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독일의 전후 문학 (2)–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enmatt)

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은 독일어권의 전후 문학으로, 1, 2차 세계 대전을 치른 독일어권의 문학계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4명의 작가를 선택하여 살펴본다.

작가에 따라, 인간 본연의 모습에 천착하거나, 시대적 모순을 극복하고자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이 중심이 되고, 또는 과거 불행한 시대에 대한 고발 등 다양한 형태로 작품이 나타나고 있으나, 이 모든 근원에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은 뒤 ‘과연 인간의 이성은 진보하며 신뢰할 수 잇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 막스 프리쉬, 뒤렌마트,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를 탄생 연도순으로 연재한다.


–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enmatt)

프리드리히 뒤렌마트(1921∼1990)는 스위스 태생의 독일어권 작가로서 전후 가장 위대한 드라마 작가로 평가된다. 뒤렌마트의 작품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영화화 되는 등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사무엘 베케트나 오이게네 이오네스크와 더불어 현대 속의 고전 작가로 인정받는다.

뒤렌마트는 희비극의 장르를 발전, 정착시켰으며 신과 인간 구원의 문제, 자유와 정의의 문제 등 철학적 테마를 독특한 드라마 기법을 사용해서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실험한 작가다. 뒤렌마트는 자신이 관찰하고 성찰한 것을 그로테스크, 패러독스, 풍자와 아이러니, 유머를 통해 희극화 함으로써 관객의 쓴 웃음과 성찰을 자아내는 데 특별한 기량을 보였다. 그는 어떤 영웅적 결단도 내릴 수 없는 현대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반성 외에는 없다는 신념의 소유자였다. 뒤렌마트는 항상 작품을 통해서 시대의 문제에 정열적으로 반응했고, 시대를 비추는 거울을 받쳐 드는 비평가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다.

뒤렌마트는 매 작품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기발한 착상으로 관객과 독자의 흥미와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였다. 로마를 멸망시키기 위해 집권한 로무르스, 장님만이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장님 공작, 자신이 발견한 과학 원리를 은폐하기 위해 정신 병원에 입원하는 물리학자, 자살을 기도하지만 죽지 못하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결혼에 대해 살인죄의 형량을 내리는 검사, 정의를 돈으로 사겠다는 노부인, 환경 미화원이 되어버린 헤라클레스 등등의 역발상들은 유머와 결합되어 관객이나 독자들의 통념적 사고의 틀을 깬다.

1940년부터 뒤렌마트는 집필 활동을 시작했으나 1947년에야 본격적인 작품 활동의 소산인 드라마 『쓰여져 있느니라(Es steht geschrieben)』를 출간했다. 그 후 『장님(Der Blinde)』(1948),『로무르스 대제Romulus der Grosse』(1949), 범죄 소설 『판관과 형리(Der Richter und sein Henker)』(1951) 『혐의(Der Verdacht)』(1952)를 발표했다. 1952년에는 기독교 신앙의 코메디라고 불리는 『미시시피 씨의 결혼(Die Ehe des Herrn Mississippi』을 발표했다. 그가 독자들의 호응을 받은 작품들은 『로무르스 대제』나 『미시시피 씨의 결혼』과 같은 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 아니라 그의 탐정소설이었다. 경제 사정이 악화되자 쓰기 시작한 탐정소설들은 미국과 영국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으며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했다. 1953년에 『천사, 비빌론에 오다 (Ein Engel kommt nach Babylon)』를 발표한 이후 1956년에 상연된 『노부인의 방문(Der Besuch der alten Dame)』은 뒤렌마트에게 세계적인 성공을 안겨 주었으며 영화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 『프랑크 5세(Frank der Fünfte)』(1959) 이후에 발표된『물리학자들(Die Physiker)』(1962)은 『노부인의 방문』과 더불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어 뒤렌마트에게 세계적인 작가로의 기반을 굳혀 주었다. 이후 뒤렌마트는 브레히트 이후 가장 뛰어난 독일어권 작가로 인정받게 된다.

특히 1970년대에 그의 작품들은 독일어권 국가에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꾸준히 유지했으며 특히 독일에서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르는 작품으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문학계는 뒤렌마트를 현대의 고전작가로, 60세에 신화가 되어버린 존재라고 최고의 찬사를 던졌다.

