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신문 문화사업단의 문화이야기(74)

영화로 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4)

다양함과 개별성이 강조되는 시대를 살면서도, 대개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대부분은 우리에게 의식되지도 못한 채 외면당하고 있는데, 이런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있다.

문화사업단 세 번째, 네 번째 이야기는 새로운 삶과 꿈을 실현하려고 한국을 찾아온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담은 영화를 소개하고, 이들이 겪는 한국생활을 소개한다.

피부, 색깔, 말은 모두 달라도 우리는 같은 사람들 (2)

『방가방가』

2010년 발표된 육상효 감독의 ‘방가방가’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코믹물’의 형태로 담아내고 있다. 한국인의 차별적 시선도, 욕설, 착취 역시 웃음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웃음 뒤에는 뭔가 ‘찔림’이 남기도 한다.

주인공 방태식은 공장, 막노동, 커피숍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며 살아온 백수다. 고향에서 함께 상경해 노래방을 운영하는 친구 용철의 조언에 따라 태식은 평소 동남아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이국적인 자신의 외모를 이용해 중앙아시아 부탄 출신 노동자 ‘방가’로 가장한 뒤 의자 생산 공장에 취직한다.

어떻게든 잘살아 보겠다며 국적을 속이고 일하는 태식과 달리 용철은 재빨리 노래방을 팔아서 권리금을 싸들고 고향에 금의환향할 생각으로만 가득하다. 이를 모르는 태식은 친구의 노래방을 돕기 위해 ‘외국인 노래자랑’을 내세워 공장 직원들을 매일 노래방으로 데려온다.

그러던 어느 날 용철은 태식의 주민등록증을 위조문서로 착각한 노동자들이 자신들도 가짜 주민등록증과 여권을 만들어달라고 하자, 그들에게서 받은 돈을 챙겨서 도망칠 궁리를 한다.

영화는 초반부터 이주 노동자가 당면한 현실을 보여주는 데 치중한다. 공장 임원은 마치 숨을 쉬듯 외국인에게 욕을 내뱉는다. 버젓이 성추행도 일삼는다. 말단직 내국인도 외국인 노동자를 꺼리긴 마찬가지다. 식탁에서조차 한국인은 한국인들끼리만 밥을 먹는다.

그러나 이러한 경직된 내용을 이 영화는 희극처럼 풀어내며, 불쌍하고 가난한 고된 노동자라는 이미지 속에 갇혀 버린 이주자들을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노래하고 춤추고 일하고 사랑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들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관객에게는 심한 죄책감을 주지 않고, 그러면서도 비꼬는 현실의 타당함이 웃음 속에서 수긍 할 수 있고, 부담 없는 공감이 가능한 영화 그래서 더 현실감 있는 영화이다.

영화에서는 이주노동자를 향한 욕설과 성희롱, 임금착취의 사회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 무거운 내용은 신기하게도 웃음의 코드가 된다.

주인공 방태식역을 맡은 김인권 씨는 “오히려 그런 부분들에서 더 웃음이 크게 터진다”면서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분들을 강의실에 모아서 제가 욕을 가르치는데, 일단 멀리서 봤을 때는 웃음을 유발시키는 코미디 장면”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연기하는 제 입장에서는 슬펐고, 너무 울컥해서 밖에 나가서 좀 눈물을 흘린 기억도 있다”고 털어놨다. 영화는 일단 관객들을 웃기지만, 그 희극 속에서 관객들은 뭔가가 찔리고 부끄럽다. 그냥 대수롭게 웃어넘기기에는 걸리는 것이 많은 영화다.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2003년 발표된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는 1992년 36살의 나이로 한국에 왔던 네팔 여인 찬드라 꾸마리 구릉의 실제 사건을 다룬 실화다.

단기비자로 한국에 와 섬유회사에서 일하던 찬드라는 어느날 분식집에서 식사를 한 뒤 지갑을 두고 온 사실을 알게 되지만 한국 말을 잘 못한다. 그러나 찬드라가 한국인처럼 생긴 탓에 다른 사람들은 그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다. 식당 주인은 찬드라를 경찰에 넘기고, 경찰은 ‘심신미약자’로 분류해 정신병원에 넘긴다. 정신병원에선 ‘정신분열증’ 환자로 분류해 그를 가둔다. 공장에서 행방불명 신고를 했지만 끈이 닿지 않은 채 찬드라는 낯선 땅, 말도 안 통하는 정신병원에 수년 동안 감금된다.

이 영화는 ‘인권 감수성’이라는 프로젝트의 목적과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이 영화가 말하는 건 한국 사회가 부도덕하다는 게 아니라 상식적인 ‘선’을 달성하지 못할 만큼 상상력이 부족하고 둔하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 고통을 당했던 주인공 찬드라씨의 모습, 실제 얼굴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음식점 주인, 경찰, 정신병원 의사와 간호사, 부녀 복지소 직원, 출입국 관리소 직원, 파키스탄 노동자 등 찬드라씨가 만난 사람들의 ‘시선’만을 포착한다. 이것을 흔히 ‘찬드라의 시점 샷’이라고도 부르는데, 관객이 찬드라씨의 입장이 되어 그녀의 시선으로 일말의 사건을 되돌아보게 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깔려 있다.

우리는 찬드라의 내면에 동참하게 된다. 카메라는 찬드라의 시선이 되고 우리의 눈길이 된다. 우리는 찬드라가 되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디에 도움을 청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마치 장애인 체험을 하며 장애인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느껴보는 것처럼.

이렇듯 감독이 포착한 ‘찬드라 정신병원 집어넣기’에 연루된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하다 보면 일상에서 무심히 지나쳤던 혹은 은연중에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고 차별을 일삼았던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에서는 정신병자에 행려병자 소리를 듣던 찬드라씨였지만 감독이 수소문 끝에 네팔에서 찾아낸 그녀의 모습은 밝고 평화로운 미소를 지니고 있다. 둘의 차이는 한국에서의 흑백 화면과 네팔에서의 컬러 화면 대비만큼이나 선명하다.

한국에서 온 스태프들을 배웅하는 네팔인의 뒤에 쓰여 있던 글씨, 네팔(NEPAL)이라는 국명을 ‘Never Ending Peace And Love’라고 풀어 쓴 문구를 클로즈업시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매우 인상적이다. 이것은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의 영어 제목으로도 사용되었다.

1249호 23면, 2022년 1월 7일