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25사변이 일어났을 때, 저는 경상남도 마산 성호국민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53년 휴전이 되고 남과 북 사이에 삼팔선이 생겼습니다.
우리 가족은 마산에서 전라북도 전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고, 저는 전주 풍남국민학교 3학년 2반으로 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16세가 되던 시절, 저는 전주를 떠나서 전라남도 광주로 가서 가까스로 일자리를 얻어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스무살이 될 무렵, 광주시 양림동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수 년을 그곳에 살면서 느낀 것은, 양림동 일대가 온통 선교사, 장로, 목사 같은 직업을 가진 분들이 과거에도 많이 살았고, 그때도 많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나의 막내동생은 여섯 살이었는데 바로 우리와 이웃하고 살았던 목사 가정의 자녀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면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우리 4남매 중 제일 먼저 목사가 되었습니다. 전라남도 광주는 도청소재지였고, 지금은 직할시가 되어 130만명이 넘는 대 도시가 되었지만, 광주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작은 마을에 불과 했습니다. 원래 나주와 목포는 큰 도시였고, 광주 인구는 겨우 7천명에 불과하였습니다.
광주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선교사들이 와서 병원과 학교를 세우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전라도>란 이름은 원래 전주와 나주를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었습니다. 당시 나주는 10만 명이 넘게 살았던 큰 도시였고, 광주는 아주 작았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와서 광주를 선교의 베이스캠프로 삼기 시작하면서 부터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광주기독병원의(R.M. WILSON선교사. 한국명 우 월순)는1920년대에 광주에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말을 타고 지나다가 길가에 쓰러진 나환자를 발견하고 자기 말에 태워, 병원에서 극진히 치료해 주니, 금방 일대의 나환자들 600명이 몰려왔습니다. 그러자 광주 시민들이 도시전체가 나환자촌이 되겠다고 항의하자 옮겨간 곳이 지금의 여수 소록도 애양원입니다. 한국은 이렇게 외국 선교사들에게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3대 원장은 부란도(L.C.Brand)선교사인데, 그 당시 한국은 6.25를 전후하여 폐결핵 환자가 넘쳐났습니다. 그는 수백 명의 폐결핵 환자들을 정성껏 치료해 주었습니다. 결핵환자가 각혈이 올라와 기도를 막으면 매우 위험한 상태가 됩니다. Brand 선교사는 그 더러운 목구멍의 각혈을 일일이 다 제거해 주는 성자 같은 분이였습니다. 그런 연유로 전라남도 광주는 선교사들을 대단히 존경하는 전통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명문 가정 자녀로 태어나 미국에서도 존경받는 전도 유망한 의사, 목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성공과 출세를 모두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겠다고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와서 일생을 한알의 밀알로 조선에서 희생했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왔다가 풍토병으로 죽은 선교사님들의 자녀들도 많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사님들의 헌신>으로 복음의 영광을 이루었다면, 우리는 엄청난 복음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과 나에게 생명을 주시면서 까지 헌신하신 것처럼,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의 뼈까지 조선 땅에 묻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 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외국 선교사님들의 사랑과 은혜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욕 타임스>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교회 안다니고 술집 다니는 사람보다 장수한다는 연구 결과를 실었습니다.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에서는 교회 주일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7년 이상 장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요 주인으로 믿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그의 고귀한 피로> 나의 죄를 깨끗이 씻겨주셨다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의 믿음의 확신때문에> 훨씬 건강하게 더 오래 산다는 통계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예수님을 절대신뢰>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인생의 축복을 받았다고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해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오은영 아동은 인천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동은 여러차례 아동학대로 신고 된 이력이 있으나, 엄마가 아동 보호전문기관의 개입을 거부하며 양육법 개선을 위한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주민들의 아동 학대에 대한 신고는 계속 되었습니다. 자식을 반복적으로 위험에 노출시키고, 안전한 보호를 소홀히 하는 등, 방임 학대를 하였고, 가정 내 아동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보호자가 없는 상태로 인하여 친모와 분리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에도 친모에게서 아동양육과 관련한 구체적 의사를 확인할 수 없고, 장기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장기아동양육시설로 입소하게 된 것입니다.
은영 아동은 2023년 8세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한글 습득은 물론, 영어 단어 읽기와 한자까지 잘 기억해 내는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학교생활도 잘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고 있습니다. 매사에 호기심이 많고, 영리하여 장래가 크게 기대되는 아동입니다.
교민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는 은영 아동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교민 여러분의 소식을 기다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박 해 철 선교사 드림.
1304호 34면, 2023년 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