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인 아동을 소개합니다

미국 테네시주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22명의 자녀 중, 20번째로 태어난 월마 루돌프(Wilma Glodean Rudolph)는 미숙이로 태어나 병약한 몸 때문에, 4살 때까지 성홍열과 폐렴으로 병을 앓았으나,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치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6살 이 되었을 때, 왼쪽 다리를 쓸 수 없다는 소아마비 판정과 함께 평생 걷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선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월마를 낳은 엄마였습니다. 엄마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이웃 농장에서 일을 하고, 오후에는 딸을 데리고, 80Km 떨어진 병원을 찾아 갔습니다. 월마의 형제들도 달려들어 모두 월마의 다리를 마사지 해주는 등, 가족들이 헌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월마가 8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보조화를 신고 목발을 집고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월마는 엄마와 함께 근처의 공원에 나가 한 걸음씩 걷기 연습을 시작 했습니다. 두 세 걸음도 걷지 못하고 쓰러져서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딸에게, < 너는 할 수 있어, 지금 포기하면 영원히 걷지 못해, 일어나!> 다시 일어나 한 두 발자욱 걷다가 다시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 쓰러졌습니다. 얼굴과 옷이 먼지와 눈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이를 악물고 걸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월마는 희망을 잃지 않고 걷는 연습을 했고, 바구니에 농구공을 던지며 놀았습니다. 월마는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점점 강한 <끈기와 집중력>이라는 < 특별한 힘>을 가진 소녀로 자랐습니다. 11살 때, 마침내 보조화를 풀고 목발 없이 서게 된 그녀를 본 어머니는 한없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딸을 껴안아 주었습니다.

월마는 걷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농구선수인 큰 언니에게서 농구를 배워 중학교 때부터 농구선수로 활약하는 기적을 이루어 내더니, 고등학교 시절에는 주선수가 되어, 테네시 주에서 우승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이때, 월마를 눈여겨 본 테네시 주립대학교 육상코치 에드워드 템풀은 월마에게 육상을 해보라고 권유하고, 1년 동안, 온 힘을 다하여 월마에게 육상의 모든 것을 전수 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16세 때 여고생인 월마는 미국 육상대표 선수 자격으로 멜버른 올림픽 400m 릴레이에 출전했습니다. 당시 미국대표팀 중 최연소 선수였든 루돌프는 400m 계주에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그러나 루돌프가 자신의 이름을 역사책에 새긴 것은 4년 후인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였습니다. 최초로 TV 중계가 이루어진 로마 올림픽에서 루돌프는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기적을 창출해 냅니다.

100m 준결승전에서 루돌프는 11초3을 기록하며 세계 기록과 타이를 이루자 미국은 환호했고, 세계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결승이 시작되었는데, 루돌프는 11초를 기록하며 기적처럼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됩니다. 3일 후, 루돌프는 200m에서 공식 세계 신기록으로 또 하나의 금메달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루돌프에게 가장 중요한 경기는 1960년 9월 8일에 열린 400m 계주 결선이었습니다. 미국 대표 팀이 로마의 무더위 (43C)를 뚫고 금메달을 따 줄 것이란 사람들의 기대는 엄청 났습니다. 경주 도중에 루돌프는 바통을 거의 떨어뜨릴 뻔 했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독일대표팀을 아슬아슬하게 제처내고, 미국 여자선수 최초로 한 번의 올림픽에서 3개의 육상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가 되었습니다. 인종갈등이 있던 시대였지만, 루돌프의 고향인 클락스빌에서는 그녀를 위한 카퍼레이드를 열었습니다.

루돌프는 미국의 가장 뛰어난 아마추어 선수에게 수여하는 설리반 상을 받았으며, 1960년과 1961년 연속,세계 최우수 여자 선수로 선정 되면서 미국 전역을 휩쓴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월마 루돌프의 이름이 후세에 길이 남게 될 사건은 이것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월마 루돌프는 한참 잘 나가던 22세에 모든 선수 생활을 끝냅니다. 그리고 <월마 루돌프 재단을 설립해 가난한 이들을 돕고, 청소년 육상경기대회를 지원합니다. 루돌프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은 3개의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빈민촌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준 헌신이었습니다. 그녀가 1994년, 뇌종양으로 숨을 거뒀을 때, 루돌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고향 마을에 있는 79번 국도를 <월마 루돌프 가로수 길>이라고 부르기 시작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불행하게 태어나 절망으로 꺼져 버렸어야 할 인생의 불씨를 다시 활활 타오르도록 살려내고, 자신의 인생을 폭풍처럼 질주하며 살다간 월마 루돌프의 인생 승리의 비결은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요?

그것은 첫 번째로, 온 가족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으로 똘똘 뭉쳐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십자가 앞에 모든 짐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물해 주실 기적을 의심하지 않고 믿고 기대하며,> 바라는 그 꿈이 실제로 22명의 형제자매 중, 20번째인 월마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어머니의 자식을 향한 사랑과, 하나님은 월마를 반드시 크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 희망 속의 확신> 이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모든 가족의 기대와 사랑, 그리고 엄마가 자신을 위하여 흘리는 땀과 눈물에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루돌프의 강인한 의지> 였습니다.

월마 루돌프의 감동적인 삶은 <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뭉쳐진 가정과 그 구성원들은 반드시 절망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음을 나타낸 증거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절망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월마 루돌프의 기적이 오늘 교민 여러분의 가정에도 일어날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김아인 아동은 첫 돌 전후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생활하던 중, 2018년 8월, 어머니가 미혼모 상태에서 출산한 다른 가정에서 지금까지 성장해 오든 아버지가 다른 6세 언니가 아동의 가정에 합류하면서, 어머니는 두 명의 자녀를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자립이 되지 않아, 2019년 11월 부터 시설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김아인 아동은 2023년 현재 일곱살이고, 장애 전담 어린이 집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인 아동은 심리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대근육, 소근육, 그리고 인지 발달 지연을 보이고 있어, 놀이, 운동재활, 감각재활 등에 대한 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인 아동은 현재 3세 수준 정도의 기능을 나타내다가 퇴행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별 수준에 맟추어 수업이 진행되는 곳에 다니며, 주 1회 외부에서 심리 상담도 받으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교민 여러분, 너무나도 가녀린 아인 아동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나누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 드립니다. 여러분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 해 철 선교사 드림.

1332호 34면, 2023년 9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