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

그림 속의 그리스 신화 이야기(3)

유럽 문화를 관통하고 있는 두 가지 줄기 헬레니즘과 유대이즘, 즉 고대 그리스 신화는 성경과 함께 서양의 문화를 읽어내는 코드이자 일반인들에게 서양문화의 모태를 설명해 주고 있는 교과서라 할 수가 있다.
이렇듯 서양문화의 원류인 그리스 신화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상상의 세계로, 시공을 초월하는 삶의 보편적 진리와 인간의 희로애락을 촘촘하게 엮어나간 대서사시이다.
이는 유럽인의 정신적 바탕을 이루는 서양 문화의 원천으로 문학과 미술, 연극 등 수많은 예술작품의 창작 소재로 사용되어 왔다.
문화이야기에서는 지난해 “제우스의 변신‘이라는 주제로 제우스의 여인들을 묘사한 작품들을 소개한 바 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안티오페>,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 <가니메데스>를 주제로 신화와 함께 이들이 후대 미술작품에는 어떻게 나타나는 지를 살펴본다.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의 비극적인 사랑

케팔로스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서, 포키스의 왕 데이온과 디오메데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나 헤르메스나 헤르세, 또는 판디온의 자식이라고도 전해진다.

케팔로스가 애처 프로크리스와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어느 날 휘메토스 산으로 사냥을 나갔는데,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그의 모습을 보자 대뜸 반하여 그를 시리아로 납치해 갔다. 에오스는 있는 사랑의 기교를 다했으나 케팔로스는 도무지 응하지 않고 자기 애처 프로크리스만 그리워하였다. 화가 난 에오스 여신은 그에게 아내의 절개를 의심케 하여 프로크리스의 정절을 한 번 테스트해 보고자 했다.

그 말을 듣고 의심에 사로잡힌 케팔로스는 변장을 하고 프로크리스를 찾아가 값진 보석을 내보이면서 그녀를 유혹하였다.

처음엔 까딱도 하지 않던 프로크리스도 결국엔 굴복하고 몸을 허락하였다. 그제야 케팔로스는 자기 정체를 밝히고 아내를 쫓아 버렸다. 프로크리스는 상한 가슴을 안고 에웁보에야 섬으로 물러가 아르테미스 여신의 보호를 받기로 했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그녀에게 사냥개 한 마리와 백발백중의 창을 하나 주고 변장을 시켜 케팔로스에게 돌려보냈다. 케팔로스는 그 개와 창이 탐이 나 여자의 유혹에 지고 말았다. 결국 이번엔 남편이 같은 실수를 한 셈. 둘은 화해를 했다.

그래도 프로크리스는 남편이 다시 바람을 피울까봐 마음이 안 놓여 늘 사냥 나간 남편의 뒤를 밟았다. 그런 줄 모르는 남편은 어느 날 숲속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짐승이 숨어 있는 줄로 알고 창을 던졌다. 그 창에 맞아 죽은 것은 짐승이 아니고 사랑하는 아내 프로크리스였다. 케팔로스는 프로크리스의 죽음을 한탄하여 절망 끝에 레우카스곶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말았다.

코시모의 프로크리스의 죽음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연금술은 과학의 총아였고, 모든 이의 소망이었다. 마이센 도자기를 탄생시킨 작센의 선제후 아우구스투스도 최초에는 금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에 심취하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지금은 연금술사 하면 마법사를 연상하지만 근대까지 과학자나 기술자로 여겼으며 과학자 뉴턴도 연금술의 마지막 현자로 인정받았다.

원자 번호 79, 황금색 광택의 금속 금(金)은 시대를 불문하고 이렇듯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부(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금속으로 손꼽히고 있다.

신비한 연금술에 매료돼 기술과 과학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설명하고자 한 작품이 피에로 디 코시모(1461/62-1521)의 ‘프로크로스의 죽음’이다.

코시모의 ‘프로크로스의 죽음’을 살펴보면 빈인반수의 사티로스가 죽어가는 여인의 머리맡에 앉아 눈썹을 쓰다듬으면서 울고 있고 옆에서 개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반인반수의 사티로스는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지만 코시모는 1480년경 사티로스를 비중 있게 다루었던 니콜로 다 코레지오의 극본의 영향으로 새로운 등장인물로 그려 넣은 것이다.

프로크로스가 입고 있는 붉은색과 황금색의 옷은 붉고 뜨거운 현자의 돌을 상징하며 그녀 어깨 뒤로 보이는 나무는 생명의 나무를 상징하는데 이는 현자의 돌에 의해 잉태된 생명을 상징한다.

코시모는 연금술의 상징들을 곳곳에 배치했는데, 케팔로스와 프로크로스를 지켜보는 개와 바닷가 근처에서 흰 개와 검은 개의 싸움을 지켜보는 개는 연금술사 헤르메스(헤르메스 트리메지트는 전설상의 현인으로 창조주에게 지혜를 물려받았다고 한다)를 나타내며 흰 개와 검은 개는 연금술에 의한 화학 작용을 상징한다.

바다에서 개들을 지켜보고 있는 펠리컨은 연금술사들이 사용하는 유리병을 의미한다. 하늘을 날고 있는 목이 긴 새는 유리병에서 실험한 기체를 나타낸다.

피에로 디 코시모(1461/62-1521)의 이 작품에서 배경으로 사용된 단색조의 도시 풍경은 프로크로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을 나타낸다. 코시모는 피렌체에서 살았지만 은둔자로 살았기 때문에 그에게 도시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의 비극적인 사랑은 코시모뿐만이니라 파올로 베로네세, 니콜라스 푸생 등 르네상스시기의 대가들이 즐겨 다루던 주제였다.

1299호 23면, 2023년 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