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소녀상 지키기 24시간 항의집회, 추위 속 따뜻한 연대의 밤

정선경(한독문화예술교류협회 대표 및 만화협 베를린 상임의장)

11월 1일 0시부터 베를린 소녀상 지키기를 위한 24시간 항의집회가 시작되었다. 베를린 미테구청은 소녀상을 10월 31일까지 철거하라는 명령과 함께 불이행 시 3천 유로의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코리아협의회는 행정법원에 철거명령 효력정지를 위한 가처분신청을 냈고,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소녀상이 당장 철거될 염려는 없지만, 철거 기한을 넘긴 11월1일 24시간 동안 상징적인 항의로 소녀상지키기 집회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번 집회는 자정부터 시작해 두 시간씩 교대로 이루어졌다. 나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소녀상 옆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원래는 두 사람씩 두 시간씩으로 지키는 예정이었지만 매 시간마다 소녀상과 함께 하기 위해 찾아와서 같이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베를린의 늦가을 날씨는 점점 추워졌지만, 그 추위 속에서도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모인 이들의 따뜻한 연대는 훈훈하게 느껴졌다.

한마음으로 모인 사람들

직접 집회에 참여하고 응원하고자 먼 곳에서부터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라이프치히에서 온 두 여대생을 비롯해 멀리서 일부러 들렀다는 시민들도 있었고, 미테구 구청장과 같은 녹색당 소속의 정치인도 찾아와 연대의 뜻을 표했다. 소녀상 지킴이들을 위해 쿠헨과 과자를 가져다주며 추위를 녹여주는 사람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한 젊은 독일 남성은 다른 동네에서 일부러 찾아와 “4년 전 소녀상이 처음 세워졌을 해, 장다멘마르크트 광장에서 열렸던 “나도 소녀상” 철거 반대 집회에도 참여했었다”며 고생한다며 쿠키 한 묶음을 내밀었다. 나도 반가운 마음에 “그땐 정말 추웠어!”라며 웃으며 당시 영하에 가까운 추운 날씨에도 소녀상 포스터가 붙어있는 의자 옆자리에 앉아 참여자들이 직접 소녀상이 되어 소녀상철거를 반대했던 시위를 같이 떠올리기도 했다.

소녀상 앞을 지나가던 동네 주민들도 상황을 묻고 응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철거반대 서명에도 참여했었다며 철거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걱정과 조언을 건넸다. 소녀상이 내려다 보이는 이웃집에 사는 독일 아저씨 게리는 가로등 하나로 주위가 어두컴컴한 소녀상 앞에 줄조명과 충전기를 가져와 불을 밝혀주었고, 밤늦게 여성들만 남아 있는 것이 위험해 보인다며 밤 11시쯤 다시 와서 한 시간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퇴근 후 잠시 들러 별일 없냐고 물어주는 경찰관도 있었다.

모두 한마음으로 소녀상을 지키고자 하는 데 왜 구청장과 베를린 시장은 철거에 집착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일본과의 관계 때문이라는 것을 모두가 짐작했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의 마음은 오직 연대와 보호에 있었다.

마음을 담은 메시지들

소녀상 앞에는 소녀상을 향한 의견이나 생각, 바램 등 연대의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큰 현수막천이 놓여있었다. 소녀상을 찾거나 발길을 멈춰 지켜보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남길 것을 권유했더니 많은 시민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진심을 담은 메시지를 남겼다.

글씨를 아직 쓸 줄을 모른다는 독일 아이는 글씨대신 소녀상을 그리기도 하고 한국어, 독일어, 영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로된 다양한 글들을 찬찬히 다 읽고 심사숙고하는 듯했던 한 독일남성은 “Ari sind viele”라고 남겼다. 짧은 글이지만 긴 여운을 주는 말이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엄마 손을 잡고 온 한 어린 여자아이의 글이었다. 현 상황에 대해 묻는 엄마에게 내가 설명하는 것을 듣더니 아이는 “내가 구청장이라면…”이라며 머뭇거렸다. 내가 “그럼 어떻게 할 건지 천에 써보면 어떨까”하고 권유하자, 아이는 작은 손으로 “내가 구청장이 된다면 아리(소녀상)가 있게 하겠다”라고 적었다.

추위 속에서도 이어지는 연대의 온기

나는 원래는 두 시간동안 소녀상지키기를 함께하기로 했지만,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네 시간이 흘렀다. 어두워지며 추위가 더욱 매서워졌고, 조금씩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간이천막을 치겠다는 얘기를 듣고 다음 두 시간을 지키고자 온 네 명의 젊은 친구들과 수고하라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차에 앉아 시트 히터를 켜자 비로소 얼었던 몸과 허리가 풀리는 듯했다.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모인 이들의 마음은 추위 속에서도 결코 식지 않았고, 모두의 간절한 마음이 이곳 소녀상을 지켜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처럼 미테구와 베를린 시장이 소녀상 철거를 고집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느껴지는 연대의 온기와 목소리는 하나같이 “소녀상은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1386호 17면, 2024년 1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