바람을 수도 없이 견디며, 결국에는 꽃을 피우고야 만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라고 우리 인생을 노래했다.

길가의 풀밭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봄꽃들은 아무도 보살펴 주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않고 투정도 부리지 않는다. 조용히 버티면서 온 에너지를 쏟아 꽃을 피우고 마침내는 조용히 지는 꽃들에게서 인생을 배운다.

하지만 모든 꽃과 풀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다. 나훈아의 노래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와 같은 삶도 많다. 우리가 밟고 지나가는 줄도 모르는 발밑의 잡초도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름 하나의 작은 꽃이다.

어느 시인은 우리 민족을 잡초에 비유하기도 했다. 우리는 아무리 밟히고 짓이겨져도 어느새 상처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 고개를 드는 잡초와 같은 강인함을 지닌 민족이다. 일제의 압제와 전쟁의 상흔을 딛고 일어나, 폐허가 된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고, 원조받던 나라를 원조하는 나라로 만든 유일한 민족이다. 우리는 스스로 더 많은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

우리 파독 근로자들의 삶도 이국땅에서 흔들리는 꽃과 같이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 아무도 걸어가 보지 않은 길을 개척자의 강인한 책임감으로 모진 어려움을 견디며 살아오셨다. 동양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작은 체구의 근로자들이 독일 사람들의 눈총을 견디며 마치 잡초와 같이 좁은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밟히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났고, 그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악조건을 견디며 특별한 삶을 살아오셨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부강해졌고 국민은 잘살게 되었지만, 자신들은 몸이 부서지고 마음은 상처가 나는 줄도 모르고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한국의 가족을 위해 자기의 소득 대부분을 보냈지만, 지금은 정부의 생계비 보조를 받거나, 작은 연금으로 생활하는 분들도 많은 게 현실이다.

그렇게 살다가 노인이 된 지금은 여러 가지 질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많다.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베를린 인근의 파독 어르신들을 살펴보면 대한민국의 일반 노인들보다 더 많은 암과 치매 등의 중증 환자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특별한 환경을 살아오신 파독 근로자들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최근에 해로의 돌봄을 받다가 돌아가신 A 이모님을 생각하면서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파독 간호사로 오셔서 몸이 부서질 정도로 일해서 자기의 사업도 일구고, 많은 이들을 도우며 욕심 없이 살아오셨지만, 노년에 병을 얻어 힘들게 지내시는 동안 사업과 가족 모두 돌보지 못하였고, 마지막에는 병원에서 어렵게 지내시다가 돌아가셨다. 다행히 해로의 봉사자들이 마지막까지 힘껏 함께 섬겼고, 출석하던 교회의 교우들도 찾아와 외로울 때 힘과 위로가 되어 주어서, 믿음으로 죽음을 담대하게 준비하며 삶을 멋지게 마무리하셨다.

조금 더 자신을 위해 자기의 것을 더 챙기며 지혜롭게 살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어쩌면 그렇게 살아온 삶이 이모님에게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완벽한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비록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는 질병과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두고 가셨지만, 그분이 살아온 삶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얻는다.

화려하게 꽃피우고 향기를 내다가 지는 꽃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기준이 아니라 이 땅에 우리를 보내신 분의 관점에서 보면, 한 분 한 분의 삶이 모두 의미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모나 결과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름 없는 들풀과 같은 인생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하나같이 모두가 귀하다.

하나님은 엄마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아픈 손가락 같은 사람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마음을 쓰고 돌보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 땅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이사 갈 때, 천국 문에서 반갑게 맞아주실 것이다. 그들도 이 땅에서 비바람에 흔들리는 역경을 이기고, 비록 작은 꽃이지만 자기의 꽃을 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도 각자의 이름에 맞는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마태복음 25:23)

박희명 선교사 (호스피스 Seelsorger)

1352호 16면, 2023년 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