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7일 베를린 한인이 운영하는 지하 벙커 Artist Homes(대표 김종하)에서 쿠바 한인들의 정신적인 지주, 헤로니모 임을 영화로 만나다.

쿠바 한인들의 정신적인 지주, 헤로니모 임을 영화로 만나다.

자신을 찾는 거룩한 여정 디아스포라

몇년 전 쿠바 여행을 떠난 재미교포 변호사 전후석은 그곳에서 쓰여지고 있는 디아스포라 역사를 듣게 된다. 그를 기억하고 복원해 나가기 위한 운명과도 같은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쩌면 쿠바 디아스포라 역사가 <한인 정체성>과 <디아스포라>라는 주제에 열정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전 후석 변호사에게 찾아 온 건지도 모른다.

“임은조” (Jeronimo Lim).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법대를 다닌 한인 최초 대학입학자로, 쿠바혁명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나중에는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정부에서 고위직을 맡아 서로 함께 일했던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1905년에 멕시코에 노예로 팔려온 “애니깽” 후손 중 하나였다. 1921년 쿠바로 이민한 이후 멕시코와 쿠바 한인들이 품삯을 모금하여 상해 임시 정부 백범 김구 선생께 독립자금을 여러차례 송금한 내용은 백범 일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코.레.아.노.> 한국을 밟아 보지도 못한 쿠바의 3.4세의 입에서 나온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나는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다가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 다큐멘터리는 오히려 이 무게감 있는 질문에 시종 객관성을 유지하며 소개해 나간다. 1세대 이민자들의 삶을 보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내용이 훨씬 많을 텐데 말이다. 눈물샘을 쉽게 자극하는 내용들은 최대한 걸러내며 헤로니모임을 포함한 모든 디아스포라들이 어쩌면 평생을 고민했을 한인 후손으로서의 정체성을 담담하게 하지만 거리감을 유지하며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

디아스포라의 핵심은 고통

디아스포라의 핵심은 고통이다.” 영화에 출연한 한 랍비는 디아스포라를 이렇게 정의한다. 존재의 뿌리를 통째로 뽑아서 낯선 타국 땅에 이식하게 되는그 고통의 경험을 우리는 그렇게 경험해 왔다.

1960년대 생존을 위해 소중한 것들을 한국에 두고 떠나온 <파독일세대> 그리고 조은영 변호사와 같은 2세, 차세대와 3세들까지 우리는 모두 디아스포라들이다. 낯선 외모에 이방의 언어를 구사하며 살아가는 얼굴 위에 쿠바 한인들의 얼굴이 겹쳐서 떠오른다.

아버지의 뜻을 이뤄가는 목적이 있는 삶

헤로니모의 동력은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하고 평등하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초기에는 그게 쿠바인이었고 나중에는 쿠바 내 한인들로 시선이 향하게 된다. 그는 쿠바인이었지만 한국인이었고 또한 인본주의자였다. 1995년 정부 광복 50주년 세계한민족축전에 헤로니모 임은 초청된다. 처음으로 밟은 한국 땅, 아버지의 나라에서 그는 코레아노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후 ‘쿠바의 한인들’이라는 책을 내고 선교사들을 지원해 한국어학교도 세웠다. 또한 숙원 사업인 공식 한인회 설립을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한인의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는 정부의 요청에 헤로니모는 자신의 차를 몰고 쿠바 구석구석을 돌며 한인들을 만났다. 현지 신문에 광고도 냈다. 쿠바 이주 80주년인 2001년에는 마나티, 엘볼로 지역에 조국이 있는 곳을 향한 한인이주 기념비를 세운다.

그의 숙원이었던 한인회 설립은 쿠바 정부의 불허로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헤로니모는 2006년 80세의 나이로 쿠바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파독의 나이테도 이젠 세월을 품고 겹겹이 쌓여 있다. 긴 세월의 뒤안길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영화는 작은 울림을 남긴다.

디아스포라, 당신은 어디에서 오셨고 어디를 향해 가십니까?

기사. 사진 제공: 베를린 사단법인 해로

사진:

1. 전후석 감독과 베를린 상영을 기획한 조은영 변호사

2 2001년 12월 쿠바 , 승용차에 탄 헤로니모 선생과 손자 넬슨 (경향신문 자료사진)

3 영화 상영 후 감독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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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7일, 1154호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