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가장 훌륭한 의사이자 위대한 인간이었던 故백승은 박사님의 죽음을 추모하며

* 1936년 6월 2일 서울 출생
+ 2021년 11월 1일 Südtirol 사망

故백승은 박사님은 1936년 6월 2일 서울 명문 가문의 막내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 졸업 후 1955년 연세대 의대에 진학하였습니다. 재학 중 뛰어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아 해외 유학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이때 미국의 예일대 대신 독일 마인츠의 J. Guttenberg 대학에 1958년 입학하게 된 것이 독일과의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박사님은 동 대학에서 1966년 국가시험을 합격하고 68년에는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이후 수련의 과정을 밟던 1970년 박사님의 인생을 또 한 번 바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학병원 심장외과였던 뮌헨 Nußbaumstraße 클리닉에서 전공 수련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 병원의 책임자였던 Prof. Dr. Rudolf Zenker는 1958년 독일 최초로 HLM(심폐기계)에 의한 심장 수술을 성공한 최고 권위자였으며, 당시 Nußbaumstraße 분원은 독일 남부 최초로 자체 수술실과 특수 집중 치료실을 갖춘 심장 수술 특수 부서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쉽지 않았기에 정규 근무 시간이 따로 없을 정도로 바빴던 이 격동의 시기의 뮌헨에 백 박사님이 합류하게 된 것은 이후 그가 독일 심장외과학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에른 주는 독일 최초의 심장 수술 전문 센터를 뮌헨에 설립하게 되고Nußbaumstraße 팀은 그 주축이 됩니다. 심장외과 학계의 또 하나의 대가인 Prof. Dr. Fritz Sebening과 백승은 박사님은 그 핵심 멤버라 할 수 있었습니다. 뮌헨 Herzzentrum은 1974년 4월 개원 이후 모든 연령대의 심장병 환자의 메카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스텐트 치료가 도입되기는 10년도 더 전이었고, 심장 판막 결함과 관상동맥 심장 질환, 심장마비 등의 수많은 응급환자가 이 곳을 거쳐갔습니다. 박사님은 특유의 섬세한 손재주를 앞세워 특히 아동의 선천성 심장 결함, 선천성 대동맥 협착증 치료에 큰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중증 질환을 지닌 미숙아(약 2500g)의 치료를 위해 개발된 심부체온요법(환자를 18°C로 냉각하여 치료)은 오롯이 백 박사님의 집념과 도전으로 이루어낸 성과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박사님과 동료들은 1981년 5월 독일 최초의 심장 이식 수술을 성공해냅니다.

당시 동료였던 Prof. Dr. Meisner는 故백승은 박사님을 “뛰어난 전문 지식과 고도의 집중력, 초인적 체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환자에게 인간적인 공감을 할 줄 아는 의사”였다라고 평가합니다. 한국문화로 말미암은 겸손한 태도와 자기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삶의 자세는 분명 독일에는 없는 것이었고, 이는 병원 모든 구성원에게 큰 귀감이 되어 1970-80년대 뮌헨 Herzzentrum이 보다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숨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독일에서도 심장 수술 분야가 성인과 소아 영역으로 분리되어 전문화되었기 때문에 두 영역을 모두 마스터한 의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생전 백 박사님이 본인과 동료들을 “오래된 공룡”이라고 지칭한 것은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심장외과학을 연마했던 최초이자 마지막 세대로서 자부심을 나타내는 표현이었습니다.

1990년대 은퇴하기 전까지 백 박사님은 30년간 독일 심장외과의 모든 역사적 순간에 함께 한 유일무이한 한국인이었습니다. 이는 독일 뿐 아니라 전세계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조용한 전원에서 유유자적하신 데다가 워낙 청렴하셨던 성정 탓에 박사님의 위대한 업적이 교포 사회를 비롯하여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 낯선 땅으로 건너와 정신 및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수많은 사람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기까지 백 박사님의 삶은 모든 순간 충만했고 지혜와 배려로 가득하였습니다. 비록 육신은 이제 자연으로 온전히 돌아가지만, 생전 당신께서 베풀었던 위대한 호혜와 사랑은 남겨진 이들에 각인되어 영원히 박동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웠던 고향과 가족의 품에서 더이상 고독하지 않은 영원히 행복한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세기 가장 훌륭한 의사이자 위대한 인간이었던 故백승은 박사님의 죽음을 추모하며

前 한양대 법과대학 교수 김영환 씀

1249호 17면, 2022년 1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