뒤렌마트의 대표적인 작품 『노부인의 방문』과 『물리학자들』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그의 작품 특성을 살펴보도록 한다.

『노부인의 방문』

어느 날, 가난으로 도시 전체가 저당잡힌 ‘귈렌’에 한 귀부인 ‘클레르 짜하나시안’이 방문한다. 어렸을 적에는 ‘귈렌’의 평범한 소녀에 불과했던 ‘짜하나시안’은 이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재산을 가진 거부가 되었고, ‘귈렌’시민들은 그녀가 ‘귈렌’시를 구원해주기를 간청한다. 그녀는 그들의 간청에 흔쾌히 승낙하며 시와 시민에게 10억마르크를 내놓겠다고 선언한다. 다만, 그녀는 거기에 한 가지 조건을 덧붙인다. 그 조건은 ‘귈렌’의 명망있는 시민 ‘일’을 죽이는 것이었다.

즉, ‘일’을 죽이는 경우에만 10억마르크를 내놓겠다는 것이 그녀의 진의였다. 그러면서 모두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에, ‘일’은 젊은 ‘짜하나시안’의 연인이었지만, 임신한 그녀를 배신하고 ‘귈렌’에서 쫓겨나게 만들어 비참한 시절을 겪게 한 장본인이었다.

‘일’을 죽여달라는 ‘짜하나시안’의 제의에 ‘귈렌’시민들은 처음에는 명백한 거부감을 보인다. 하지만, 가난의 고통에서 풍요의 단맛을 조금씩 맛보면서 점차 생각이 바뀌어간다. 심지어는 ‘일’의 가족까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일’의 목숨을 담보로 빚을 지고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며 ‘일’을 심적으로 압박해나간다. 그리고 결국에는 시민전원의 합의에 의한 시민재판을 통해 ‘일’에게 죽음을 선고하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의 죽음으로 시와 시민은 10억마르크를 받게 되었고, 시민들은 ‘일’의 관과 함께 떠나는 ‘짜하나시안’을 환호로 배웅한다.

작품『노부인의 방문』에서 뒤렌마트는 금권이면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그런 진부한 진리를 확인시키려 하지 않고 인간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금권에의 욕망이 선량한 인간들의 양심을 얼마만큼이나 타락하게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물리학자들

1962년에 발표된 뒤렌마트의 2막으로 이루어진 희곡이다. 현대 핵물리학의 피할 수 없는 위험이 주제이다.

스위스의 어느 정신병원. 이 병원의 여의사 마틸데 폰 잔드는 세 명의 정신병자인 핵물리학자들을 치료하였다. 스스로를 아인슈타인으로 자처하는 에르네스티, 스스로를 뉴턴으로 자처하는 보이틀러, 그리고 솔로몬 왕이 특기할 만한 발명을 명령한 뫼비우스가 그들이다.

이곳에서 세 번의 동일한 살인이 발생하자 경찰이 사건 해결에 착수하였다. 극의 반전은 2막 중간부분에서 시작되었다. 이 세 명의 어느 누구도 사실은 환자가 아니며 간호사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살해된 것이다. 뫼비우스는 자신의 천재적인 논문으로 정보요원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세상에 대한 책임감으로 정신병자로 자청해 정신병원으로 들어가자 정보요원 킬턴과 아이슬러도 함께 정신병원에 들어온 것이다. 정신병자 흉내를 내는 두 명의 정보요원들은 각자 다른 이데올로기로 핵방정식을 자신의 나라로 빼돌리고자 하였다. 뫼비우스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자신의 동료를 설득하고 핵방정식이 담긴 원고를 불태우지만 이미 여의사 마틸데 폰 잔드가 복사본을 만들어 놓은 후였다.

세상은 정신이상의 늙은 여의사의 손에 넘어가고 세 명의 핵물리학자들은 영원히 정신병원의 창살 안에 갇혔다. 스스로 선택한 정신이상이 이들의 삶의 방식이 된 것이다. 극은 탐정극 형식으로 시작하였지만 그로테스크한 반전으로 끝이 났다. 뒤렌마트는 이 작품을 통해 미친 세상에서 개인의 저항은 희망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1182호 23면, 2020년 8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