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릭 아우프! 파독광부 생애사

이유재 (튀빙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파독 광부“들이 조국의 경제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사실은 신화같이 떠돌고 있다. 한국에는 그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소설도 쓰여지고, 영화도 제작되고 박물관에서 전시회도 개최되었다. 하지만 막상 광부들이 독일에 정착한 후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독일어로 된 정보를 찾기는 더욱 더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현재 독일에 살고 있는 옛 광부 중 1963년 12월 독일에 온 1차1진 광부부터 1977년 10월 2차 마지막 진과 함께 온 광부까지 총 10명의 한인광부를 선발하여 생애사적 인터뷰를 한국어로 진행하였고, 이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다듬어서 튀빙겐 한국학 시리즈에서 책으로 출간했다. 이들의 삶이 독일사회에도 널리 알려지고 존중받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광부로 온 사람들이 한국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한 돌파구로서 서독행을 선택했다는 사실 및 사전에 광산에서 일한 경력이 없던 데다 상대적으로 고학력이었던 대부분 한인들에게 독일에서의 막장노동이 신체적으로 얼마나 큰 도전이었는지도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은 이번 책에서도 확인된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파독 광부들이 막장을 떠나 독일 사회에 어떻게 정착하고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지 등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삶의 부분이다.

파독 광부들 중 상당수는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체류허가를 연장해야 할 때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 온 간호사 혹은 간호보조원과 결혼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렇게 결혼을 하고 가족을 꾸리기는 하였지만, 반드시 독일에 영구 정착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대부분은 조금 더 돈을 모아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 다시 적응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독일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독일에 눌러 살기는 하지만 정년을 맞이하고, 노년에 접어든 현재까지 이들에게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귀국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제약 사이에 아직도 긴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독일 사회에 정착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 산다는 것은 3년 동안 막장에서의 육체노동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이들에게는 독일에서의 삶 자체가 불안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직업을 배우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일에서 새로운 직업을 배우거나 공장에 들어가 비숙련 노동자로 일을 해야 했다.

한 직장에서 정년까지 근무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많은 분들이 이직을 거듭한 후, 정년이 되기도 전에 실업자가 되거나, 불안정한 직장에 대한 대안으로 일찌기 자영업을 선택한 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식당이나 식품점 등을 포함한 자영업은 더욱 더 큰 도전이었고, 불안정한 삶에서의 탈출보다는 연속을 의미하였다. 특히,사업이 망했을 경우 이혼이나 가정 파탄의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 한인 사회에서는 미국 이민자들의 경우와 같이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이주자는 매우 드물었다.

한인 광부들은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도, 처음부터 인종차별의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었다.인종차별은 구조적인 문제였고, 당사자들이 일상에서 피부로 느끼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들이 이 차별에 대응하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이들은 우선 차별을 근본적으로 독일인이나 독일 사회의 문제로 보지 않았고, 언어적,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 소통의 어려움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차별의 근본적 원인이 본인이 힘이 없고, 제대로 된 직업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독일말을 잘 못하는 데 있다고 이해하였다. 그래서 이런 차별에 맞서 직접적으로 저항하기 보다는 본인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면돌파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외국인이라서 임대주택을 구하지 못하면, 무리해서라도 자기 아파트를 구입한다든지, 직장을 못 찾을 때는 자영업을 모색한다든지, 본인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라고 생각할 때는 자녀들의 출세로 보상을 받으려고 했다. 본인의 차별 경험과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집착은 이렇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필자가 어릴 때 많이 듣던 말이 생각난다. „너네는 독일 사람보다 뛰어나야 해. 만약 독일 사람들과 능력이 비슷하다면 독일 고용주가 누굴 택하겠니?“ 이러한 정면 돌파와 자녀의 출세를 통한 주류 사회의 인정 획득은 이방인들이 독일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었다.

독일에 대한 전반적 평가는 긍정적이다. 특히 복지제도가 좋다는 것과 교육제도가 우수하다는 것을 꼭 언급하였다. 좋은 복지제도는 막장에서 유급병가를 내면서 바로 체험했고 우수한 교육제도는 한국하고 비교했을 때 본인들이 별도로 큰 돈을 쓰지 않고도 자녀들이 대학까지 졸업하는 것을 보고 확인하였다. 반면 가까운 독일 친구를 가진 분들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인에 대한 평가는 인상적이다. 한 동료가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차별할 때 “나는 너희를 위해 독일에 왔다”라는 발언이나 “독일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들이야”라는 지적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자존감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피해를 입은 소수자가 아니라 우월한 해석능력을 같춘 주체성을 과시하기 때문이다.

파독 광부들이 고도 성장기 조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사실 못지않게, 현지에서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고 한인 사회의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한국 기업이나 유학생이나 후속 세대의 신규 이주민들이 독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그들은 한국 세계화의 선두자일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하는 거점이 된 것이다.

독일에 온 것을 후회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객지에서 영원한 나그네로서의 멜랑콜리를 지우지 못하고, 노년에 모두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지는 않아도 말이다. 역동적인 한국과 비교할 때 본인들은 현재 정체된 느낌을 가지기는 하나 본인들의 삶도 그 못지않게 역동적이었고, 이주를 통한 사회적 이동이 얼마나 큰 희생과 노력의 결과였는지 인정하는 것은 후세의 몫일 것이다.

이번 책이 한인 광부들 삶의 공로를 인식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진다.

*You Jae Lee (Hg.), Glück Auf! Lebensgeschichten koreanischer Bergarbeiter in Deutschland (Tübinger Reihe für Koreastudien, Band 4), München: Iudicium 2021. (20 Eu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